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안팎 담쌓기(박경리 40)

 

    “인간은 살아있기 때문에 집을 짓는다. 그러나 죽을 것을 알고 있기에 글을 쓴다.” 생전에 소설가를 많이 따랐던 오정희(吳貞姬, 1949-  )작가가 “2011 박경리 문학제에서 발표한 내가 만난 박경리에서 그이를 생각할 때마다 떠오르는 문구라며 글머리에 인용했다. 출처가 기억나지 않는다면서도 박경리의 일상을 말하는데 이보다 더 간명직절(簡明直截)한 말은 없다했는데, 전적으로 나도 동감이었다.

    박경리는 한 마디로 집 귀신이었다. 당신의 생활방식이 여행 체질이 아니라고 시로 적었을 정도였으니까 요즘 세속어로 말하면 집콕이었다. 집을 지키는 집사람이면서 출입이 없이 집에 앉아서 밥벌이 바깥사람몫도 했던 전업 작가였으니 안팎으로 이만한 집 귀신도 없었다.

    집은 당신 정신세계의 한 단면에 대한 상징성도 컸다. 당신과 왕래가 시작하고 얼마 뒤 나더러 작가에 대한 신상 소묘 한 꼭지를 적어 달라했음은 진작 말했다. 유명 작가들의 단편 선집을 위해 당신이 스스로 고른 작품이 셋이었는데 그 가운데 하나가 바로 현대문학(19664월호)에 실렸던이었다.

집 그리고 글

    역시 세상의 부조리에 대한 작가의 경계심, 그에 대한 개탄을 문학에 담아냈다. 진작불신시대(1957),암흑시대(1958)에 특히 의료계의 폐단에 대한 강한 불신을 졸지에 아들을 잃었던 불상사를 계기로 뼈아프게 적어냈고,에선 노가다판의 일상화된 비리에 지쳐버린 심신이 그려져 있다.

땅 이백 평을 사가지고 정지를 하고, 석축을 쌓고 자연석으로 정원을 꾸밀 때 아랫마을 사람들이 와서 일을 했던 것이다. 그 무렵 우연한 일로 자연석 싣고 온 사람과 일꾼들 사이에 시비가 벌어졌는데 연숙(燕淑)은 한 트럭 육천 원 준 자연석이 그들 사이에 오천 원으로 묵약이 되어, 그러니까 네 트럭에 사천 원을 일꾼들이 먹은 사실을 알게 되었던 것이다. (중략) 양회에서 벽돌, 모래에 이르기까지, 심지어 삼백 원짜리 삽 한 자루 사는데 있어서도 값을 속였다. 처음에는 연숙도 화를 내어 일 다 집어치우라고 했으나 나중에는 알고도 모르는 척해 버렸다(, 나남, 1994, 361).

    문학 동업자들이 찾아왔던 어느 겨울날, 제때 제대로 손을 못 본 땅집 창틀에 우풍이 심했다. 제때 손을 못 본 것이 아니라 집수리공의 정직성을 믿지 못한 작가가 애써 직접 손댔던 결과인지도 몰랐다. 허물없던 사이였던지 어느 동업자가 혀를 차며 말을 내뱉었다. “남자 없는 집이라 할 수 없군, 쯔쯧쯧.” 남자 없는 집이란 과부집이란 말이었다.

이곳 풍토에 있어선 과부란 인권 유린의 대상으로 예각과도 같은 존재다. 나는 어머니처럼 지혜롭게 타협하지 못하여, 또 어머니에게는 예사로운 언어도 내게는 모두 피멍이 되어 나를 잠들지 못하게 하였다. 웬만한 것이면 목수도 되고 미장이도 되는 내 일상은 말하자면 그것도 일종의 절연 현상이다. (중략) 어떤 독자는 나를 도피주의자로 단정할 것이다. 과연 나는 도피주의자인지 모른다. 그러나 단언할 수 있는 것은 나는 철저한 인간주의자라는 점이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나는 오늘도 펜을 들고 있는 것이다(“나의 문학적 자전,”원주통신, 1985. 96-98).

     절연 내지 외부차단은 우선 하나 남은 피붙이의 고단수 아니 과잉(?) 보호장치가 되고도 있었다. 놀이터에 나갔던 아들의 갑작스런 죽음이 안겨준 심리후유증이었다.

어느 일요일 저녁때였다. 내 옆에 앉아서 공부를 하고 있던 딸아이가 온다간다 말도 없이 없어지고 말았다. 손녀를 찾아나간 어머니까지 영 돌아오지 않으니 불안해질 수밖에 없었다. 사내아이를 하나 잃은 뒤 극도로 신경과민증에 걸린 나는 그냥 앉아서 아이가 오기를 기다릴 수 없어서 일어서서 대문 밖으로 나갔다. 하마 오는가, 하마 오는가 하고 길 저편에다 눈을 박고 서 있는데 겨우 어머니와 아이가 나타났다. 나는 하도 부아가 나서 주먹으로 머리를 한번 쥐어박아 주며 도대체 어디 갔었더냐고 추궁을 하였더니 아이 대신 어머니가 말씀하기를 어떤 여편넨지 모르겠으나 예닐곱 난 계집아이를 옷을 발가벗겨 데리고 가더란 것이다. 어머니와 내 딸 아이는 그런 꼴을 구경하기 위해 몰려가는 군중들을 따라갔더란 것이다. “말리지도 못하는 그런 구경을 하다니, 이놈 계집애, 무섭지도 않든?” 나는 다시 아이의 머리를 쥐어박아주고 방으로 들어왔다. 나는 공연한 말을 내 귀에 넣어 이제 원고 쓰기는 다 글러먹었다고 투덜거렸다. 그리고 풀 길 없는 마음을 혼자서 앓았던 것이다(“신경쇠약”,Q씨에게, 1981, 221-3).

언론가시성과도 담쌓고

    절연은 소설로서 이름을 얻기 시작하는 자신을 위해 본연의 정체성을 지키려던 한 방편이기도 했다. 부박(浮薄)의 유명세에 휘둘리지 않는 것이 창작의 길이라 여겼기 때문이었다. 1973년 봄,토지서평을 위해 대면(對面) 취재를 청했다가 퇴짜를 맞았던, 나중에 문학평론가로 더 잘 알려진 동아일보 문화부 기자가 훗날 그때 일을 회상할 만 했다(김병익, “도저한 삶, 자존의 문학,”현대문학, 20086, 291-299). 

한쪽 가슴을 암으로 잘라내면서까지 집필을 계속하며 혼신을 다해 창작의 의지를 달구어온 그에게서 한 치라도 매스컴의 환호에 오염되지 않으려는 완강하면서도 고결한 정신을 그때 나는 또렷이 보았다.

(이에 대한 작가의 변) “그때 김 선생을 맞아들이지 않은 것은 가장 영향력이 큰 신문사에서 오신 때문이었지요. 내가 여기서 약해지면, 그래서 여기서 무너지면 회복하기 어렵다고, 그러니 절대 안 된다고, 모진 각오로 인정이며 예의를 버려가며 자신을 매섭게 달구었던 거지요.”

    이런 경우가 한둘 아니었다. 20051129일의 작가 팔순 생일잔치 초대 손님이었던 언론인 장명수(張明洙, 1942- )도 작가 접근 때 있었던 곡절을 생일 축하 말로 곁들였다. 옆에서 나도 들었던 말이었다.

기자시절에 선생의 글을 받기 위해 정릉 집으로 찾아갔으나 여의치 않았다. 그래서 박완서 선생에게 간청해서 함께 갔지만 그래도 성공하지 못했다. 그 뒤는 박완서 선생도 더 이상 동행하지 못 하겠다 했다.

    1950년대 중반에 등단한 작가에게 그 몇 년 사이에 소설 글의 중요 소비처인 신문과 잡지로부터 청탁이 폭주했다. 대중들이 읽기 좋아하는 글발이라 평가받았기 때문이었던가. 이 지경에서 전업작가에게 집필 공간의 절대요구도 더 엄격해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가정 내의 현실은 그렇지 못했다. 그때를 목격했던 평론가가 기록으로 남겼다(강인숙, “박경리와 가족,”여류문학, 유럽문학 산고, 박이정, 2020, 62-115).

어머니는 글을 쓰기 위해 딸이 혼자 있는 시간이 필요한 것을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 딸이 혼자 있고 싶어 하는 것을 어머니는 자기를 밀어내는 행위로 받아들였던 것 같다. 밀어낼수록 불안해서 더 어머니에게 엉겨 붙는 아이처럼, 씨의 어머니는 더 자주 딸의 방에 쳐들어와서 글 쓰는 흐름을 흩트려 놓았다. 그 일은 종일 원고를 써야 생활이 유지되는 딸을 미치게 만드는 요인이 된다. 생각다 못해 딸은 어머니 방과 자기 방 사이를 벽으로 막아서, 어머니가 밖을 빙 돌아와 자기 방에 올 수 있게 만들어 보기도 하고, 뒷마당에 딴채를 지어 어머니를 따로 살게 하기도 한다. 그래도 소용이 없다. 어머니의 신경은 하나 뿐인 딸과 손녀에게 완전히 집중되어 있기 때문에, 그들의 안위를 수시로 확인하는 것은 어머니의 존재이유였던 것이다. 사실상 딸은 어머니의 유일한 대화 상대이기도 했기 때문에 어머니는 여러 가지 이유로 딸을 혼자 있게 내버려 둘 수 없었던 것이다.

    집에서 도모하려던 절연은 외부만이 대상이 아니었다. 가족 특히 결혼 이후 줄곧 함께 살아온 어머니의 눈길에서도 떨어져 앉음이었다. 눈길에 사람이 있으면 집중이 어려운 집필방식 때문이었다. 살림살이를 감당한 어머니와의 부대낌이 주요 일상이었고 그러한 어울림이 한평생 외로움에 절었던 김용수 할머니에 대한 대접임은 작가도 모르지 않았다.

딸아이나 내나 다 마찬가지로 벅찬 짐을 잔뜩 짊어졌으니 마음 놓고 바람 쐬려 멀리 나갈 형편이 못 된다. 그래서 고작 가는 곳이란 어머니가 계시는 안방인 것이다. 우두커니 딸과 손녀를 바라보고 계시던 어머니가 영주네도 이젠 늙는구나. 내일 모래가 벌써 사십 고개이니... (“연륜”,Q씨에게, 1981, 217).“

 

김형국, 서울대 명예교수(무단전재 불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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