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난길 중도작파(박경리 22)

 

피난길 중도작파(박경리 22)

   연안에서 천신만고 끝에 흑석동 집으로 살아 돌아온 지영 이름의 ()금이는 피난갈 일로 마음이 바빴다. 이튿날 6282시 반 그 새벽, 가까이에서 천지가 진동하는 폭발음이 들렸다. 흑석동 코앞인 한강인도교를 인민군의 남하를 저지한다고 불시에 국군이 폭파시켰음은 나중에 알았다.

   가모(家母)의 귀환을 기다린 뒤끝이라 일가의 피난길은 한 박자 뒤쳐졌다. 피난 보따리를 싸는 동안, ‘윤씨 부인이름의 친정어머니 김용수는 가겟집에 외상값을 갚고 식료품을 한아름 안고왔다. 딸 영주는 남편의 륙색 위에 올렸고 아들 철수는 금이가 업었고 친정어머니는 보따리를 머리에 이었다.

   한강을 등지고 길을 잡았다. 산을 넘고 또 산을 넘었다. 관악산 산허리였던가. 농가 마당에서 밤을 지새울 수밖에 없었다. 한강과 가까워 포탄이 날아올지 모른다며 흙구덩이를 파고 대피호를 만들었다. 애들을 눕히기 위해서였다.

    29일 아침이 밝았다. 개울가에서 밥을 지어 먹곤 다시 길을 나섰다. 산중턱까지 올랐을 즈음 관악산이 전투지구가 된다는 말을 들었다고 되돌아오는 피난민일행과 마주쳤다. 금이 일행도 하릴없이 내려가다 농가의 헛간 한구석에 끼어들었다.

    30일 아침이었다. “아무래도 산속이 나을 거요. 벌판에서야 어디 피할 수 있어야죠피난민들이 무리 지어 다시 관악산으로 향했다. 관악산 절까지 올라간 피난민은 모두 짐을 내려놓고 나무 그늘 밑에서 땀을 닦았다.

    여기서 절이라면 역사적 일화도 함께 전해오는 연주암(戀主庵)이 분명했다. 왕세자 후보 자리에서 밀려난 조선 초기 효령대군이 그 섭섭한(?) 심정을 달랜다고 북을 쳤더니만 북판 가죽이 늘어났다는 일화가 전해오는 그 암자였다. 한때 경기도 과천 신도시에 살았을 적에도 그리고 관악산 캠퍼스의 서울대 재직 중에도 뒷산이던 관악산을 올랐던 등산길은 한두 번 절을 찾았던 내 기억에 꽤 뻐근한 산행이었는데, 해발 629미터 거기를 어린 아이 둘을 데리고 올랐다니 역시 그렇게 죽기 살기의 다급한 피난길 걸음이었다.

 

군복 벗고 가슈

    “산사에는 빨리 황혼이 온다.” 630, 벌써 해거름이었다. 모두 마당(연주암) 구석에서 저녁밥을 짓고 있을 때였다. 동구 밖에서 국군패잔병 한 사람이 다리를 쩔룩거리며 걸어왔다.

     “어떻게 되었소, 인민군이 들어왔소?”

     “지금 어디서 싸우고 있소?”

     “국군들은 후퇴하는 거요?”

     “나도 모르겠소.” 그리고 지나치려 하자 한 노인이 앞으로 나온다.

     “여보 군인! 거, 군복 벗고 가슈.”

 

뻐꾸기가 구성지게도 운다.”

   이 뻐꾸기 울음으로 말하자면 정기적으로 특히 북한산 등 서울 근교 주말 산행에 나섰던 이들에겐 아주 친숙한 소리다. 해마다 5월 초순이면 중국에서 날아오는 여름 철새 검은등뻐꾸기. 산행에서 그 울음이 들리면 신록의 5월이 왔음을, 소리가 그치면 한여름 절후는 끝났음을 안다. “땃 따 땃 따반복되는, 울대가 긴 날짐승의 소리답게 서양악기 클라리넷소리처럼 아주 멀리까지 아주 청명하게 그러나 요상스럽게들린다. 해서 등산객들이 붙인 별칭이 홀딱 벗고. 또 누구에게는 좋을 씨고로 들린다던데, 625전쟁이 끝나고는 기집 죽고” “자식 죽고로도 들렸단다(직접 들어보지 못했으면 유튜브에서 대충 느낌을 얻을 수 있다. 서양고전음악 생상스의 <동물의 사육제>가 들려주는 두 음절 그 뻐꾸기 소리와는 달리 네 음절이 특징이다).

    얼마 후 인민군이 삼남지방을 향해 이미 지나갔다는 소문이 퍼졌다. “제기럴! 안심하라고 큰소리치더니 꼴좋다!”

       지금까지 국군을, 그리고 대한민국을 공공연히 욕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와 마찬가지로 인민군을 욕하는 사람도 없었다. 마음속으로 이들 피난민은 관전(觀戰)하고 있었던 것이다. 관전 중 그들이 한마디의 의견도 없었다는 것은 그들이 현명했기 때문이다. 피난민 중에 이북군 유격대기 있을 수 있고 대한민국의 정보원이 있을 수도 있다. 이제 대세가 뚜렷이 나타남으로써 대한민국을 비난하지만 실상 그 사람의 속마음은 알 수 없고, 맞장구를 치면서도 서로 의심과 경계로써 살펴보며 말 한 마디에 저울질을 한다(밑줄은 필자).

 큰 불안을 안고 집으로 돌아왔다. 벽을 뚫고 들어간 탄환이 문갑 위의 꽃병을 하나 부수었을 뿐 모든 것은 다 그대로 있었지만 무사하라고 뜰로 내놓은 책들은 온통 망가졌다. 책 더미 옆에 박격포가 떨어져 큰 웅덩이가 패어 있고 파편에 책은 하나도 성한 게 없었다.

 

세상이 뒤집혔다

    한순간에 새빨게졌다. 민청원, 여맹원들이 들뜬 얼굴로 뜨락을 왔다 갔다 하며 마을 사람들을 빨리 회장으로 들어가라고 서둔다.

    

    “별일 없었어요?”

    “, 댁은 파란을 어디로 하셨어요? 아 관악산, 우리는 평택까지 갔다  왔어요 .” 

     건너편 양옥집 노부인이 지영의 손을 살그머니 잡는다.

    “할머니가 걱정하시더니 아무 일 없이 돌아와서 얼마나 좋우?”

    “반장네 그놈부터 때려죽여야 해. 동민들한테 줄 쌀 배금을 말짱 야미

      해처먹고 혼자 배를 채웠거든.” 

 

     반장 마누라, 그의 딸들은 얼굴이 노오래져서 앉아 있었다. 반장댁에 곁방살이를 하는 아이 밴 순경 색시도 풀이 다 죽어서 앉아 있었다.

    열띤 연설이 시작된다. 장내는 잠잠해진다. 교회의 풍금은 인민공화국의 김일성 장군의 노래, 항쟁가를 연주하고, 어른보다 총기 빠른 아이들이 목에 핏줄을 세우며 노래한다.

    교회에서 나온 마을 사람들은 말조심을 하며 집으로 돌아간다. 머리를 빗고 지영은 옷을 갈아입는다. 자리에 누워 있는 친정어머니가

 

어딜 갈라카노?”

남대문 시장에 한번 가볼래요. 여름옷도 다 버리고 와서....”

다리도 끊어졌는데 어찌 갈라고?”

나룻배 타고 가죠.”

뭐 할라고 연안엔가 뭔가 하는 곳에 가서 사람 애태우고 옷까지 버리고 왔노.“

 

노인장(나룻배 사공), 톡톡히 수지를 맞추시는군요.”

거 누구 덕인 줄 아시오?”

다 이승만 덕인 줄 아시오. 다리를 끊어놓고 달아난 덕일 줄 아시오.”

인민군은 지금 어디까지 내려갔죠?”

막 밀고 내리가디요. 부산까디 며칠 안 남았시오.”

 아이구 에미가 이리 아프다 해도 말 한 마디 없고, 어짜믄 그렇게   인정머리도 없을꼬.” “또 부역 나가나?”

안 아프믄 내가 나갈 건데. 사람 모인 데는 위험하다. 비행기도 온다   안카나. 밤인데 누가 아나 살짝 빠져 나오너라.”

 

    인민위원회 앞에 모인 한 덩어리의 사람들은 둑을 향해 떠난다. 이 마을 저 마을에서 삽과 가마니를 든 무리들이 밀려나와 둑을 넘어간다. 열기로 목이 쉬어버린 인민군이 소리소리 지르며 일터로 사람을 몰아낸다. 저공비행을 하며 비행기는 기총소사를 퍼붓는다. 많은 사람들이 죽었다.

    “조명탄은 꺼지고 비행기는 돌아갔다.” 거기로 부역 갔던 박금이, 놀란 가슴으로 허급지급 집으로 돌아왔다.

 

김형국, 서울대 명예교수(무단전재불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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