뜻밖의 등단(박경리 15)

 

        하지만 김동리는 박경리에게 계속 작품을 가져오라 할 정도로 관심을 보였다그리고 시도 좋지만 소설 체질” 같다며 소설을 써보는 것이 어떻겠나권고도 했다이 말을 귀담아 들었던 박경리는 습작을 들고 김동리 등 문인들이 진을 치고 있던 서울 명동의 문예살롱으로 발길을 놓곤 했다살롱은 모윤숙 시인이 소유한 빌딩 지하에 있던 다방이었다시인 모윤숙서정주소설가 김동리황순원평론가 조연현 등 문단 실세들이 일과처럼 모여 들던 곳이었다(박광희, “강북을 걷다,”한국일보, 2016.9.18).

     당시는 여성 작가가 드물었다그만큼 문인 근거지엔 여성들은 별반 눈에 띄지 않았다해서 어쩌다 습작을 들고 거기를 찾는 박경리를 향한 남자들’ 눈길에 당사자는 그리 마음이 편치 않았다. ‘한 미모의 문학 지망생을 그린 스케치가 살롱 안을 돌아다니는 해프닝도 있었다(20대 후반은 누구 말로 한국고전형 미모였다 했고, 40대 중반 모습은 그때를 기억하던 작가 이문구 왈 짐짓 물질에 빗대어서 말한다면 이파리의 선이 분명하고 잎몸에 윤기가 가득하면서 차고 시원한 참대 잎사귀 같았다”). 이에 모욕감을 느낀 나머지 문학을 안 하겠으니 전해준 원고를 모두 찾아 달라고까지 그 사이 길동무가 되어준 최혜순을 윽박지를 지경이었다.

     그 시절문단 이면사라 할 만한 사건은 김동리와 여류 손소희(孫素熙, 1917-86) 사이의 연문이었다소설가 이호철의 증언은 김동리가 다방에 앉아 손소희에게 소설 공부를 시켰다는 것부산 피란 시절유부남 김동리와 사랑에 빠졌을 때만 해도 손소희는 결혼 생각까지는 없었다지만 어느 시인이 두 사람 관계를 스캔들로 적어 신문에 투고하자 문단에 회오리바람이 일었다그래서 이 남자와 평생 함께 사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운명이라고 느꼈다는 것.

     이들은 수복 서울로 올라와 곧바로 동거에 들어갔다. 1953년의 일이었다그로부터 함경도 또순이’ 손소희가 동리를 보필하며 함께 산 세월이 34년에 이르렀다고 중앙일보의 문단 탐문 정규웅 기자가 적었다회고담(“문단 뒤안길 1980년대김동리는 두 여성에게 남성 이전에 스승이었다,” <중앙선데이>, 2011.6.4.)의 기사 제목에 나오는 또 한 여성은 서영은(徐永恩, 1943- )임은 문단과 인연이 전혀 없었던 나 같은 사람도문단 거물의 동향은 사회 기사로 신문에 오르내렸기 때문에진작 들었다.

 

문단 등단 이후

     그 어느 날 김동리의 큰아들이 박경리를 찾아왔다작품이 <현대문학>에 추천되었으니 빨리 와서 원고료를 받아가라는 연락이었다박경리의 습작 가운데 <불안지대>란 제목의 단편 원고를 김동리가 <계산>으로 제목을 바꿔 현대문학에 추천했던 것.

 

나는 다니던 은행을 그만두고 고향에서 아이들과 어머니를 데리고 와서 조그마한 식료품 가게를 차렸다무더운 여름이었다동화책을 사주기 위해 아이들과 함께 서점으로 갔을 때 <현대문학> 8월호가 나와 있었다무심히 목차를 넘겨보기는 했으나 아이들 책만 사가지고 돌아왔다그리고 며칠이 지났다언니 댁 다섯 형제중의 맏이인 재홍이가 찾아왔다전갈인즉 현대문학사에 와서 원고료를 받아가라는 것이었다(박경리, “선생님에 대한 추억,” <신원주통신>, 105)

 

     1955년 사정을 적은 이 회고대로 당신의 첫 작품이 게재된 그 달치 현대문학은 이미 훑어보았다지만동리 아들로부터 귀띔 받기 전엔 그걸 눈치 채지 못했단다그러니까 제목 개명은 물론 작가 이름도 당신의 호적부 본명 금이(今伊)’ 대신에당사자에게 알리지 않은 채동리가 경리(景利)’라고 필명을 새로 지어 붙였기 때문이었다김시종(金始鍾본명 대신에 동리’ 필명으로 정체성이 자타로 알려진 이다운 개입이었다.

     남들도 그런지 몰라도 나는 이름을 마주칠 때마다 동리는 도연명의 동쪽 울타리 아래에서 국화를 따서의 彩菊東籬下(채국동리하시구에서 동쪽 울타리” 곧 동리(東籬)’가 연상되곤 했다하지만 경리는 무얼 유념해서 지은 별호(別號)였는지는 어디서도 읽지도 듣지도 못했다그럼에도 당신 글을 실은 수많은 작품집 가운데 어느 책인가에서 작가를 경리 박금이라 적었음이 퍽 기발했고 참신했다. “추사 김정희라고 입에 붙은 표기방법처럼 무척 친근하게 사람 정체성이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그때의 정식 등단 절차는 추천을 두 번 받아야했다박경리는 첫 추천을 받고 1년 뒤 1956년에 단편 <흑흑백백으로 두 번 째 추천을 받고 정식으로 등단했다박경리는 이후 자신을 등단시켜 준 이들에 대한 고마움을 여러 번 밝혔다창간당시 <현대문학주간이던 평론가 조연현(趙演鉉, 1920-81)에 대한 고마움을 말할 때는 그 유족의 동향도 마음에 담아 나에게 말해주기도 했다.

     짐작하듯은혜를 입었다고 치사할 이는 어느 누구보다도 동리 선생이었다섣불리 이른바 주례사를 적는 체질이 아니던 경리는 오래 병석에 누었다가 세상을 떠난 동리에 대해선 간절한 마음을 담은 영결사를 썼다(박경리, “우리 문학의 크나큰 산봉우리로-- 고 김동리 선생님 영전에--,” <생명의 아픔>, 이룸, 2004).

 

선생님무심하고 비정한배은망덕의 이 제자를 용서하지 마시고 회초리로 때려주십시오. 2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옥고를 치르는 사위 때문에, <토지집필을 핑계 삼아 세배 한번 변변히 못 한 저를뿐이겠습니까. <토지완간의 요란스런 잔치매스컴은 연일 보도하고파리를 다녀오기도 했습니다이게 과연 제자의 도리였겠습니까부모가 저를 태어나게 했다면선생님은 작가로 저를 태어나게 하신 어버이십니다 

 

     거물 작가와 문학지망생 연결을 위해 발걸음 했던 최혜순은 그때 어떤 형편이었던가. 1990년대 중반에 이빨치료 등으로 박경리가 상경했을 때 나도 옛 친구의 만남 자리에 두어 번 합석했고거기서 당신의 회고담(최혜순, <박경리와 나의 우정>잎새, 1994 비매)도 선물 받았다이 글에 앞서 적었듯 최혜순은 통영에서 잘 살아왔다 했는데 어찌해서 서울 돈암동으로 올라왔던가이 대목은 아무래도 박경리의 말을 듣는 것이 순서다

 

당시 친구는 큰 어장을 경영하는 부잣집 외며느리였으나 여자와 함께 뜬구름같이 떠도는 바람난 남편을 찾아서 환도 후 상경하여 언니 댁 문간방에 세들어 있었고나 또한 언니댁 근처에서 셋방살이를 하며 상업은행 본점에 다니고 있었다피란 간 고향에서 다시 만나게 된 친구는 글줄이나 쓰고 있는 내 비밀을 아는 유일한 존재로 상당한 수준의 독서가이기도 했다그는 선생님 댁에 세든 것이 마치 나를 위한 천재일우의 기회인 양 흥분하고 기뻐했다(박경리,신원주통신, 2007, 102). 

 

     문학적 자질의 친구를 문학의 길로 재촉하려고 깃발을 높이 치켜든 여성이고 보니 문단 쪽 소식에 촉각을 세웠을 것이고그 틈 사이에서 동리의 '작은집' 살림인 손소희 이야기도 필시 적지 않았을 것이었다문학지망의 고향 후배가 문단에 발을 딛는 모습은 크게 반길 일이었겠지만 그 사이로 묻어오던 동리의 새 여성 관련은 본댁 돈암동 언니가 촉각을 세웠을 것임은 묻지 않아도 알만” 했다동리는 결국 정식으로 이혼하고 정처가 양육해온 다섯 아들마저 모두 새 가정으로 데려갔으니 헤어진 그 심사가 오죽했겠는가.

     박경리가 그 아픔을 아주 간결하게 적었다. “그후 돈암동 언니와 손선생님 사이에서 나는 적잖이 고초를 겪었다.” 

 

김형국서울대 명예교수(무단전재불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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