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이의 학교문턱(박경리 32)

 

    작가 박경리의 본명은 '금이'. 아홉 살이던 1934년에 통영제일공립보통학교(오늘의 통영초등학교)에 들었다. 1908년 개교인데 처음부터 교사(校舍)가 모자라 옛 삼도수군 통제영 자리 세병관에서 수업을 받았다. 여기서 충렬사 쪽 언덕길을 향한 일대가 금이의 행동반경이었다. 간창골이라 했다. 통제영 관아 아랫마을 관청골이 와전된 이름이었다.

    작가의 어린 나이는 천진난만이 온통 집안의 기쁨이던 그런 유년시절이 아니었다. 그때 수업 시간에도 소설책을 볼 정도로 책에 빠졌던 것은 아버지의 내침으로 모녀(母女)끼리 살아야만 했던 결손가정의 환경 탓이기도 했던가.

 

2칸 그 집에서 솜씨 좋기로 소문난 엄마가 바느질 등으로 근근이 가난의 생계를 이어갔다. 하지만 어린 금이는 언제나 당당하고 궁색한 법이 없었다. 그리고 자립심이 강하고 무슨 일이든 최선을 다했지. 평생 그랬던 것 같아.

 

딸을 앞세워

    진작 딴 살림을 차린 아버지를 향해 본댁 고수의 어머니 외고집이 구사했던 자구책은 장녀의 존재를 끊임없이 앞세우는 방도였다. 특히 본댁의 존재를 인정케 하려던 지렛대하나가 바로 장녀의 학자금 얻기였다. “과부 퇴침(退枕)에 은이 서 말이라는 옛 속담은 홀로 살게 된 여성에겐 근검절약으로 모아둔 시재가 있다는 말이긴 해도, 남편에게 내침을 당한 처지에서, 남편이 재력이 있다고 믿는 한에서 당신 줌치에 감춰둔 비상금을 자녀교육에 쓴다는 것은 말도 안 된다고 여겼다.

 

초등학교 때 수업료 때문에 몇 번씩 집에 쫓겨 가야 했던 일은 오랫동안 잊혀지지 않는 부끄러움이겠습니다만, 우연히 장롱 속에서 수업료의 천 배가 넘는 백 원짜리 지폐들을 접어서 넣은 전대를 발견했을 때의 슬픔, 돈을 보았노라 했을 때 나를 보던 어머니의 험악한 눈은 타인의 눈이었습니다(‘십이년 만에’, Q씨에게, , 1993).

그러니까 그때가 여름이었다. 아버지가 운영하는 새터 차부에 갔다. 살림집이 딸려 있었다. 월사금 낼 돈이 없었던 것도 아니었는데 어머닌 월사금 받아 오라고 곧잘 그곳으로 나를 내몰았다. 일종의 핑계였던 것이다. 아버지는 부재중이었고 아버지와 혼인한 젊은 여자 기봉이네가 아이를 안고 부채질을 하고 있었다. 그는 올곧잖은 눈으로 뭣하러 왔느냐고 물었다. 당신에게 볼일이 있어 온 게 아니라는 응수에 기봉이네는 동무들과 함께 차부 앞을 지나면서 나를 작은엄마라 했느냐 하며 따졌고 나는 악다구니를 했다. 노발대발한 기봉이네는 내게 부채를 던졌고 그것이 내 얼굴을 치고 땅에 떨어졌다. 그길로 나는 소리 내어 울면서 큰집으로 갔다. 그년이 감히 누굴 때려! 할머니 일갈에 집안은 온통 난리가 났다. 부산에 출장 갔다 온 아버지는 차부로 달려가서 기봉이네를 매질하고 양복장 서랍을 모조리 꺼내어 마당에서 불을 질렀다고 했다. 그후 기봉이네는 깍듯이 내게 예절을 지켰다(서사시, <친할머니>).

  

    편모슬하의 그런 어린 날이 어김없이 소설의 점경(點景)이 되었다.표류도(나남, 1999, 58-60)는 당신 서른넷이던 1959년 작품인데, 거기 주인공 다방마담 강현희도 같은 나이로 설정되었던 점에서도 소설 이야기는 당신의 과거사 한 토막이었다

 

어머니하고 나하고 단둘이서 살던 시골의 집, 어머니는 그 헙수룩한 집의 대문에다 녹슨 쇠통을 잠가놓고 외출을 하는 일이 번번이 있었다. 책가방을 내동댕이치고 대문 앞의 돌층계 위에 턱을 괴고 앉아서 어머니를 기다리던 어린 시절의 나였었다. 턱을 괴고 생각하는 것은 어머니가 돌아오다가 자동차나 마차에 치어 죽었는지도 모른다는 것이요, 작은 엄마하고 살림을 하는 아버지한테 가서 구박을 받고 오다가 강물에 빠져 죽었을지도 모른다는 것이요, 아니 엄마 말마따나 다른 신랑을 얻어서 멀리, 아주 멀리 도망을 쳤을 지도 모른다는 것이었다.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면 나는 벌떡 일어서서 양손으로 얼굴을 가리고엉엉 울었다. 불그스름한 저녁노을을 타고 갈가마귀 떼가 울고 날아가면 더욱 서러워서 소리를 질렀던 것이다. 짭짤한 논물 방울에 입맛을 다시며 그대로 돌층계 위에서 잠이 들어버렸던 일도 있었다.

나는 나에게 고통을 주는 어머니가 싫었다. 그래서 반항을 했다. 그러면 어머니는 어떻게 너를 믿고 살겠느냐고 한탄을 했다. 남편 덕도 못 본 내가 무슨 자식 덕을 보겠느냐, 이런 박복한 내가 살아 무엇 하겠느냐, 죽어 마땅하다, 하며 치마끈으로 목을 매는 시늉을 한다. 나는 치마끈을 졸라매는 어머니의 손을 물어뜯고 발광을 했다. 외딴 집의 어두컴컴한 방에서 지르는 내 울음소리가 여울처럼 멀리에 울리며 되돌아왔다.

 

    그 시절에 대한 동무들의 학창시절 증언은 금이가 초등학교를 마치고 진주고녀로 진학할 때 까지였다. "금이를 처음 만난 건 입학식 날이지. 당시는 10살 입학이 기본이라 우리는 모두 소띠였는데, 금이는 9살 범띠였지.“

    졸업은 제 25기로 1941년이라 했는데, 여기엔 동기생 사이에 기억 착오가 있지 싶었다. 1908년 개학인 이 학교는 처음 2년제라서 1910년에 제 1회 졸업생을 배출했다. 1911년에 3년제 여자부가 신설되었고, 6년제는 1920년부터였다. 그런데 금이가 잠시 분교로 전학 갔다가 되돌아왔음을 두고 부산 친척집에 머물다 되돌아왔다는 회고담은 기억들의 혼선이었다. 그리고 졸업이 1940년이라야 이후 진주고녀의 입학졸업 시점과 상충하지 않는다(“초등학교 동창 강신연이 기억하는 고 박경리 선생,” 연합통신, 2008.5.8; “단짝 친구 홍봉연 할머니 증언,” 한산신문, 2008.5.10).

 

얼떨떨 초등학생

    간창골 아저씨는 금이의 5학년 담임인 일본인 여선생과 아는 사이였다. 당연히 금이의 학업 진척에 관심을 가져달라고 부탁했을 터에 어린 마음에도 스스로 생각하는 바가 많았다. 동무들도 느낀 바가 있었다.

 

무슨 기적을 바라듯 공부 잘하는 아이가 되기를 소망하였지만 성적은 언제나 뒤에서 세는 편이 빨랐고 똑똑하게 활발하게 말하는 아이가 되려고 무진히 노력하였지만 그는 언제나 입속으로 중얼거리거나 더듬거나 아니면 마음과는 엉뚱한 횡설수설이었다. 그는 선생님이나 동무들에게 활짝 펴진 웃음을 보내고 싶었으나 그보다 먼저 얼굴은 붉어지고 결국 울상이 되고 말았다. 그의 유일한 영광은 한반에서 둘씩 뽑아 미술 특별지도를 하는데 거기에 한번 뽑힌 것과 작문이 한번 뽑힌 그것뿐이었을 것이다(환상의 시기, 나남, 1994, 230).

  

(금이는) 그러니까 학교 공부는 겨우 중간밖에 못했다. 거의 매일 선생님 분필에 맞았지. 헌데 그 당시는 일제강점기라 나이는 작았지만 우리 나름의 반항기질도 있었다. 수업은 물론 운동장에서 넘어질 때도 비명도 일본말로 할 정도였고, 일주일 동안 한국말을 한 번도 안 쓴 아이들에게는 상도 주고 했지만, 우리는 그런 친구들을 싫어하고 일본말 공부를 싫어했다.

 

    보통학교에 다니던 어린 나이에도 고장의 항왜정신에 물들어 있었다는 말이었다. 저 한산도의 이순신에서 이름을 따온 고장답게 그 기미년의 통영 독립운동 또한 특기할만했다. 관청 공무원 다수의 가담은 물론 기생들도 금붙이를 팔아 시위자금을 댔다. 그 가운데 6개월 옥고까지 치른 기생 이야기는 자랑스런 통영 도시역사 한 자락으로 남았다. 국희(菊嬉)가 기생이름이던 이소선(李小先, 1900-?)이 주인공.

    법정에서 죄목을 따지는 일본인 판사에게 되물었다. “나는 여성으로서 본부(本夫)와 간부(奸夫)가 있는데, 어느 남편을 받들어 섬겨야 여자도리에 합당하겠습니까?’ 물론 본부를 섬겨야 옳지!“가 판사의 반응. 국희는 우리가 독립운동을 하는 것은 여자가 본부를 찾아 섬기는 일입니다“(경남일보, 2019.3.7). 재판 조서에 적힌 그녀의 본적이 통영읍 조일정, 곧 오늘의 문화동인데 바로 박금이의 본적지이기도 했던 점에서 작가와 또래 동무들에게 의기(義妓)들의 행적이 특별히 뇌리에 입력되었을 것이었다(국희는 2008년에 독립유공자로 대통령 표창을 받았다).

    파란만장까지는 아닐지라도 우여곡절 끝에 초등학교를 졸업했다. 중학 진학은 물론 여학교를 마치거든 약전(藥專)에 보내세요. 여자 직업치고는 약제사가 제일입니다!”라며 간창골 아저씨는, 꼴찌를 겨우 면하고 있는 금이의 학업실력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런 말을 했다(환상의 시기, 1994, 228-9).

 

김형국, 서울대 명예교수(무단전재불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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