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쳐진 피난길(박경리 27)

 

   서대문형무소를 오간다고 넋을 잃었던 며칠 새 14후퇴가 있었고 서울은 다시 적치 하에 들어갔다. 형무소로 오갈 일이 없어졌음에도 옥바라지 골몰이 그만 관성처럼 몸에 붙었다.

    “이튿날도 그 다음 날도그러니까 매일처럼 지영은 창문가에 온종일 앉아서 문고리가 바람에 흔들리면 미친 듯 쫓아나간다. 그러다 갑자기 각목과 나무판자를 이것저것 골라서 방안으로 들여왔다.

 

니 뭐할라고 그라노?”

아이들 데리고 대전으로 가는 거예요. 리어카를 만들어야죠.”

거 참 안될 같더니만... 시상에 니가 목수 노릇을 다하고....”

 

    집에 있던 자전거를 해체해서 거의 완성직전까지 갔다. 공작기능이라 할까 손재주의 금이는 사람을 일컬어 필요 물건을 만들 줄 아는 존재라며 도구(道具)의 인간(Homo Faber)”이라 개념 지은 바의 현신(現身)이라 해도 좋았다. 이른바 정릉시절에 이어 특히 원주시절의 거처엔 당신의 수공(手工)이 빚어낸 흔적은 수두룩했다. 타고난 손재주 덕분이기도 했고, 해당 기능자를 믿고 맡기지 못했던 외고집 성벽 탓이기도 했다. 아무튼 공작인 박금이의 면모가 아주 구체적으로 나타난 초기 모습이 바로 리어커 만들던 광경이었다.

 

지영은 매일 옷을 싸가지고 시장으로 나간다.”

    가장을 잃은 남은 가족의 연명책으로 금이는 남은 옷가지를 들고 흑석동 장에 나가는 신세였다. 1951315, 서울이 재탈환되었다. 그 사이로 3월말 즈음이었던가. 부산에서 또 다른 이모부(姨叔)가 피난길을 앞장서려고 올라왔다. 9.28 수복 뒤 김행도 구명을 돕겠다고 상경했던 송 씨 이모부의 손위 동서 최 씨였다. 그때 사태의 전말을 제대로 보지 않고 송씨가 부산으로 내려왔다고 그 아내가 무척이나 남편을 쫑알댔던 모양이었다. 미안하게 됐었다는 뜻에서 최씨가 올라가는 편에 지원금도 보탰다.

    헌옷 장사를 하고 집으로 돌아오던 길의 금이는 집 앞에서 이모부를 만났다. 금방 사람을 알아보지 못했다. 서로 왕래가 뜸했던 사이였다. 말문을 연 그 일성(一聲)뭐 없어진 사람이지. 잊어버려라!”(<시장과 전장>, 1993, 517).

    마침내 피난길에 올랐다. 아들은 금이가 업고, (영주)는 걸리고 짐은 지게꾼을 샀다. 영등포역까지 따라왔던 지게꾼은 더 이상 못 간다며 돌아가자 최 영감이 다시 수소문에 나서서 한참 만에 대구까지 같이 가겠다는 벙어리 지게꾼을 새로 구해왔다. 그 사이 다리가 아프다는 희를 업어달라고 몇 번이나 최 영감을 불러야 했다

.

영등포까지 가는 동안 최 영감은 담배를 피우느라고 희를 내려놓고, 한번은 소변을 보느라고 내려놓고 그럴 때마다 희는 걸어가야 했다. 희는 숨이 가빠서 허덕이며 어른을 따라간다.”

전 저 짐 안 가지고 가겠어요. 저 짐 소용없어요. 논둑에 내 버리구 가겠어요. 그 대신 지게 위에 희를 올려주세요보따리를 팔에 끼고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며 지영은 흑흑 흐느껴 운다.

당황한 최 영감은 희를 업는다. “내가 어디 평생 아이를 업어봤어야 말이지. 너도 알다시피 나한테는 자식이 없어서, 본시부터 아이들한테 무심해서 안 그렀나.” 안양까지 가는 동안 최 영감은 내내 희를 업고 갔다.

 

    안양역까지 걸어가서 거기 플렛폼에서 내려갈 기미의 화차 주변을 서성거렸다. 최 영감이 역원(驛員)으로부터 무슨 언질을 받은 모양이었다.

    밤새 기차는 김천에 닿았다. 화물칸에 올라앉았거나, 김환기의 <피난열차> 그림에서처럼 서서 가야했던 사람들은 증기기관차에서 내뿜는 석탄연기를 뒤집어써서 나중에 서로 눈만 말똥말똥 쳐다보았다는 뒷이야기는 많이도 들었다. 갓 사춘기의 화가 김종학(金宗學, 1937- )은 석탄가루를 뒤집어 쓴 데도 매력 만점의 앞자리 소녀에 혹해서 목적지 대구에서 안 내리고 소녀 가족이 간다는 부산까지 계속 피난가고 싶었, “여자들은 화장도 안하고 누추한데 가장 여자다워 보이거든요는 그 시절 박금이의 소감이었다.

    그러는 사이 미군 헌병이 화차 칸의 피난민을 모두 내 쫓았다. 어디선가 최 영감이 조랑말 마차를 구해왔다. 그걸 타고 김천 다음의 간이역까지 갔다. 대신역을 말함이었다. 거기서 어젯밤에 타고 온 화물차에 다시 오를 수 있었다.

    대구역 못 미쳐, “한 정거장을 남겨놓고 그들은 미군 헌병이 휘두르는 방망이에 다시 쫓겨났다. 여기까지(지천역을 말함이고 대구역까지는 9.8킬로) 왔으면 그만이지, 무슨 염치로 또 타고 가아? 피난민들은 만족해하며 대구를 향해 걷기 시작한다. 최 영감도 이제는 별수 없이 희를 업고 고개를 넘는다.”

 

피난봇짐도 날아가고

    대구에선 최 씨의 처조카사위인, 연대장 운전병 이 상사를 만났다. 운전병의 아내가 금이와 이종사촌이었다. 마침 연대장의 경주 집으로 쌀을 싣고 간다 해서 거기까지 편승하기로 했다. 비포장 길을 과속했던 사이로 짚차 뒤에 실은 금이의 피난봇짐이 그만 떨어져 나가버렸다.

 

초스피드에 흥겨워하던 최 영감의 기가 폭삭 죽고 말았다. “올 때부터 논둑에 버리고 가자하더니, 방정을 떨어서풀이 죽어 있던 최 영감이 화를 발칵 낸다.

괜찮아요, 이모부. 더 귀중한 걸 다 잃고 오는데 그 까짓 것하다가 지영은 입을 다문다. 경주에서 이 상사와 작별하고 그들은 부산가는 트럭을 탄다. 해가 지고 부산진의 불이 보인다(<시장과 전장>, 39장 축약).

피난한 부산의 이모네 집 2층은 살풍경했습니다. 낡은 왜식 건물은 오르내릴 때 마다 삐걱거렸습니다. 고물 축음기에 어디서 굴러왔는지 음반 한 장, 그것이 이태리 기상곡이었어요. 돌려가면서 되풀이 음악을 들었습니다(박경리, “Q씨에게 2”),

 

    통영까지는 여객선을 이용했다. <시장과 전장> 소설에서 지영 곧 박금이의 개인 행적은 이 대목에서 끝났다. 40장 구성의 소설에서 39장 끝이었다.

    인근 지방에 살았던 내 경험이 기억하는 대로, 그 시절 통영에서 이웃 대처(大處)인 부산과 여수 그리고 마산을 오가는 주종 교통편은 신작로가 아닌, 단연 바닷길이었다. <김약국의 딸들>의 둘째 용빈이 공부하러 서울을 오르내렸을 적의, 그리고 넷째 용옥이 부산에서 일하던 남편을 급히 만나려 했을 적의 교통편이 그 여객선이었다. 뿐인가. 1936년 시인 백석(白石, 1912-96) 통영 색시 ()에 홀랑 빠져 서울에서 통영이라 천리 길을 서너 차례 오갈 때도 구마산역을 거쳐 통영 가는 기선을 타야 했다. 사랑은 실패했지만 '통영'이란 시를 3편이나 남겼다.

    그렇게 오가던 통영 강구안 기선(汽船)머리에서 통영김밥이 여행객의 사랑을 받았다. 그 시절 통영김밥은 원색의 맛이었다. 맨밥을 김으로 둘러싼 것이 그렇고, 반 찬 둘인데 멸치잡이 그물에 함께 걸려오는 꼴뚜기(경남 바닷가 말로 호래기’) 반건(半乾)의 맵싸한 무침도, 어슷비슷 삐지기로 쓴 무를 볼락젓으로 맵싸하게 버무린 좀 질긴 듯 아삭아삭 씹히는 깊은 맛의 토영배무시’(해풍을 맞고 자라 단무지 무 식감의 통영배무우’) 김치도 그 모양새, 그 맛이 원색적이었다.

    해방직전에 고향을 떠났던 금이가 불의의 전란을 맞아 급거 귀향했을 때도 통영김밥으로 요기했을까. 내 알기론 나중에 충무김밥이라 불리면서 이름이 굳어진 그 김밥은 부산-여수 사이 항행에서 배가 잠시 통영에 중간 기착할 때 통과과객들이 찾던, 아니면 통영항을 떠나는 출항여객들이 갖고 오르던 요기꺼리이기 쉬웠다.

 

김형국, 서울대 명예교수(무단전재불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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