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생각 저 생각 (16) 설거지론(論) 3

 

     지금 생각하면 예전에는 사는데 불편한 것이 많았다. 자동차가 없었으니, 걸어 다녀야 했다. 그래도 그 불편을 느끼지 않고, 그런가 하고 지냈을 것이다. 설겆이도 마찬가지다. 나는 어려서 마당에 수도는 말할 것 없고, 펌프도 없는 집에서 산 적이 있다. 시골서는 동네우물에서 먹는 물을 길어 와야 했고, 서울서도 물장수 신세를 진 적이 있다. 내가 설거지를 하지는 않았지만, 어른들은 설겆이를 우물가에 가서 했다. 어쩌다 기름기가 있는 그릇을 씻으려면, 아궁이에서 나온 재를 수세미에 묻혀서 닦았다. 수세미도 귀해서 볏짚을 주먹만 하게 뭉쳐서 쓰기도 했다. 요즘은 산간오지나 낙도에서도 그렇지 않을 것이다.

     대체로 생활이 편해졌다. 수도에선 더운 물, 찬 물이 트는 대로 나온다. 주방용세제인지 비누인지도 꾹 누르면 나온다. 다 그렇지는 않겠으나, 많은 집에는 식당과 주방이 붙어있다. 그러니 주부가 반찬 담은 그릇이 그득한 소반을 부엌에서 마루를 거쳐 안방으로 나르는 일도 없다. 예전에는 그렇게 살았다. 생활이 편해졌는데 그걸 느끼고 감사히 여기는 사람들이 있을까?

     몇 가지 생각이다. 첫째, 1960년대 초 미국대학에서의 경험이다. 큰 건물의 화장실에 가면, <Save Water, Gas, Electricity!>라고 쓰인 팻말이 으레 있었다. “, 가스, 전기를 아껴 쓰라!”는 말이다. 당시는 미국이 초일류 강대국이었다. 자원도 어느 나라보다 풍부했다. 그래도 자원을 절약해야한다고 가르쳤다. 우리는 어떤가? 예를 들어, 대중목욕탕엘 가보면 안다. 물을 너무 헤프게 쓴다. 자기 집에서도 그럴까? 물 값이 싸서 일까? 우리나라도 수자원이 풍부한 나라가 아니다. 아직 크게 느끼지 못하나, 언제 부족하게 될지 모른다. 물뿐이 아니다. 모든 자원은 유한(有限)하다. 아껴야 한다. 정부가 나서서 근검절약 캠페인을 벌려야 한다. 그런데 정부는 그런 것에는 관심이 없다. 세금 걷는 데만 혈안이다.

     둘째, 1970년 귀국해서의 일이다. 더러 만나는 고등학교 친구가 있었다. 한 번은 어쩌다 물 이야기가 나왔다. 그러면서 더운 물이 나오는 집에서 살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당시는 서울의 한 일간지의 기자였다. 나중에 국회의원이 되었고, 아파트로 이사를 갔다. 더운 물 걱정은 안 해도 됐을 것이다. 연전에 작고했다. 어딘지 간 곳에도 수도에서 더운 물이 나오는지 궁금하다. 거기도 물을 아껴야 한다는 캠페인이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셋째, 이순신전법과 물 절약과의 관계다. 설거지꺼리를 오는 대로 물리치지 않고 싱크대에 되도록 많이 모았다가 씻으면 물을 좀 절약할 수 있다. 내가 그것을 모른 바 아니다. 그래서 나는 이순신전법을 구사하더라도 되도록 수돗물을 약하고 가늘게 나오게 한다. 어쩌다 물이 세게 나오는 경우도 있다. 깜짝 놀라 꼭지를 잠근다. 그러나 이미 쏟아졌다. 엎질러진 물과 같다. 아깝다.

     엎질러진 물이라고 쓰다가 태공망(太公望)의 일화가 생각나서 적는다. 그의 본래 이름은 강상(姜尙)이다. ()땅을 봉지로 받아서 여상(呂尙)으로 불리기도 한다. 위수(渭水)에서 늘 낚시를 하였다. 어느 날 주()의 문왕(文王)이 지나다가 둘이 만났다. 일찍이 문왕의 조부인 고공단부(古公亶父)가 언젠가 성인(聖人)을 얻어 나라가 번창해진다고 예언하여, 성인을 기다리고 있었던 참이었다. 태공(太公: 조부)이 대망(大望)했던 인물이라 해서 강상에게 태공망이란 호가 붙은 것이다. 태공망은 문왕의 아들 무왕(武王)을 도와 은()의 폭군인 주()을 무찌르고 새 왕조를 여는 큰 공을 세웠다. 그런데 이야기는 그게 아니다.

     여상이 낚시로 세월을 보내는 동안 가난했다. 그래 마누라가 도망을 갔다. 그가 문왕을 만나 재상이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도망갔던 마누라가 그의 수레 앞에 와서 용서를 빌었다. 그러자 태공망은 물을 한 바가지를 떠오라고 했다. 물을 가져오자 쏟으라고 했다. 다시 담으라고 했다. 엎질러진 물이다. 여상은 옛 마누라를 용서하지 않고 그냥 떠났다고 한다. 도망간 것도 잘 한 일은 아니다. 그러나 용서하지 않은 것도 잘 한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오죽했으면 참지 못하고 도망을 갔을까?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라는 말은 그로부터 몇 백 년 후에 생겼지만, 여상은 제가에 실패한 인물이다. 자기 잘못은 생각지 않은 인물이란 것이 나의 생각이다.

     후세에 이르러 태공망은 낚시꾼의 뜻으로도 쓰인다. 여상은 곧은 낚시로 낚시질을 했다고 한다. 고기 잡을 생각은 애당초 없었다. 시간을 낚고 있었다. 이런 사람도 있고, 저런 사람도 있다.

 

최명(서울대 명예교수)

 

[추기: ‘설겆이라 쓰기도 하고, ‘설거지라 한 곳도 있어서, 설명을 드립니다. 나는 여러 가지 국어사전을 옆에 두고 봅니다. 큰 사전도 더러 보지만, 작은 사전이 만만하여, 이희승 감수, 民衆/엣센스 國語辭典을 많이 봅니다. 이것도 두 종류입니다. 1974년 판이 있고, 1994년 수정판(5)가 있습니다. 전자에는 설겆이만 나오고, ‘설거지는 보이지 않습니다. 후자는 반대입니다. ‘설거지는 있으나, ‘설겆이는 없습니다. 또 어쩌다 보는 이희승 편저, 국어대사전(1982, 수정증보판)에도 설겆이만 보입니다. 또 자주 보는 신기철 𐄁 신용철 편저, 새 우리말 큰 사전에서 설거지를 찾으면, ‘설겆이를 보라합니다. 설명도 설겆이에 나옵니다. 그러니 설겆이가 주()입니다.

     그런데 이희승 감수의 작은 사전에는 감수자의 머리말이 있고, “언어는 끊임없이 유동하고 변천한다.”는 말로 시작합니다. 유동하고 변천하는 것에 따라, 초판의 설겆이가 수정판에서는 설거지로 둔갑한 것이 아닌가 합니다. 일석(一石)도 한 돌에 집착하지 않은 것입니다. 나는 언어의 그 유동과 변천 사이에서 갈피를 잡지 못하고, ‘설거지라고 쓰기도 하고 설겆이라고도 하였습니다. 앞으로는 설겆이는 하지 않고, ‘설거지만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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