이 생각 저 생각 (91) 내가 넘은 38선 (3)

 

[지난 회에서 데이는 혼자 세 아이를 데리고 결국 일본에 도착했고, 남편과도 재회했다고 말했다. 그 끝부분을 본회의 끝에 다시 옮긴다.]

    두 시간 전만 해도 평화롭던 집안이 어떻게 이렇게 비참하게 되었나? 공원나무 숲을 넘어 큰 별똥 하나가 쭉 하고 떨어졌다. 흐르는 별이 사라진 것은 그것이 시작이었다. 사라지는 별을 보자 갑자기 더욱 쓸쓸해진 데이는 남편에게 말했다.

여보! 돌아갑시다. 어차피 죽을 바엔 집에 가서 죽읍시다.” 남편은 대꾸가 없다. 그에게도 무슨 말이 있을 것이나 참는 것 같았다.

    자정이 지나 한 시 반, 신경역 앞은 사람들로 북적인다. 기상대 직원 가족 50여 명이 한 군데 모여있는 것을 발견한 남편은 되었군!”하고 중얼거린다. 그러나 데이에게는 모르는 사람들뿐이다. 이제 싫으나 좋으나 그 그룹에 끼어야 한다. 기상대 직원 그룹의 출발은 아침 7시라 한다. 데이는 담요 한 장을 땅바닥에 깔고, 아이들을 눕혔다. 잠이 들었다. 몽롱한 가운데 그래도 남편이 옆에 있다는 사실에 마음이 진정되었다. 말은 그렇게 하였으나 속으로는 매우 불안했을 것이다.

    세 아이가 잠든 틈에 잠시 눈을 붙였나 했는데 날이 벌써 밝았다. 남편이 보이지 않는다. 남편이 돌아 온 건 7시가 넘어서였다. 집에서 큰 가방에 옷을 챙겨왔다. 토마토도 잔뜩 따가지고 왔다. 그러면서 출발이 늦어 9시라고 했다. 그러나 남편은 일이 남아 같이 갈 수 없다고 했다. 8시가 되자 무개화차에 올랐다. 그나마 좋은 자리는 없다. 짐이 가벼운 사람들이 먼저 차지한 것이다. 이젠 남편과의 이별이다. 남편은 제일 귀여워하는 둘째 마사히코를 부둥켜안으며,

마사히코야! 아빠 얼굴을 잘 익혀두어라. 그리고 엄마 말을 잘 들어야 한다. , 잘 들어야 해!” 그리고는 멍하게 앉아있는 마시히로 쪽으로 갔다.

마사히로는 몇 살이지?” 마사히로는 가느다란 목소리로 여섯 살이라고 하는 모양이다.

그래, 여섯 살. 그럼 아버지 말을 잘 알아듣지? 이젠 이 기차로 엄마와 마사히코와 애기랑 멀리 간다. 아버지는 더 신경에 남아 있어야 해. 아버지가 없어도 엄마 말씀 잘 듣고 착한 애가 돼야 한다.” 마사히로는 알아들었는지 고개를 끄떡였다. 그러자 남편은 아내 데이를 보고,

그럼 부탁하오.” 그러면서 일어섰다. 데이는 그때가 남편을 보는 마지막 순간이란 생각이 들어 작별 인사도 할 수 없었다. 데이는 일어서서 남편에게 속삭이듯 말했다.

여보! 살아 계셔야 해요. 어떠한 일이 있어도 사셔야 해요.”

    앞날이 불투명한 상황에서 사랑하는 남편과 이별하는 아내의 마음은 그런가 보다. 책에 그렇게 적혀있으니 그대로 옮긴 것이나,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하는 장면이다. 예를 들어 6.25사변 당시 북한괴뢰군이나 공산당원에게 끌려 미아리고개를 넘던 많은 사람의 가족도 그랬을 것이다. 죽지 않아도 다시 만난다는 보장은 없다. 그러나 이별은 현실이다.

    남편은 협화복(協和服: 일종의 국민복)의 주머니 속에서 시계를 꺼내 아내의 손에 쥐어 주었다. 애용하는 론진(Longines: 스위스제의 남자전용시계)이다. 그리고는,

어린 것들을 부탁하오.” 그러면서 짐차에서 내리려고 몸을 돌리는 순간이다. 손이 허리에 묶여있던 수건에 닿았다. 그는 수건을 풀어 마사히코의 얼굴을 싸주는 것이었다.

햇볕에 타면 아프다.” 그리고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짐차에서 뛰어내렸다.

    차디찬 바람이 두 눈 속으로 스며들었다고 데이는 적었다. 이제 어린 세 아이를 혼자 데리고 일본까지 가야 한다. 찬 바람 정도는 문제가 아닐 것이다. 정작 고생의 시작이다. 아니 이야기의 시작이다.

    10시가 되어 화차가 출발했다. 연산문(連山門)을 지나고 유가하(劉家河)를 지나면서 국경이 가까워졌다. 가기는 간다. 봉황성(鳳凰城: 현재의 봉천)을 통과한다는 것이다. 여기도 관상대가 있다. 혹시 남편 소식을 알 수 있을지 모른다. 사람은 누구나 바라는 것이 이뤄지기를 원한다. 데이가 바라는 것은 남편을 다시 만나는 것이다. 그러나 바라는 것이 다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 인간사다. 화차는 잠시 남시(南市)라는 곳에 멈췄다. 여기서 종착지가 선천(宣川)이라는 소식을 들었다. 조선 땅이다. 평안북도 선천군이다. 선천군의 중심역은 선천역이다. 평의선의 중요한 역이다. 거기까지 간다는 것이다. 만주를 벗어나 조선으로 간다. 조금이라도 일본에 가깝다. 졸음이 쏟아진다.

    데이의 일행이 도착한 곳은 선천농업학교였다. 여기엔 이미 3백 명 가량의 피난민이 북적인다. 얼마나 여기에 머물러야 할지 알 수는 없어도 오래 있어야 할 모양새다. 먹는 것, 잠자리, 빨래, 세 아이의 건강 모두가 문제다. 신경을 떠난 지 며칠이 지났다. 815일이라고 했다. 맑은 날씨다. 정오가 가까워 지면서 전쟁이 끝났다는 소식을 들었다. 일본의 패망에 우는 여자들이 있는가 하면, 밖에서는 태극기의 행렬로 떠들썩했다. 그러나 그런 것에 신경을 쓸 여유가 없다. 배고픔, 제대로 먹지 못해 설사와 고열에 시달리는 아이들의 기저귀 빨아야 한다. 고국으로 무사히 돌아갈 수 있을까? 남편을 다시 만날 수 있을까?

    그렇게 시작한 고생이 1년 넘게 계속되었다. 그녀가 일본에 상륙한 것은 1946912일이었다. 그렇다고 고생이 끝났을까? 사람 사는 것을 흔히 고해(苦海)라고 한다. 그래도 세 아이를 데리고 무사히(?) 고향으로 왔고, 북만주 연길에서 1년 넘게 포로 생활을 하던 남편도 데이가 일본에 도착한 후 석 달 후에 돌아왔다. 가족이 모인 것이다.

 

최명 (서울대학교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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