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생각 저 생각 (23) 글쓰기

 

    “쉽다는 말은 있으나, 세상에 쉬운 것은 없다. 흔히 쉬운 것을 말할 때, “누워서 떡먹기혹은 땅 짚고 헤엄치기를 예로 든다. 말이 그렇지 누워서 떡 먹는 것을 생각해 보라. 아무 일도 안하고 누워서 빈둥대도 누가 떡을 갖다 준다면 좋을지 모른다. 그러나 누워서 떡을 먹으려면 씹기도 불편하고 제대로 삼키기도 어렵다. 땅 짚고 헤엄치는 것도 마찬가지다. 물속에서 엎드려 땅을 짚으면 숨도 못 쉰다. 잠시 긴다고 해도 팔만 아플 것이다. 식은 죽 먹기란 말도 있다. 펄펄 끓는 죽을 먹기보다는 식은 죽 먹기가 쉬울지 모르나, 죽도 죽 나름이다. 맛없는 죽을 먹으라든지 혹은 배가 잔뜩 부른데 자꾸 먹으라고 하면 쉽지 않을 것이다.

    글쓰기도 마찬가지가 아닌가 한다. 글쓰기로 밥벌이를 하는 사람도 많으나, 취미 삼아 글 쓰는 사람도 있다. 글쓰기가 본업인 사람은 말할 것도 없겠으나, 취미로 글을 쓰는 사람도 글쓰기는 쉬운 작업이 아니다

    이런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글을 쓰면 몇 번이나 고치느냐?”고 어떤 방문객이 소동파(蘇東坡)에게 물었다고 한다. 그랬더니 나는 한 번 쓴 글을 고친 적이 없다는 대답이었다. 그러다가 무슨 일로 동파가 잠시 자리를 비웠다. 그때 방문객이 동파가 앉았던 방석 밑을 보게 되었는데, 쓰다가 고치고 다시 쓰다가 버린 종이가 수북하더란 것이다. 동파 같은 천하의 문장도 글을 고치고 고쳤던 모양이다. 그러니 재주가 없는 사람이 글을 쓰자면, 그 고역은 말할 것도 없다. 나도 그 고역의 주인공 가운데 하나다.

    그렇지 않은 예도 있다. 소설가 박계주(朴啓周)씨는 젊어서 어느 잡지사의 기자였다. 춘원 이광수에게 부탁한 원고를 받으러 약속한 날에 갔더란다. 못썼다면서 다음 날인가 다시오라하여 갔더니, 그때도 못썼다고 미안해하면서, 잠시 기다리라하고는 책상으로 가서 원고를 쓰기 시작했다. 그랬더니 반시간이 채 못 되어 거의 3십 매가 되는 원고를 들고 나오더란 것이다. 그 분량의 원고를, 그것도 철학적 내용의 글을, 순식간에 쓰는 재주에 놀랐다는 박 씨의 회고를 읽은 기억이 있다. 이몽룡이 과거를 볼 적에 일필휘지(一筆揮之) 선장(先場)”한 것처럼 썼던 모양이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글을 쓰고서 고친다. 그래 퇴고(推敲)란 말이 생겼다. 그 말이 생기기 전에도 사람들은 글을 고쳤을 것이다. 널리 알려진 고사이나, 퇴고란 말이 생긴 내력을 다시 적는다.

    가도(賈嶋)는 당의 시인이다. 젊어서 불우했다. 과거에도 여러 차례 실패했다. 돈이 떨어져 그만 중이 됐다. 절밥을 먹으면서 마음을 달랬다. 시작(詩作)에 전념했다. 한번은 나귀인지 말인지를 타고 시내를 지나다가 시상이 떠올랐다.

 

    鳥宿池邊宿(조숙지변숙) 새는 연못가 나무에 깃들어 자고

    僧推月下門(승퇴월하문) 중은 달빛 아래서 사립문을 미네

    

    그러다가 僧推를 두드릴 ()로 바꿔 僧鼓라고 하면 좋을 것 같은 생각이 나서, 무의식중에 손을 들어 밀고 두드리는 시늉을 하다가 마침 경조윤(京兆尹: 長安市長) 한퇴지(韓退之)의 수레와 마주치게 되었다고 한다. 한퇴지는 자초지종을 듣고, “가 더 났다고 하였다고 한다. 퇴고란 말은 그래서 생겼다.

    가도는 그 후 진사에 급제하고, 작은 벼슬도 했다. 한퇴지는 가도의 시를 높이 평가하여 이런 시를 써주었다.

 

    孟郊死葬北邙山(맹교사장북망산) 맹교가 죽어 북망산에 묻히니

    從此風雲得暫間(종차풍운득잠간) 이로써 풍운이 잠시 쉴 틈을 얻었네

    天恐文章渾斷絶(천공문장혼단절) 하늘은 문장이 아주 끊어질까 두려워

    更生賈嶋在人間(갱생가도재인간) 가도를 다시 내어 인간 세상에 보냈네

    

    맹교는 어머니를 생각하고 지은 시, 遊子吟(유자음)으로 유명한 중당(中唐)의 시인이다. 가도가 그 뒤를 바로 이었다는 이야기다. 가도에겐 또 이런 이야기가 전한다. 그는 두 구의 시를 3년 만에 짓고 너무 감격하여 울었다.

 

    二句三年得(이구삼년득) 두 구절 짓는데 3년이 걸렸소

    一吟雙淚流(일음쌍누류) 한번 읊으니 두 눈에서 눈물이 쏟아졌다오

    

    춘원처럼 쉽게 글을 쓰는 사람도 있겠으나, 옛 사람들은 이렇게 글짓기에 고심하였다. 그러니 세상에 쉬운 것은 없다.

 

최명(서울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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