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생각 저 생각 (29) 무애 양주동 5

 

문주반생기(범우문고)의 연보에 의하면, 무애는 1914년에 평양고등보통학교를 입학했으나 중퇴했다. 고향으로 돌아와 5-6년간 한학과 한시를 숙독한 것으로 되어있다. 다락루 시절이다. 또 그 시절, 결혼했다가 곧 이혼했다는 기록이 있다. 이건 전혀 내 추측인데, 무애의 결혼은 자당 생전의 일이 아닌가 한다. 당시는 조혼의 풍습이 있었다. 자당이 무슨 연고로 작고하셨는지는 모르나, 필경 생전에 며느리를 보고 싶으셨을 수도 있다. 자당의 작고가 1914년이다. 그 해 무애는 열한 살이었다. 조숙했겠으나, 어린 신랑이다. 결혼은 그렇다 치자. 그 나이에 이혼까지 했으니, 마음이 편할 리 없었을 것이다. 불편한 마음을 다스리는 약은 술이다. 마셨다. 취했다. 더 마셨다. 그러다가 이래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부의 질책을 받았던 모양이다. 그래 그는 상경하여 중동학교 고등속성과에 입학한 것이 아닌가한다. 1년 만에 모든 과정을 마쳤다. 최우등졸업이라 장학금을 받아 일본유학을 가게 되었다는 것은 위에서 말했다.

    동경에서다. 영문학과 불문학을 두고 어느 것을 전공할까 결정하지 못했다. 그때 같은 하숙, 같은 방에서 자별하게 지내던 J군이 전공의 선택은 취미와 이상을 따라야 한다고 충고(?)했다고 한다. 어려서부터 마시던 술이다. 함께 마시다가 들은 충고였다. 당시 무애는 프랑스문학의 상징주의와 퇴폐파를 좋아하기도 했지만, J군의 충고를 따라 와세다대학 예과 불문학과에 입학한 것이다. J군과는 왜소주(倭燒酒)를 주로 마셨다. 안주는 고구마였다. “고구마를 엇베어 소금을 쳐 구운 것인데, 궁진한 판이요 처음 먹는 것이라, 아주 맛이 있었다고 했다. 열 살적에 어머니 몰래 광에서 술을 훔쳐 마실 때의 안주는 북어였는데, 이젠 고구마로 전락(?)했다. 고구마가 맛있다고 했지만, 싼 맛의 안주였다. 하기야 왜소주도 싸구려였을 것이다. 불문학과 입학은 J군 때문이라지만, 실은 고구마 안주의 왜소주 덕분이 아닌가 한다. 나의 생각이지만, 취한 김의 선택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4년 후 무애는 영문학과로 진학했다. 초월주의 사상가 에머슨(Ralph Waldo Emerson, 1803-82)보상론(Compensation)의 영향이기도 한데, “취미와 이상을 접은 결정이었다. 졸업 후의 취직을 염두에 두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 4년 동안 무애는 불문학에 정진한 것은 물론 아니다. 시작(詩作)과 평론 등으로 문학운동에 몰두했고, 귀국하여 유엽, 백기만, 이장희와 더불어 금성을 발간한 이야기도 위에서 했다. 그 전후가 무애의 금성시대다. 그것도 통음의 시대였다. 여기에는 몇 가지 사연이 있다.

    첫째, 그 무렵 무애는 S라는 여인을 만났다. 금성시대에 만났으니, 아마 밀로의 비너스(Venus de Milo)를 닮았을지 모른다. 남모를 사랑을 바쳤다. 뜨거운 불길이 가슴에 솟았다. 그러나 사랑을 이룰 수 없었다. S가 누군지 무애는 밝히지 않았다. 필경 사랑해서 안 될 사람이었는지 모른다. 그나저나 이제 믿을 수 있는 것은 오로지 술이다. 애매한 술로 날마다 뜨거운 가슴의 불길을 하염없이 꺼야했다. 그래 주량이 일로 다량화(多量化), 심화(深化)”되었다고 무애는 고백했다.

    둘째, S를 여의고, K를 만났다. K는 후에 소설가로 이름이 알려진 강경애(姜敬愛, 1907-1943). 그녀는 1921년 평양 숭의여학교에 입학했다. 동맹휴학에 가담했다하여 1923년에 퇴학을 당했다. 그해 평양의 한 문학강연회에서 무애를 만났다. “참으로 재주 있는 소박한 소녀였다. 그녀를 대동하고 서울로 와 둘은 1년 남짓 청진동에서 동거했다. 소박한 소녀를 꾄 것이다. 좋게 얘기해서 자유분방이다. 그러나 좋기만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마음의 부담이 컸다고 생각한다. “K를 만난 뒤에도 나의 주량은 자꾸 늘어만 갔다. 왜냐하면 그즈음 청춘은 한창 서럽고, 인생은 그저 외롭고, ‘사랑도 점차 권태로웠기 때문이다.” 술 마시는 핑계도 다양했다. 술은 계속 늘었다. 술은 마실수록 느는 묘약이다.

    셋째, 금성은 문단의 주목을 받았다. 인기가 좋았다. 그래 무애는 어깨를 자못 으쓱거리고 동경과 서울의 카페, , 목로, 선술집 등을 횡행활보하기도 했다. 술집에서 무엇을 하였는지는 불문가지다. 유엽과 통음하면서 문학적 종횡담론(縱橫談論)에 날이 새는 줄도모르곤 했다.

    여기까지 쓰다 보니 장야지음(長夜之飮)이란 말이 생각난다. 밤새도록 술을 마시는 것이다. 소동파는 잘 마시지도 못하는 술을 조금 마시고는 배에서 잠이 들어 날이 밝는 것을 몰랐다지만, 술꾼들은 새벽이 오는 것을 싫어한다. 그래서 방장(房帳)을 쳐서 아침햇살이 들어오는 것을 차단하고, 촛불을 켜고 날이 밝는 것과 관계없이 마신다. 방장을 치고 마시지는 않았겠으나, 무애도 장야지음을 즐겼던 것이다. 날이 새는 줄 모른 것이 아니라, 밤이 가는 줄 모르고 마신 것은 다락루시절에 꽃봉 여사의 주막에서도 그랬다. ‘세 살 적 버릇이 여든까지 간다는 속담을 실천하고 다녔다. 아니 그 때 무애는 스물이 막 넘었다. 여든이 되려면 멀었다.

 

최명(서울대명예교수)

 

[추기: 위의 J군은 민속학과 한국사를 전공한 손진태(孫晋泰, 1900-?). 그는 19506.25사변 발발 당시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학장이었다. 불행이도 9.28 서울 수복직전에 납북되었다. 그 후는 알려진 것이 없다. 납북 도중 사망했을 가능성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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