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농사와 밭농사 합일의 문화 현상(박경리 13)

 

     하루는 원주로 안부 전화했더니 마침 내게 부탁 말이 있다 했다. 당신 단편들에 대한 소감을 하나 적어 달라는 것. 대형 출판사마다 당대 작가들의 단편선을 관행처럼 펴낸다던데 아동문학 전문 계몽사도 그런 기획을 추진 중이라 했다. 그 기획을 위해 당신이 고른 단편 그리고 예와 같이 실리는 문학평론가의 작품론에 더해 이름 하여 작가 스케치가 보태진다 했다.

     이 말에 나는 금방 그 사람에 그 작품이란 등식으로 예술을 낳는 예술가의 인간적 풍모를 그려달라는 말로 알아들었다. 한마디로 내가 본 작가의 모습을 소묘해달라는 당부였다. 거기에 실릴 당신 작품은 3(밀고자외곽지대)이라 했다. 불문곡직하고 적겠다고 대답했다. 대가가 후학 애독자에게 보내는 인정이 이만할 수가 없다 싶었기 때문이었다.

     책이 나오고 보니 작품 해설은 김병익(金炳翼, 1938- ) 평론가가 생활과 생명의 엇갈림을 적었고, 작가 스케치는 내가 제목 붙인 소설 농사와 밭농사가 합일하는 문화 현상이었다(<우리 시대의 한국 문학: 6>, 계몽사, 1986, 70-73). 책에 함께 실린 소설가는 박경리를 포함 모두 여섯 분. 작가 스케치를 적은 이는 나만 애독자이고, 나머지 모두가 문학평론가였다. 이참에 그때 적었던 작가 스케치 골자를 여기에 옮겨본다.

 

     원주는 빗겨 선 도시이다. 서울과 한반도의 남쪽 땅을 잇는 국토의 축()에서 빗겨 서있다. 원주의 단구동 또한 도심에서 빗겨 선 동네이다. 여기에 터를 잡은 박경리 선생은 빗겨 선일상을 살아간다. 오래 자리 잡고 살았던 서울로부터 빗겨 서 있음이고, 사람과 사람의 어울림이 무성한 문단으로부터 빗겨 서 있음이다.

     빗겨 섬은 그저 빗겨 서 있음만을 뜻하지 않는다. 빗겨 선만큼 옹골차고 값진 것으로의 집중, 바로 섬이 따른다. 생활의 번잡을 최대한 줄인 채 일에 열중할 수 있는 환경이 밀도 있게 짜여저 있음이 통영이 고향인 선생의 원주 생활인 것이다.

     치악산이 멀리 바라다 보이는 널따란 정원은 절반이 선생의 노동을 기다리는 텃밭이다. 거기에는 파, 부추, 고추, 배추, 고들빼기가 철 따라 자란다. 채소밭 사이에 대추나무, 자두나무가 그늘을 만들고 있다. 그 채소가 선생의 식탁을 채워 주는 미각이다. 아니 미각의 원천이기보다 오히려 채소(그리고 정원)를 가꾸는 밭일은 창작(소설)의 고통을 이기는 청심제가 되어 있었다.

     밭농사는 손이 맡는다. 그만큼 머리와 가슴으로 해내는 소설 농사로부터의 해방, 또는 빗겨 섬이 된다. 빗겨 섬은 다시 창작에로 바로 설 수 있는 도정인 것이다. 원주 생활을 적은 그의 수상집 <원주통신>에서 이렇게 털어놓는다.

 

내 경우 일을 한다는 것은, 글을 쓰는 것도 포함하여 움직임과 생각의 평행이다. 손은 손대로 움직이고 생각은 생각대로 움직인다. 그리하여 만들고 길러 주고, 반복되는 행위에서 희열을 느끼는 순간 비로소 나는 자유로움을 깨닫고 해방이 되는 것이다.

 

     밭농사와 소설 농사가 이렇게 합일하는 선생의 원주 생활은 자연과의 밀착, 바로 그것이다. 집에서 키우는 닭, 금붕어가 어엿한 식구가 되어 있음이 그랬다.

 

닭장을 나온 닭은 내가 걸으면 그렇게 따라오고, 내가 서 있으면 함께 선다. 금붕어는 낯을 심하게 가린다. 잠자는 것이 아니라 외간 사람이 오니 수줍어서 숨어 있다.

 

     자연과의 밀착은 자연이 스승이 되어 있음이었다. 이런 존재방식은 사회를 살펴보는 선생의 의식에서도 뚜렷하게 나타났다. 그 사회의식이란 특히, 사회의 공정치 못한 분배에 대한 것이었다. 불공정한 분배 체제가 생겨나는 것은 가진 자가 더욱 더 가지려고 하는 탐욕 때문임을 설명하는 대목은 먼저 속담의 지혜를 인용했다. ‘아흔 아홉 개 가진 놈이 하나 가진 놈의 것을 마저 빼앗아, 백 개를 채운다.’ 선생은 이 속담이 틀림없는 지혜임을 자연에서 얻은 관찰로 확인했다.

 

가뭄이 들자 정원의 잔디가 마르기 시작했다. 다들 누렇게 되었지만 움푹 팬 땅에서는 아직 잔디가 푸르렀다. 그런데 그 푸른 잔디 주변의 잔디는 이상하게도 더욱 더 누랬다. 알고 보니 그 푸른 잔디가 왕성한 생존을 누리는 사이에 바로 이웃의 수분을 지나치게 빨아 당기기 때문이었다.

 

     사회 문제를 확인하는 작가와 나눈 대화는 그것이 누구의 책임이냐로 발전되어 나갔다. 지식인에게 큰 책임이 있다는 지적에 동감과 아울러 이른바 지식인인 나의 마음에 진한 메아리를 남기고 있었다

 

절대 빈곤은 벗어난 마당이니만큼 이제 웬만큼 생존하는 데는 문제가 없다. 그런데도 지식인이 할 말을 다하지 못하는 것은 조금 더 얻으려는 욕심 때문. 생존이 해결되었으면 인간의 존엄성을 따져 보아야 함이 마땅하지 않겠는가.

 

     평론가들이 작가론과 작품론을 따지는 것이 당연한 직업이듯이, 문학을 소비하는 나 같은 사람에게도 사람과 일을 함께 살펴보고 느껴 보는 것은 배움의 과정이다. 그런 과정에서 반드시 일치하는 것만이 아닌 사람의 비중과 일의 비중이 똑같은 무게로 다가오고 있음을, 그리고 작품으로 본 원경(遠景)과 사람에게서 느끼는 근경(近景)이 더러 맥이 닿지 않은 채 어긋나는 경우가 많다는 지적에서 벗어나는 사례를 박경리에게서 볼 수 있었다.

 


 

     원주에 빗겨 선 채 살아가는 선생의 생활은 그러나 그만큼 세속과 상식에 따라 살아가는 사람의 기쁨을 멀리한 것이었다. 빗겨 서고, 멀리 있음은 작품으로 우리에게 바로 그리고 제대로 다가오기 위함이겠지만 그런 과정의 아픔이야 선생이 스스로 짊어진 숙명이 아니겠는가. 그 여름날, 내가 지녔던 합죽선 부채의 흰 공간에 스스로를 관조하는 자작시를 그 자리에서 지어 이렇게 적어 주었다.

 

     빈 들판에 비둘기 한 마리 가을비에 젖는다 1983723

 

김형국, 서울대 명예교수(무단전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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