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생각 저 생각 (39) 마당 2

 

   정원하면 캐서린 맨스필드(Katherine Mansfield)의 소설 The Garden Party(1922)도 생각난다. 큰 파티가 열린 것이다. 크거나 작거나 정원을 맡아 보살피는 사람을 정원사(庭園師) 혹은 원정(園丁)이라 한다. 마당을 쓰는 하인을 우리는 마당쇠라고 불렀다. 정원사와 같은 개념이란 생각도 든다.

   마당일을 하는 사람으로는 머슴도 있었다. “농가에서 고용살이를 하는 남자. 고용주의 집에서 거주하며 새경[私耕: 머슴에게 주는 年俸]을 받는다. 농사도 돕고 주인집의 가사도 도왔다. 지식백과의 얘기다. 고려시대에는 傭作(용작)이라했고, 조선시대엔 雇工(고공), 雇傭(고용), 傭人(용인) 등으로 불렸다. 머슴의 어원은 오래라는데, 시작은 모른다. 1527(중종 22)에 나온 최세진(崔世珍)訓蒙字會(훈몽자회)에는 雇工을 머슴이라고 표기하였다고 한다. 경제적으로는 노예와 다름이 없었으나, 신분상으로는 양인(良人)으로 자유민이었다. 그 전에도 물론 있었지만, 머슴이 많이 늘어난 것은 갑오경장(甲午更張, 1894) 후라고 한다. 임금(賃金)을 받는 노동자이기 때문이다. 요새는 나라가 노동자들의 천국이 된 양상이나, 농촌에 가도 머슴은 없다. 허나 누군지 마당일은 한다. 눈이 오면 마당을 쓰는 가장(家長)이나 주부도 많을 것이다.

   머슴은 자유민이라고 해도 고달픈 직업이다. 바우고개란 노래가 떠오른다. 널리 알려졌지만, 가사를 먼저 적는다.

               바우고개 언덕을 혼자 넘자니

               옛 님이 그리워 눈물납니다

               고개위에 숨어서 기다리던 님

               그리워 그리워 눈물납니다

 

               바우고개 피인 꽃 진달래꽃은

               우리 님이 즐겨 즐겨 꺾어 주던 꽃

               님을 가고 없어도 잘도 피었네

               님은 가고 없어도 잘도 피었네

 

               바우고개 언덕을 혼자 넘자니

               옛 님이 그리워 하도 그리워

               십여 년간 머슴살이 하도 서러워

               진달래꽃 안고서 눈물집니다

     

   나는 이 노래를 어려서부터 안다. 그때는 별 생각 없이 그냥 불렀다. 그런데 지금은 생각이 다르다. “십여 년간 머슴살이 하도 서러워 진달래꽃 안고서 눈물집니다라는 제3절의 끝 구절이 마음에 걸린다. 머슴살이가 몹시 서러웠던 사람이 작사했나? 작사자는 이서향(李曙鄕)이다. 이리저리 찾아보니 여러 가지 이야기가 있다.

   이서향은 1914년 인천[함남 원산이란 설도 있음.]에서 출생하여 서울에서 성장했다. 중학(고등학교)을 마치고, 일본 유학을 했다. 연극수업을 받았고, 연극운동도 했다.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어 문단에도 등단했다. 희곡도 쓰고, 소설도 썼다. 그 바탕은 노동자와 농민에 대한 연민이다. 전근대적 사회현실의 타파라는 이상을 가졌던 것이 아닌가 한다. 그래서 십여 년간 머슴살이가 나왔는지 모른다. 이에 걸맞지 않게 그는 1940대에 들어와서 친일연극활동에 적극적이었다. 광복 후에는 좌익연극운동에 가담했다. 친일활동에 대한 자격지심이 좌경을 부추겼을 것이다. 조선문학가동맹의 간부로 활약했다. 1948년 남북연석회의 참석차 월북했다가 주저 물러앉았다. 국립예술대학 총장을 지냈고, 연출가로서 활동도 했다. 그러다가 1959년에 복고주의 종파주의자로 몰려 숙청을 당했다고 한다. 1969년에 사망했다는 설이 있는 것을 보면, 1959년 숙청 때 목숨은 부지한 모양이다.

   다시 바우고개. “십여 년간 머슴살이 하도 서러워란 대목을 아무래도 이해할 수 없다. 작사자 이서향은 서울에서 중학을 다니고 일본유학을 하였으니 부르주아는 아닌지 모르나 생활의 여유가 있는 집의 아들임이 분명하다. 그런데 왜 머슴타령인가? 조상에 머슴이라도 있었나? 아니면 진달래꽃을 보면서 옛 임을 생각하다 계급타파란 그의 잠재의식이 표출되었나?

   「바우고개는 이흥렬(李興烈, 1909-1980)이 작곡했다. 이서향보다 다섯 살 위다. 둘은 자랄 때부터 친구였다고 한다. 그런데 이서향이 월북한 후 한동안 작사도 이흥렬이 한 것으로 음악책 등에 실렸다. 이흥렬도 작사자에 대한 언급을 피했다. 월북자가 작사를 했다고 하면 금지곡이 될까 두려워서 그랬을 것이라는 이야기다.

   이서향은 백병원의 설립자이고 6.25사변 중 납북된 백인제(白仁濟, 1899- ?)의 사위다. 백난영(白蘭英,1917-2015)이 그의 아내다. 아들이 하나 있었다. 백난영은 경기여고와 이화여전 영문과를 졸업했다. 군정시절에 통역실력을 인정받은 재원이었다. 남편이 월북한 후 생활이 어려웠다. 시댁은 물론 친정의 도움도 받지 못했다. 다행히 숙명여고 문남식 교장의 눈에 들어 교사로 취직하였고, 그때부터 생활이 다소 피기 시작했다. 내가 잘 아는 그녀의 숙명 제자에게서 직접 들은 이야기다. 영어는 말할 것도 없으나, 인품이 훌륭하여 제자들이 많이 따랐다고 한다. 아내로서도 훌륭했을 것이다. 뭐가 좋아서였는지는 모르나 이서향은 그런 아내와 아들을 버리고 월북한 것이다.

 

최명(서울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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