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어가는 말(박경리 38)

 

     그간 박경리 이야기를 빠지지 않고 읽어준 독자에게 이 연재 글을 적는 속사정을 조금 털어 놓으려 한다. 십여 년 전에 세상을 떠난 작가인데 그가 살았던 삶(1926-2008)을 필자는 어떻게 복원, 기술하는지에 대해 혹시 궁금해 하는 독자가 있을 법해서다.

    글 연재에 즈음해서 미리 적었던 머리말 초안을 약간 다듬었다. 그간 연재했던 글이 전체 집필구상에서 절반을 넘어선 시점이라 필자의 그런 부연이 필요하지 않겠나 싶었다.

박경리 이야기를 적는 필자의 속마음은

    대하소설토지는 한국현대문학의 금자탑, 평단은 물론 독자층도 포함한 공사간(公私間)에 최상의 칭송을 받아왔다. 한 사람의 성취로 우리 현대예술사에서 그만한 무게의 비교대상은 쉽지 않다.

    안타깝게도 개인의 불운이라 할까 삶의 질곡도 그 버금가는 경우를 쉽게 찾지 못한다. 태어날 즈음 이미 부모가 사실상 갈라섰던 탓에 편모 밑에서 자라야했고, 결혼 5년 만에 6,25사변의 회오리에 휘말려 남편을 잃었다. 슬하의 아들도 어린 날에 불의의 사고로 떠났고, 외동딸이 만났던 시인 사위(김지하, 1941- )는 옥살이 세월이 무려 7년이었다. 결혼 직후부터 홀어머니를 모신 박경리는 남편 옥바라지하는 생과부 처지의 딸도 끼고 살아야했다. 세상에 한 대 과수(寡守)도 어려운 법인데, “3대 과부가족으로 오래 살았다. 그렇게 엄혹했던 가족 환경을 살아가는 사이로 일신은 죽음의 병유방암에서 겨우 빠져 살아나왔다.

    작가의 대표작토지를 주제로 학술형 수필을 한 꼭지 적었던 인연으로 나는 1980년대 초반부터 당신 기세(棄世) 때까지 그 문하로 출입할 수 있었다. 당신 작품을 읽으면서, “그 사람에 그 작품이란 옛말대로, 당신의 사람도 읽고 싶었다.

    기실, 이 욕심이라면 작품에 매달리는 동안 생활의 단상을 산문으로 작가가 틈틈이 써왔기에 그 모음집만 읽어도 어지간히 사람됨은 짐작할 수 있었다. 생활수필집은 간단히 꼽아도 너댓 권은 금방 만난다. 전집 출판사가 바뀔 때마다 나왔던Q씨에게』⦁『원주통신시리즈가 그것들이다.

    뿐 아니다. 소설 전업이면서도 문학수업이 당초 시짓기로 시작했던 전력(前歷)으로 소설 집필 사이에 자신을 푸념하거나 달래는 시를 즐겨 꽤나 많이 적었다. 서사시풍이라 그런지 시구(詩句), 시장(詩章)을  이어붙이면 쉽게 산문이 될 정도였다. <어머니>, <할머니>, <외할머니> 같은 제목의 시작(詩作)을 통해 당신의 내밀한 혈연 내력을 아주 자세하게 적어냈다.

    그래도 애독자로서 작가에게 내 욕심의 말을 건네곤 했다. 기왕이면 자서전도 한번 적어주었으면 좋겠다고. 장장 25년의 몰입투신 끝에 1994년 여름에 대하소설토지가 완간된 뒤, 마치 마라톤 선수가 완주 끝에 몸을 누이듯 붓을 잡지 못하는 시간이 꽤 오래라 싶었던 때였다. 이럴 때 당신 일대를 돌아보는 자술(自述)을 적어주었으면 좋겠다고 입에 올렸더니만 장편시장과 전장(1964)이 바로 당신이력, 곧 주인공 남지영(南知英)이 자신의 분신이라 했다.

    과연, 한 작가(이승우, “자화상을 그리는 일,”소설가의 귀속말, 2020)가 단도직입으로 말한 대로, 소설가란 여러 편의 소설들을 통해 한 편의 자서전을 쓰는 사람이라 했음은 누구보다 박경리를 말함이었다. 첫 단편계산(1955)에서 회인(會仁)은 물론, 두 번째 단편흑흑백백(1956)에서 6.25 직후 서울에 환도해서 교사로 취직하려던 혜숙(蕙淑)도 작가의 분신이었다. 단편 속의 말 어머니와 딸을 데리고 사는 결손가정이 바로 박경리의 가정이기도 했다.

    장편의 경우는 작가 역의 주연도 있고 조연도 등장한다. 이를테면 시장과 전장은 남지영이 줄곧 소설이야기 전개를 리드하는 주연인 한편, 작가를 대변하는 조연도 한몫한다. 작가의 남편 하기석과 함께 등장하는 남자 주인공은 그 형 하기훈이고, 이이의 연인 이가화(李嘉禾)는 작가 분장의 조연이다. 함께 서커스 구경 갔던 할머니가 구두쇠짓 하던 광경은 당신의 서사시 <친할머니>에 그대로 나오는 인격이다(4밀집모자와 나비”).

    아무튼 당신 말 대로 읽었다. 젊은 날의 삶은 대충 감을 잡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틈새 결락(缺落)에 대해선 당신과 대면한 자리에서 지나가는 말처럼 틈틈이 물어보기도 했다. 이를테면 당신이 상경하면 종종 묵던 신도시 일산의 한 아파트에서도 가족사항에 대해 육성으로 들었다. 1997626일 오후 4-6시 사이도 그런 시간이었다.

남편은 주안의 시험장에 근무했고 나는 학교를 나갔다. 남편은 가족이라 하면 하늘처럼 알았다. 시아버지가 부인을 위했다. 그래서 그 아들들도 아내를 사랑하는 버릇을 가졌었다. 남편 쪽은 남자가 4형제. 큰 형님은 농사를 지었고, 둘째는 일본에서 비단 사업을 했다. 동생은 멋모르고 민청원(좌익 청년 행동대원)에 가입하곤 했다. 시어머니는 나씨. 내가 외동딸이고 보니 결혼하자마자 친정어머니도 함께 모시고 살았다. 시숙들도 나를 자랑스럽게 여겨 친정어머니 모시는 것은 문제가 아니었다.

    박경리는 일반 독자들만큼이나 동시대 작가들의 사랑과 존경을 받았던 경우로도 기록될 만했다. 그들이 직접 박경리의 삶에 대해 이모저모로 적잖이 문자를 적었는데, 간단히 꼽아도 박완서, 최일남, 이문구 등을 들 수 있다. 모두들 한국현대문학에 당당히 이름을 올렸던 걸출한 작가임은 문학평론가가 아닌 나 같은 독자도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무엇보다 그들 작품집 읽기를 돕는소설어사전이 제가끔 출간되었던 작가들인 것이다.

    장차 한 권으로 묶을 글은 박경리 이야기’(가제)이다. 남들은 이런 글을 일컬어 쉽게 평전이라 이름 붙일지도 모르겠다. 내 알기로 평전은 해당 영어단어(critical biography)가 말해주듯 비평을 곁들인 사람의 일대기. 그렇다면, 내 지적 배경이나 이력으로 미루어 겨우 사실로 복원해보는 사람 일대라는 뜻에서 그냥 박경리 이야기라 이름 붙이는 것이다.

    알다시피 박경리(朴景利)는 필명이다. 본관은 밀양으로 공식등단하기 전의 자연인 이름은 금이(今伊). 그 시절에 부르기 좋게 ()’로 이름을 끝맺던, 당신 어머니 김용수의 아명도 선이였듯, 전형적인 여자 이름이었다. 그래서 박경리를 이야기하는 도정에서 자연인이던 시절은 박금이로, 문학을 직업으로 삼게 된 이후는 필명 박경리로 대체로 구분해서 글을 적으려했다.

    글을 적으면서 두 가지 점에 착안했다. 사람 일대를 연대기적으로 곧 시간대별 행적을 복원하려는 것이 아니라 의미론적으로 일대를 재구성하려 했다. 또 하나는 최대한 사실의 나열이 되겠는데, 소망하건데 실사구시(實事求是)라고 그 사실에서 진실이 노출되는그런 글이 되었으면 했다.

    나는 그 사이 사람이야기를 여러 권 적었다. 그 가운데 가장 보람으로 여기는 것은 서양화가 장욱진(1917-90) 일대기였다. 1990년대 초에 출간한 이 책은 물론 박경리에게 전한 적 있었다. 장욱진 책을 잘 읽었다는 지인 중에서 내가 박경리와 왕래한다는 사실도 알고는 소설가에 대한 글도 적었으면 좋겠다는 덕담을 해준 이도 있었다. 이 말을 박경리에게 다시 전했더니만 우리가 만난 지 10년이나 되었으니 그럴 법도 하다고 반응해준 적 있었다.

외동딸이 세상을 떠나자

    하지만 나는 섣불리 그런 발심을 실행할 용기도, 이를 뒷받침할 충분한 자료도 갖고 있지 못했다. 해도 이 처지를 재고해야겠다고 고쳐 마음먹을만한 사단이 생겨났다. 1990년대 초반에 당신의 단구동 집이 택지개발사업으로 헐려나갈 위기 때 그 보전 노력에 앞장섰고, 연장으로 원주시 매지리에 토지문화관이 만들던 도정은 아는 이가 작가와 나 그리고 기껏 당신의 외동딸(김영주, 1946-2019) 정도였다. 그 외동딸마저 2019년 말에 갑자기 타계한 상황이라 부득불 20여년 왕래를 했던 내가 기억하는 정도라도 그 근거를 중심으로 글을 적어둬야 하지 않겠나, 마음을 고쳐먹었다. 이 연재 글은 그 작심의 작은 결실이다.

    글의 틀이라 할까 큰 구성은 미리 마음에 어렴풋이 상을 잡고 시작했지만, 적어나가는 도중에 계속 내용이나 방향을 놓고 글 진행을 다듬어 나갔다. 나름대로 힘껏 자료도 모아왔고, 정보 소스가 될 만한 사람도 만나왔다. 외동딸이 타계한 뒤 토지문화관의 운영을 이어받은 작가의 외순주로 부터 박경리 가계의 제적등본 등에 접근할 수 있는 편의도 제공받았다. 이래저래 공사간의 모든 정보를 찾으려고 애써온 나름의 노력은 한편의 박사학위 논문을 꾸미려는 노정(路程)과도 닮았다 싶었다.

    사계의 말로 박사학위논문은 외형적 지표로 한 사람이 자기완성적인 글을 적을 수 있음의 입증이고, 내면적 성취로 주제에 대한 정통함의 한 결정(結晶)이라 했다. 그런 점에서 학위논문 집필은 대학 교직자에겐 일생일대의 투신이라는 게 정평인데, 박경리 이야기가 나에게 또 한 번의 학위공부가 아니겠나 싶었다. 온통 박경리로 살아간다.”는 기분으로 하루 24시간을 그 생각에 골몰해왔다.

    하나마나 한 소리이지만 사람 일대의 복원은 쉽지 않다. 내 자신의 지난 이야기도 막상 적으려 해도 삶의 고비 몇몇은 기억나지만 그 디테일에 들어가면 캄캄한 굴속을 헤매는 기분인데, 하물며 남의 일대를 추적하는 노릇은 양말 신은 채로 다리 긁기에 다름 아니다 싶기도 했다. 나름대로 구상한 바를 순차적으로 적어나가는데 적다보니 앞에 적은 것의 차질을 "앗차!" 하고 깨닫는 경우도 한 두 번이 아니었다.

    이 점에서 20204월부터 김동길 교수의 유명 블로그 석양에 홀로서서박경리 이야기연재를 적어나가는 시간은 일종의 시필(試筆) 기회라 싶었다. 유명 작가들이 신문 등에 연재소설을 적는 방식을 염두에 두고선 1주일에 한 꼭지, 한 회 분량은 대체로 2백자 원고지 20장 분량 전후로 적어왔다.

    이야기가 완성되면 약 70꼭지에 이르지 않겠나 짐작하고 있다. 내 집필 전체구상에서 연재가 그 절반을 넘어선 마당에 그간 박경리를 사랑해서 열심히 읽어준 독자들이 궁금하게 여길만한 전후 속사정에 대한 작은 변()으로 이 글을 적는다.

    작가가 어디선가 문학 글쓰기는 바다 속을 왔다 갔다 하는 흐릿한 모습의 물고기를 그려내는 작업이라 했다. 거기에 견주면 나는 바다 속이 아닌 대명천지 어딘가에, 다만 흩어져 있을 뿐인 엄연한 기억과 기록을 각종 정보원(情報源)을 동원해서 추출정리하는 노력이었다. 그 진실에 글이 대충이라도 다가가지 못했다면 그건 전적으로 내 식견과 성심의 부족 탓일 뿐이다.

 

김형국, 서울대 명예교수(무단전재불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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