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생각 저 생각 (31) 무애 양주동 7

 

    위에서 금성시대의 유엽과 백기만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그러면 고월 이장희는? 무애는 고월에 관하여 이렇게 말한다. “요절한 시인 이장희 군은 금성동인 중 출색(出色)의 시인이었고, 나의 젊은 시절의 단 하나의 지심(知心)의 벗이었다.” ‘출색은 출중(出衆)하여 눈에 띰을 말하고, ‘지심은 뜻이 서로 통해 잘 안다는 말이다. 시재(詩才)는 뛰어나고, 서로 마음을 잘 아는 친구였다. 그것도 단 하나의 지기(知己)였다니 얼마나 자별(自別)했는지는 짐작이 간다. 그런 고월이 28세의 젊은 나이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무애의 마음이 어떠했을까? 독자들의 상상에 맡긴다. 무애는 고월과의 교분에 관하여 몇 가지 추억을 이야기했다.

    첫째, 고월은 술을 마실 줄 몰랐다고 한다. 그래도 주당들을 따라 다녔다. 가만히 있으려니 심심해서였겠고, 견물생심이라 그랬는지 모르나 안주만 집어먹었다고 한다. 그래 백웅(백기만)에게 핀잔을 받기도 했다. 그래도 천연했다. 너희들은 술을 마시는데, 안주나마 못 먹을 법이 있냐는 심리였을 것이다. 술꾼들에게는 같이 마시지 않는 친구는 대개 밉상이다. 그래도 고월은 밉지 않았다. 얼굴에 늘 고운 미소를 띠웠다고 했다.

    둘째, 1925년 무애가 와세다대학 문학부 영문학과에 진학하기 위하여 서울을 떠날 때다. 역에 전송 나와 홀로 플랫폼 구내를 왔다갔다 거닐다가 급기야 발차 벨이 울자 문득 내가 앉은 자리 창밖에 와서 그 뒷포켓 속에서 1원짜리 얇은 위스키 한 병을 들이밀고 말없이 돌아서역으로 나갔다고 한다. 그 모습이 퍽이나 쓸쓸히 보였던 모양인데, 그 위스키를 언제 마셨다는 이야기는 없다. 경부선 기차 속에서, 관부연락선 속에서, 아니면 동경까지 갖고 갔는지도 모르나, 고월을 생각하며 마셨을 것이다. 얇은 병의 위스키다. 한 번에 다 마셔도 취하지 않았겠으나, 취해도 생각나고 취하지 않아도 생각나는 친구였다.

    셋째, 무애가 마지막으로 고월의 장사동 집을 찾은 것은 그가 죽기 얼마 전이다. 어두운 방에서 고월은 ()이란 이름의 절필의 시를 무애에게 보였다. 발표되지 않았기 때문에 정확한 기록은 아니나, 무애는 기억을 더듬어 아래와 같이 적었다.

    "어느 아이가 띄우다가 날린 것인가?

    전선줄에 한들한들 걸려있는 연---

    바람, , 눈에 시달려

    종이는 찢어지고, 꼬리는 잘리고,

    살만이 앙상히 남아 있고나.”

    그런 뜻의 노래였다는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에 한 줄이 더 있다.

    “아아, 그것은 나의 ()’이런가.”

    무애는 그 시를 읽고 너무나 소름이 끼치기에 그의 손을 잡고 그에게 재삼 간곡히 든든한삶을 강조하고 종용했다고 한다. 그러나 고월은 친구의 말을 듣지 않았다고 무애는 개탄했다. 고월이 타계하자, 누구보다 슬픈 무애는 장문의 애사(哀詞)를 썼다. 그 가운데 한 문장을 적는다.

    “도도한 시대적 경향이나 현실적 입장으로 보아서는 군의 예술---그 초현실적 시풍은 시대적 한 고도(孤島)’일는지 모른다. 그러나 나는 감히 말하노니, 이 시인의 작품은, 그 순수 때문에, 그 자기에의 충실 때문에, 오래도록 남으리라고.”

    그래 여기에 오래 남은 그의 시 봄은 고양이로다를 적는다.

     꽃가루와 같이 부드러운 고양이의 털에

    고운 봄의 香氣가 어리우도다.

    금방울과 같이 호동그란 고양이의 눈에

    미친 봄의 불길이 흐르도다.

    고요히 다물은 고양이의 입술에

    포근한 봄 졸음이 떠돌아라.

    날카롭게 쭉뻗은 고양이의 수염에

    푸른 봄의 生氣가 떠돌아라. [異河潤, 詩集, 313-314.]

  『서경(書經)시는 뜻을 말하는 것이며, 노래는 말을 길게 읊는 것[詩言志 歌永言]”이라고 했다. 고월은 고양이의 털, , 입술, 수염을 빌어 봄을 말한 것이다. 감각의 표현이라고 해도 좋다.

 

최명(서울대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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