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한의 서대문형무소(박경리 26)

 

     매일처럼 서대문형무소로 옥바라지 발걸음을 했다. 그 어느 겨울날 195012월 말, 부교 철판에서 미끄러지지 않으려고 한강가 모래 위에 내버려진 새끼를 주워 신발에 감아 묶었다. 그리고 절룩거리며 형무소로 걸었다반대쪽 길로 다시 피난길에 오르는 사람들이 줄을 잇고 있었다. 독립문이 가까워지자 그곳 거리에는 나오는 사람보다 들어가는 사람이 많았다. 독립문을 지난 길 양쪽에 사람들이 줄어지어 서있었다. 형무소에 가까워질수록 길은 사람들로 하여 꽉 메였다. 거기서 형무소 죄수들을 대전과 부산으로 이감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14 후퇴를 앞두고

열두시에 나온다던가?”

아니 두시에 나온다는군.”

대전으로 이감된다지?”

대전 가는 죄수들도 있고 부산으로 내려가는 죄수도 있는 모양이야, 오늘 떠나는 죄수들은 대전으로 간다던가?”

형무소의 무거운 철문이 열린다. 손목을 한 오랏줄로 얽어맨 죄수들이 천천히 걸어 나온다. 이제는 철수하는 군용터럭도 없어지고 웅덩이 패인 아스팔트길을 대오를 이룬 죄수들이 걸어간다.

내일도 못 찾으면 없어진 사람이에요.”

양편 길에 선 사람들은 물을 뿌린 듯 숨을 죽이고 죄인의 행렬을 바라본다. 흐려진 눈이 가족을 찾는 것이다.

엄마! 어디?”

저기 가지 않어.”

소년과 중늙은 여자가 행렬을 따라 뛰어간다. 울면서 뛰어간다. 죄수 속에 제 식구를 찾은 사람들은 모두 행렬을 따라간다. 나머지는 초조한 빛을 띠우며 온 신경을 모으고 지켜보고 있다.

지영은 안경만 찾는다. (아차!) 안경이 부셔졌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매를 맞을 때 안경이 그대로 있을까.

내일도 내려가는 죄수가 있다더군요. 내일 다시 올 수밖에 없겠어요. 내일도 못 찾으면 없어진 사람이에요.”

이튿날 마지막 죄수가 서울을 떠났다.

지영은 끝내 기석을 찾지 못하고 집으로 돌아온다. 비몽사몽간에 흐느낀다. 팔다리가 다 떨어지고 몸뚱이만이라도 돌려준다면... 깡통을 들고 밥을 빌어다가 먹여 살릴 건데... 돌려만 준다면, 돌려만 준다면....

절망감에 부교 철판 위에 이빨을 부딪고 넘어졌으면, 그냥 미끄러져 강물에 떨어졌으면 하고 생각한다. 영원한 휴식이 그곳에 있으리라고.

 

     그래도 한 가닥 희망은 붙잡고 싶었다. 죽었을 것이라 단정을 내리면서도 두 가지 가능성에 매달리고 있었다. 하나는 후퇴할 때 그 혼란을 틈타 도망을 쳐서 돌아올지 모른다는 것이었는데 날이 가면서부터 그 생각은 차츰 엷어졌고, 다른 하나는 부산으로 이감되어 가서 석방이 되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었다.

     간절한 희망은 그러나 연기처럼 사라지고 말았다. 금이의 절박한 사정에 친지들도 애가 탔다. 동서 한 사람이 대신 사주풀이라도 해서 사태의 추이를 짐작하려 했다. 김행도의 운수가 스물아홉에 아내를 잃는다.”는 상처 괘()였다. 김행도가 스물아홉 나던 해는 1950년이었다. 아내가 죽은 것이 아니라 당신 자신이 변을 당했다.

     사태가 막다른 골목으로 치닫고 난 한참 뒤 사주풀이 말이 새삼 떠오르면서 온갖 생각이 오갔다. “그 나이에 내가 아닌 남편이 죽고 말았다. 그렇다면 다른 여자를 만났더라면 팔자가 달라지지 않았을까....” 그 사이 장모는 제사라도 모시자면 기일을 정해야 한다며 점집을 찾았다. 그렇게 받은 날짜가 1225일이었다. 전체 형국은 세월이 한참 지난 뒤 일 점 혈육이 단도직입으로 압축했다.

내 아버지에 대한 추억은 아주 짧은 것이다. 내 나이 다섯 살 아기였고 온통 난리 굿치는 625전쟁의 어두운 기억의 파편들로 어렴풋이 남아 있을 뿐이다. 삼십 세 꽃다운 나이 반듯하고 아름다운 청춘의 내 아버지는 625전쟁 때 아무 죄 없이 잡혀가서 짧은 생을 마감했다. 죄라면 피난 가지 못하고 직장에 복귀했으므로 부역했다는 것이다.

625전쟁이 터졌을 때 우리는 서울 흑석동 집에 살았는데 황해도 연안여학교에 근무하고 있던 어머니를 기다려야 했고 어머니가 사선을 넘어 겨우 살아 돌아오셨을 때 이미 서울은 인민군에게 점령당했던 것이다. 다시 국군이 서울을 수복하면서 부역했다는 죄로 아버지가 붙잡혀가셨다. 아버지가 서대문형무소에 계셨으므로 우리는 또 피난을 못가고 한강을 사이에 두고 양쪽에서 쏘아대는 폭격 소리를 들으며 그 전쟁의 한 가운데 있었다. 어떻게 그 전쟁 속에서 살아남았는지 모른다(김영주, “아버지를 위한 진혼곡,” <문학의 집서울>, 197, 20183).

부역했다 고발하고 반동했다 고발하고

     전체 국면은 전문 학자들의 서술에서 듣는 것이 정석이다. 그 가운데서 특히 서대문형무소를 오갔던 일인 점이 그리고 독립기념관장을 지낸 이의 글인 점이 의미가 있었다(김삼웅, “한국전쟁기의 서대문형무소”, <월간 말>, 200812, 190-195)

 

이승만 대통령이 서울 시민들은 안심하라고 라디오방송을 거듭하고, 막상 피난을 하려고 해도 한강다리를 폭파시켜 길이 막혀버렸던 상황에서 정부는 잔류한 시민들을 부역자로 몰아갔다. 병자호란 때 환향녀들에 대한 재판이었다.

9.28 수복 후 정부는 부역자처리를 위하여 1950104일 계엄사령관의 지휘감독에 군··경 합동수사본부를 설치하였다. 최종적으로 검거(자수자 포함)된 부역자는 55915명으로 집계되었다. 검거자는 153,825, 자수자는 397,090명이었다. 이 가운데 서울의 검거인원은 15,948명이고 송치자는 3,466, 석방된 사람은 5,155명이었다.

6·25 전란기에 서대문형무소는 몇 차례 주체가 바뀌면서 수많은 사람이 투옥되고 개중에는 사형을 당하기도 하였다. 6·25 이틀 뒤부터 약 3개월 동안은 북한 인민군이 대한민국의 반공·친미 인사들을 투옥시키고, 후퇴할 때 대량학살을 하거나 북으로 끌고 갔다. 수복 뒤에는 국군이 다수의 부역자와 인민군 패잔병들을 살해하였다. 인민군이 철수할 때에 서대문형무소의 모든 자료를 소각함으로써 동족상잔의 와중에서 서대문형무소의 참상은 망각의 무덤에 묻히게 되었다.

 

     하도 기가 막힌 일을 당하면 앞앞이 다 말 못한다!”는 것이 경상도 부녀자들의 상투 어법이었다. 말 못할 정도로 기가 막혔을 개인사도 소설가였기에 글로는 겨우, 피맺히게 압축했다. 전쟁으로 텅 빈 넓은 가게를 인민군이 무단으로 점거했는데, 그것 때문에 작가의 숙부가 수복 후 처형을 당했으니 그처럼 억울한 일이 어디 있을 것이었던가.

 

실은 언제 처형을 당했는지 그 날짜도 모른다. 숙부의 편지 한 장외엔 아무런 연락이 없었고, 사형을 집행했으니 시체를 인수해 가란 통고 같은 것도 물론 받은 바 없다. 사형을 당했다는 어떤 증거도 없지만, 14 후퇴가 있었고, 그 후 숙부의 존재나 이름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게 되었으니 후퇴 전의 제반 상황으로 미루어 집단적으로 처형됐을 것이다. 빨갱이 목숨은 파리 목숨만도 못했고, 빨갱이 가족 또한 벌레나 다름없었다.”(박완서, <그 많은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1992, 256-7).

몇 달을 두고 전선이 일진일퇴를 거듭하는 데로 세상도 손바닥 뒤집듯이 바뀌었으니 그때마다 부역했다 고발하고 반동했다 고발해서 생사람 목숨을 빼앗은 일을 마을사람들은 미친 듯이 되풀이했기 때문이다(박완서, “그 살벌했던 날의 할미꽃,“ <배반의 여름>, 2013, 282; 권헌익의 재인용, <위의 책>, 47)

 

김형국, 서울대 명예교수(무단전재불허)


 

 No.

Title

Name

Date

Hit

2723

조선시대의 재산상속, 조선시대의 소설

이성순

2020.10.20

131

2722

이 생각 저 생각 (26) 무애 양주동 2

최 명

2020.10.19

1468

2721

하느님이 하시는 일은 무엇인가?(411)

정우철

2020.10.18

259

2720

460. 미국 역사상 가장 악랄한 마피아 ‘알 카포네’ 이야기...

인승일

2020.10.17

311

2719

종교적 산책 25 (성욕은 필요악인가)

김동길

2020.10.16

1131

2718

뒤쳐진 피난길(박경리 27)

김형국

2020.10.15

1478

2717

망아몰입(忘我沒入)의 심층구조

여상환

2020.10.14

162

2716

노랫말의 힘, 노랫말의 맛

이성순

2020.10.13

404

2715

이 생각 저 생각(25) 무애 양주동 1

최 명

2020.10.12

1470

2714

하느님이 하시는 일은 무엇인가?(410)

정우철

2020.10.11

330

2713

459. 행복지수 1위의 부탄, 고도 4,800m의 학교에서도 행복할까?

인승일

2020.10.10

337

2712

종교적 산책 24 (칸트를 생각한다)

김동길

2020.10.09

1122

[이전] 1[2][3][4][5]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