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적 산책 29 (명의 허갑범)

 

명의 허갑범

    나는 비교적 건강하게 한평생을 살았다고도 할 수 있다. 젊었을 때도 그랬고 나이가 들면서도 건강에는 이상이 없었다.

    70대 중반이 되어 가까운 친구의 권면으로 연세대 세브란스를 정년퇴직하고 병원을 하나 시작한 당뇨병 전문의 허갑범 원장을 찾아가게 되었다. 혹시 몸에 이상이 생기지 않았나 하고 그 병원을 찾아갔더니 혈액검사를 하고 혈당치가 좀 높다고 일러주면서 한두 가지 약을 처방해 주었다. 그때부터 정기검진을 위해 석 달에 한번 씩은 허갑범 내과를 찾아갔고 15년 쯤 환자 생활을 한 것 같다.

    흔히들 당뇨병에 한 번 걸리면 완전히 치유되기는 어렵고 혈당치를 조절하며 살아야 한다고 들었고 겸하여 합병증을 조심해야 한다는 그런 가르침도 받았다. 그러나 나는 장수하기 위하여 먹고 싶은 것을 입에 대지도 않고 살 수 있는 사람은 아니다. 당뇨 때문에 먹고 싶은 것을 못 먹는 친구들을 향하여 의사가 안 보는 데서는 좀 먹어도 돼라는 위로의 말을 던질 뿐 아니라 나는 의사가 없는 곳에서 그가 먹지 말라는 감이나 포도를 먹은 죄상은 뚜렷하다.

    그러다 90대를 맞이하였다. 석 달 만에 검진을 갔더니 혈당치가 정상화되어서 처방을 할 필요가 없다라는 담당의의 소견이 있었다. 요새도 석 달에 한 번 진료를 받으러 가긴 하지만 여전히 당뇨약 처방은 없다. 그런 사이에 처음으로 통풍’(Gaut)라는 병을 얼마동안 앓는 신세가 되어 체중은 많이 줄었지만 몸이 날씬해진 것은 사실이다. 그러면서 당뇨병은 일단 졸업을 한 셈이다.

    나는 가까운 친구들에게는 나의 건강 상태를 낱낱이 털어놓지만 다른 사람들에게는 별로 하지 않는다. 매 주 한 번씩 가서 설교하는 청평의 기도원에서도 내 당뇨병을 고쳤다는 말을 입 밖에 내지 않는다. 혹시 신도들이 기도해서 당뇨병이 나은 게 아닐까 의심할 가능성이 많기 때문이다.

    허갑범 원장은 내 병을 고치고 나를 성한 사람으로 만들어 놓은 뒤에 나보다 먼저 하늘나라로 갔다. 그의 부인에게도 허갑범 원장은 나의 당뇨병을 고친 명의입니다라고 서슴지 않고 찬사를 보냈었다. 어떤 경위로 당뇨병의 치유를 받았는지는 모르지만 내 병을 고친 것은 허 원장이기 때문에 그를 명의라고 부를 만도 하지 않은가. 아무리 오래 살아도 모를 것이 인생이요, 이해 못 할 것이 인생사이다.

 

김동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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