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위의 스승 또 한분(박경리 7)

 

     학위 논문 통과를 보고 서울로 돌아온 것이 19832. 교직에 뜻을 둔 이래로 학계 마패통행증, 아니면 사회적 과대평가를 얻는 영험 있는 부적신부(神符)로 여겨 죽기 살기로 매달렸던 박사 학위를 얻고 나니 갑자기 마음이 허전해졌다. 심기를 추스를 요량으로도 미루어두었던 작가 박경리 만남에 나서고 싶었다. 어떻게 내 글이 전해졌던지는 지금 기억나지 않는다. 아무튼 월간 <뿌리깊은나무> 복간 등으로 고심 중이긴 해도 한 달도 금방 돌아오는달걸이 출간엔 얽매이지는 않겠지 싶어 김형윤 편집장에게 짬을 내서 원주 길을 놓아 달라 부탁했다. 편집장도 원주 집은 초행이라 했다. 그 날짜가 좀 오락가락했지만, 나중에 방문기 삼아 적었던 기고 글(“소설 <토지>-4부를 기대하며,” <경향신문>, 198369)을 참작할 때 그 해 5월이 분명했다.

       작가의 단구동 집은 좁은 찻길을 끼고 왼쪽은 논, 그 반대편 언덕배기 옆길로 오르자 거기에 올라 자리 잡고 있었다. 큼지막한 낡은 철문을 지나 약간 언덕진 집안 통로를 오르니 곧장 오른쪽으로 슬라브 집, 그 앞으로 뜰이 펼쳐진 널따란 모양새였다(대지 757평 넓이임은 철거 예정이란 소문을 듣고 한참 나중에 알았다). 집안에 들어서자 대뜸 대청 옆 당신 서재의 문을 열고 교자상이 한 가운데에 놓인 단출소박한 집필공간을 보여주었다. 글로 다가간 사람에게 글로 살아가는 당신의 공간을 보여주는 속 깊은 배려라 싶었다.

       내 글에 대한 치사는 무엇보다 열심히 치열하게 읽어내 준 독자를 만났다는 말이었다. 당신의 작품에 대해 대학교수 평론가 한분의 글을 본 적 있었다. 그 당장에 내 글을 제대로 읽지 않고 쓴 글임을 알아차렸다.”고 단언했다. 나도 작가의 짐작에 수긍이 가고도 남았다. 교수란 학생들의 과제물, 논문을 읽어주는 직업인데 거기에 오래 일하다보니, 이를테면 리포트 과제물이 인터넷 등에 흩어져 있는 기존 글을 무리하게’ 베꼈는가를 직감으로 알아차린다. 마찬가지로 작가 또한 평론가의 글 읽기 진정성에 대해 금방 느낌이 왔을 것이었다. 당신 지적이 <토지> 비평 글이었던지, 아니면 한참 나중에 내가 전해 들었던 바로, 옛적 19654월과 5월에 월간지 <신동아> 지면을 통해 <시장과 전장> 을 두고 백낙청(白樂晴, 1938- ) 비평가와 주고받았던 논쟁 때 비평가가 소설을 제대로 읽지 않았다는 작가의 단정성 지적을 다시 상기시키고 있음인지는 모를 일이었다.

 

배움에 뜻을 세우고

       한참 의식이 영글던 내 십대의, 사회적으론 625전쟁 전후복구기였던 지방은 정말 시골이었다. 명색은 멀쩡한 도시이지만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등 외화(外畫) 문제작 상영 말고는 문화적 자극이나 값진 정보의 전파가 드문 곳이었다. 시절 탓이겠지만 이를테면 고전음악도 어쩌다 들을 양이면 그건 우리 방송이 아닌 일본 방송이었다.

        대학 입학 때 처음 서울 구경을 했던 처지였기에 그 이전에 키운 내 꿈은 장차 대처에 나가 공부하게 되면 내 관심사 관련 전국적 인사들을 꼭 만나고 배우고 싶었다. 유명 인사라 해도 예나 지금이나 그건 정치판을 오가는 그런 거물(?)을 말함이 아니었다. 향기 나는 선비들을 만나 배움을 얻고 싶다는 뜻이었다. 좋은 대학에 들겠다는 소망도, 함께 살아갈 좋은 친구의 만남은 물론이겠고, 결국 배움을 얻을 스승의 만남 거기에 뜻을 둔 노릇 아니었겠는가.

       소망하던 대학에 들고서 중고시절 교과서 저자로 이름났던 인물들을 교정에서 심심찮게 마주쳤다. 소문난 이름을 따라 청강도 해보았다. 좋은 캠퍼스임은 분명했다. 하지만 거기에 옥석이 있었고, 당연히 옥이 무척 귀하다는 느낌도 차츰 분명해졌다.

       해서 배움은 학교에만 머물 일이 아니었다. “세 사람이 길을 가다보면 거기에 반드시 내 스승 될 만한 이가 있다(三人行 必有我師)”는 공자의 유명 구절은 아직 읽지 못했다. 그럼에도 학교 바깥에서도 배움이 될 만한 사람을 직접 만나봐야겠다는, 말하자면 길 위의 스승을 찾아 만나야겠다는 생각은 대학 때 읽었던 흥미로운 책 하나가 특히 자극제였다.

       20세기 대문호 카프카(Franz Kafka, 1883-1924)를 따라다니며 주고받았던 문답을 옮긴 <카프카와의 대화>(Gespräch mit Kafka)였다. 문학 쪽 독서가 거의 없었던 그때인데도, 유별나게 내 마음을 끌었던 책이었다. 아버지 친구인 만년의 카프카를 흠모했던 20대 초반의 청년 야노우흐(Gustav Janouch, 1903-68)3년여 만났던 교분의 내역을 적었다.

       거기서 지금도 기억 나는 인상적인 내용은 카프카와 함께 당시 프라하에서 열린 피카소 전시회를 관람하는 대목이었다. 도대체 무슨 그림인지 모르겠다는 야노우흐의 회의성 질문에, 카프카는 세계미술의 장래를 볼 수 있다고 반응한다. 그처럼 앞날을 내다볼 줄 아는 안목이 경탄스러웠다. 야노우흐는 체코 대중음악가로 살았다고 나는 나중에야 들었다.

       그런 나에게 길 위의 스승일호는  노송정 최정호(老松亭 崔禎鎬, 1933- )언론학 교수였다. 독일에서 박사 공부와 한국일보 유럽 특파원을 병행한 끝에 학위를 받고 1960년대 후반에 돌아왔다. 그리고 <주간한국>에 연재한 유럽 무대 기행은 큰 감동이었다. 무엇보다 내 고전음악 사랑이 레코드에 기대는 깡통 음악이 고작이던 시절에 유럽 본고장에서 명인의 생음악을 듣고 적은 감회감동은 내 음악사랑에 물기생기를 더해주고도 남았다.

       연재물 초기의 주제 하나(1968817일자)가 중학 때 레코드로 익혔던 바이올리니스트 메뉴힌(Yehudi Menuhin, 1916-99)이었다. 그걸 읽고 보낸 독후감 투고가 그 주간지(19681013일자)에 실렸으니 그만한 상호교류의 단초가 있을 수 없었다. 이렇게 지우를 입은 지 반세기, 그 사이 나는 그의 학덕에 관한 글들을 적기도 했고, 관련 책을 편집(<같이 내일을 그리던 어제: 이한빈최정호 왕복서한집>, 2007)하기도 했다. 지금도 이런저런 일로 무시로 전화를 주고받는 사이로 이어지고 있음이 고마울 뿐이다.

       내가 서양화가 비공 장욱진(非空 張旭鎭, 1917-90)을 만날 수 있었던 연결 고리는 역시 편지질이었다. 노송정에게 보낸 편지는 제법 내 감상력이 깔린 글이었다면, 화가에게 보낸 글은 국립현대미술관에 전시된 작품 하나 말고 그림을 좀 더 보여주십사 청하는 민원이었다. 내가 1차 미국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1973년 즈음은 공립 미술관의 전시가 전무하듯 볼품없었다. 오히려 그때 서울 인사동에서 갓 생겨난 현대화랑(오늘의 갤러리 현대)을 통해 그림사랑의 갈등을 풀었다고나 할까.

       보름 정도 지나서 장욱진 가족이 연락해왔다. 덕소 화실에 머무는 화가가 동인전 참관차 서울 신세계 전시장에 나갈 예정이니 거기로 오라는 전갈이었다. 이 만남이 발전해서 나는 화가와 틈틈이 왕래할 수 있는 친면의 특혜가 주어졌으니, 신작이 제작되면 앞서 보여주기도 했다. 자폐증에 가까울 정도로 내성적인 화가와 만남을 틀 수 있었던 것은 화가의 아내 진진묘 이순경(眞眞妙 李舜卿, 1920- )의 복심도 크게 작용했음은 나중에 알았다.

       진지묘에게 들은 바로 편지를 얌전하게 적은 것이 아직 총각같이 느껴졌고, 그렇다면 장녀 출가 뒤로 줄줄이 성혼을 기다리는 슬하 여식들을 유념해서였단다. 나는 장욱진에게서 얻은 배움에 대한 보답으로 당신 사후 유택에 세워진 탑비(塔碑)의 비문(1991)은 물론, 두 권의 평전(그사람 장욱진, 1993; 모더니스트 민화장 장욱진, 1997)을 비롯해서 각종 편저(編著) 출간을 주도했다. 과분하게도 후자 저술은 <20대에 읽어야 할 한권의 책>(김영건김용우 공저, 2005)에 들기도 했다.

       박경리 만남은 以文會友(이문회우)”란 한자성어대로 글로 벗을 만남이라 비유할 만했다. 그렇지만 글이 다리를 놓긴 해도 벗이 아닌 스승의 자리이기 때문에 원전에서 한 자 고쳐 글로 스승을 만남인 以文會師(이문회사)”의 경우가 되고 있었다.

 

김형국, 서울대 명예교수 (무단전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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