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미술계선구자 박래현, 삼중통역자

 

박래현은 대중들에게는 낯선 이름이다. ‘청각장애를 가진 한국화의 거장 운보 김기창의 아내로 더 알려졌기 때문이다. 또 이른 나이 56세에 별세하였기 때문이기도 하다.

 

박래현은 세 자녀의 어머니. 그리고 일찌감치 동경 유학을 다녀 온 선구자 여류화가다. 박래현은 아내, 어머니, 화가 세 가지 중 어느 하나도 포기하지도 못한 채 작품 제작에만 집중하지 못하는 자신이 과연 예술가라고 할 수 있는지 늘 번민했다. 전시는 작가로서 작품에 대한 치열한 투쟁과 함께 수필들에서는 여자와 예술가로서의 고민을 볼 수 있다.

 

20세기 한국 화단을 대표하는 여성미술가 박래현의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는 '박래현, 삼중통역자(Park Rehyun Retrospective: Triple Interpreter)' (2020. 9.29~2021. 1. 3)이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 전관에서 열리고 있다. 일본화로 시작하여 동양화의 재료와 기법을 넘어 추상화, 판화, 태피스트리에 이르는 작품 138, 아카이브 71점이 소개된다.

 

전시의 주제인 '삼중통역자'는 박래현 스스로 자신을 일컬어 표현한 명칭이다. 박래현이 생전에 청각장애를 가진 남편 김기창을 위해 한국어, 영어, 구화를 수화로 통역해주었던 자신을 삼중통역자와 같다고 표현했다. 이번 전시에서의 삼중통역은 회화, 태피스트리, 판화라는 세 가지 매체를 넘나들며 연결 하고자했던 그의 예술 세계로 의미가 확장된 4부로 진행된다.

 

1한국화의 현대에서는 박래현이 일본에서 배운 일본화를 버리고, 수묵과 담채로 당대의 미의식을 구현한 현대 한국화를 만들어가는 과정을 소개한다.

 

2여성과 생활에서는 아내이자 세 자녀의 어머니로 살았던 박래현이 예술과 생활의 조화, 여성지에 실린 수필들에서는 생활과 예술 사이에서 고민했던 박래현의 모습도 만날 수 있다.

 

3세계 여행과 추상1960년대 세계 여행을 다니며 박물관의 고대 유물들을 그린 스케치북들을 통해 박래현의 독자적인 추상화가 어떻게 완성되었는지 추적할 수 있다.

 

4판화와 기술에서는 판화와 태피스트리의 새로운 기술을 익히고 동양화의 표현영역을 확장하고자 한 박래현을 조명한다. 판화와 동양화를 결합한 새로운 동양화를 감상할 수 있다.

 

박래현은 1920년 평안남도 진남포 부유한 대지주의 장녀로 태어났다. 1939년 도쿄로 가 여자미술전문학교 사범과 일본화에 입학하였다. 4학년 재학 중인 1943단장으로 조선미술전람회에서 총독상을 수상하였다. 1956년 서구의 모더니즘을 수용한 새로운 동양화풍으로 대한미협에서 이른 아침과 국전에서 노점으로 대통령상을 연이어 수상하며 화단의 중심에 섰다.

 

1960년대 추상화의 물결이 일자 김기창과 함께 동양화의 추상을 이끌었고, 1967년 상파울루 비엔날레 방문을 계기로 중남미를 여행한 뒤 뉴욕에 정착하여 판화와 태피스트리로 작품의 영역을 확장하였다. 19747년 만에 귀국하여 개최한 귀국판화전은 한국미술계에 놀라움을 선사했으나, 19761월 간암으로 갑작스럽게 타계하였다.

 

나는 박래현 살아생전에 수차례 그녀의 집을 찾았고, 그녀의 막내딸과는 시카고예술대학에서 같이 공부한 인연이 있다. 이번 전시를 통하여 박래현의 태피스트리를 알게 됐으며, 그래서 그녀의 딸이 섬유예술을 공부한 것이 아닌가 추측해본다. 엄마 박래현이 오래 살았더라면 그녀의 딸도 귀국하여 섬유예술가로서 활약하였을지도 모르나 결혼하여 미국에 거주하고 있다.

 

이번 전시는 김기창의 아내가 아닌 예술가 박래현의 작품을 조명함으로써 여성 미술계에서 선구자로서의 업적을 남긴 박래현 예술을 조명하는 기회가 되리라 기대한다.

 

이 성 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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