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주 이주는 두 마리 토끼잡기(박경리 10)

 

     원주에서 작가와 나눈 식탁 위 화제는 밥상에 올랐던 푸성귀 이야기도 빠지지 않았다. 대청 너머 정원은 절반이상이 철저히 혼자이기를 고수하는작가의 땀을 기다리는 텃밭이었다. 거기서 파, 부추, 고추, 배추, 고들빼기가 철 따라 자란다. “고들빼기, 경상도 말로 씬냉이 한 뿌리면 한 끼 반찬으로 족하다. 그 뿌리에 담긴 지력이 얼마인데....” 

      이 채소들이 작가의 근기와 미각의 원천이자, 이 보다 더 훨씬 이상(以上)이기도 했다. 채소를 가꾸는 밭일, 이 손놀림이 반복적이라 창작의 머리를 짜야하는 글쓰기의 고통을 다스리는 데는 더없이 좋은 청심제라는 것.

      말을 듣고 보니 원주 이주정착이야 말로 당신이 꿈꾸어 왔던 생활환경, 집필환경을 드디어 제대로 갖춘 셈이었다. 그렇긴 해도 결과론적으로 그렇게 되었을 뿐이었다.

 

딸 울타리가 되려고

      19808, 서울 정릉 집을 떠나 강원도 원주로 이사한 것은, 작가가 주위사람들에게 말을 흘렸듯, 남편이 옥에 갇히고 혼자 마음 고생하는 딸에게 의지가 될까 싶어서라 했다. 김지하(金芝河, 1941- ) 시인의 원주 인연은 19543월 부모의 솔가를 따라서였다. 사업에 실패한 당신 아버지가 거기 영화상영 기술자 영사주임으로 취직했기 때문이었다. 목포중학에서 그렇게 원주중학 2학년에 편입했던 시인은 1956년에 서울 중동고 그리고 1959년에 서울대 미술대학 미학과(나중에 문리과대학 소속으로 바뀌었다)에 입학하는 사이로 또한 이후로 생활근거지는 줄곧 원주였다.

      197347, 김지하는 박경리의 딸 김영주와 결혼했다. 그즈음 가톨릭 원주교구 산하 재해대책위원회와 기획실이 일자리였다. 아내는 이내 첫 아기를 가졌다. “행복했고 더 바랄 것이 없었다.”

      유신체제는 197443일 불연, 학생들의 반독재투쟁에 족쇄를 채우려고 긴급조치 4호를 선포했다. 전국민주청년학생총연맹(이하, ‘민청학련’)에 대한 제재가 목적이었다. 소나기를 피하려고 시인이 몸을 숨긴 사이로 419, 아내가 아들을 순산했다. 며칠 뒤 425일에 영화 촬영 팀과 함께 머물던 전남 대흑산도에서 붙잡혔다.

      이른바 민청학련사건 보통군사법원의 선고는 사형이었다. 곧 무기로 감형됐고, 10개월 만인 1975215일에 형 집행 정지로 풀려났다. 석방 27일 만인 313, 인혁당 사건에 대한 발언 등을 문제 삼아 중앙정보부로 다시 연행됐다. 장모의 정릉집을 나서서 원주로 향하던 길이었다. 그길로 19761231, 반공법 위반이라고 징역 7년을 선고받곤 19801212일 석방 때까지 30대를 온통 감옥에서 보내야했다.

      아버지 옥중 신세로 말미암아 불가피 유복자에 다름 아니던 아들과 함께 김영주의 친정살이는 길었다. 정릉집이 시인 옥바라지의 거점이었던 셈인데, 세월이 흘러 어느새 초명이 ()’이던 원보가 초등학교에 들 나이가 가까워지고 있었다. 시인의 만기 출소를 앞두고 김영주 모자는 시집이 있는 남편의 옛 근거지 원주로 옮겨갔다. 그러자 작가도 원주 이사로 결단을 내렸다. 

 

딸아이와 손자가 남편도 없이 애비도 없이 시가에 살고 있었기에 울타리가 되어주자고 서울 살림을 걷고 원주로 내려왔던 것입니다.어떤 분은 내가 글쓰기 위해 원주로 왔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지만 그건 내게 사치스러운 것이었습니다. 나는 문학이 인생만큼 거룩하고 절실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박경리, <신원주통신: 가설을 위한 망상>, 2007). 

 

      이처럼 작가가 원주로 거처를 옮긴 가장 큰 이유는 피붙이와 가까이 있기 위함이었다. 작가는 이사한 집을 당신 직성(直性)대로 바꾸는 일에 바빴지만, 원보와 더불어 지내기도 좀 바빴다.   


박경리를 바쁘게 한 것은 집안일 때문만은 아니었다. 예닐곱 살이 된 외손자 원보는 하루가 멀다 하고 엄마와 함께 외할머니를 찾아왔다. 어느새 할머니는 손자를 기다리며 손자를 즐겁게 해줄 수 있는 게 뭘까 궁리하는 마음이 되었다. 은행나무를 깎아 목각인형 만들기, 색종이 접어 꽃이나 장난감 만들기, 헌 옷가지로 인형 만들기 등 솜씨가 나날이 늘었다. 정성을 다해 만들면 손자가 이제나 오나 저제나 오나 창밖을 내다보며 기다리는 습관이 생겼다(정규웅, “문단 뒤안길, 1980년대”, <선데이 중앙일보>, 20111211) 


      못지않게 중요했던 당신만의 내면적 이유는 글쓰기의 돌파구를 찾기 위함이었다. 앞서 말했듯, 토지 4부의 집필을 앞두고 전에 없던 고심, 고심이었다. 딸의 증언처럼 작가가 십 수 년을 매달려왔던 대하소설 집필방식의 새로운 돌파를 모색한다고 좌고우면을 거듭할 때 자신을 크게 닦달할 계기 마련에 안간힘이었다.

 

글쓰기 돌파의 비방(?)

      집을, 구체적으로 생활의 근거지를 옮기는 것이 돌파구였다. 시중에서 오가는 상식의 언사로 집짓는 해는 죽는 해라 했다. 집짓기가 그만큼 어렵고 어렵다는 말이다. 이사를, 그것도 다른 생활권으로 집을 옮기는 일은 집짓기에 버금가는 일대 역사(役事)이고도 남았다. 4부 착수를 앞두고 심신을 혹사하는 당신 나름의 통과의례방식으로 그 즈음까지 군사도시로 겨우 알려진 고장으로 생활근거지를 옮기는 노릇만 한 것도 없었다. 글이 손에 잡히지 않을 때 멀쩡한 집 벽에 손대던 방식은 비할 바가 아니었다

  

실제로 쓰신 작품이 좋은 평가를 받고 또 돈도 좀 생기고 편하다 싶으면 언제나 안절부절하셨다. 그리고 종내는 별나게도 멀쩡한 집 때려 부수기 공사를 벌이는 것이었다. 그것도 건축 일을 아는 사람을 데리고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집이라곤 지어본 적도 없는 막일하는 사람을 데리고 이 벽 헐고 저 벽 헐고 집이 흔들흔들 몸살 앓기를 그 몇 차례였던지, 그래서 그 옛날에 살던 정릉집은 스무 평짜리 국민주택이었는데 당초 지을 때의 벽이라곤 하나도 남아 있지 않을 정도였다. 집이 통째로 흔들려 버리는 통에 겨울에는 이 구석 저 구석에서 연탄이 새고 늘 머리가 아파 고생하다가 나중에는 어쩔 도리가 없어서 나무를 사다가 땠는데 나무를 뗄 때마다 나는 자욱한 연기 속에서 살았던 대책 없는 어머니였다. 지금도 집에 손을 대려는 기색만 보이면 그것만으로도 머리가 지끈지끈 아프다. 그렇지 않아도 나 원고 끝나면 뭐 할까라고 말씀하셨을 때 원주집 벽 허물어지는 소리가 들리는 듯 했다(김영주, “어머니”, 1995, 180-181; 밑줄은 필자의 것).

 

 

(사진설명: 뚫린 벽채 앞에 선 작가. 나는 딸의 글을 읽고서야 이 장면이 벽채를 곧잘 때려 부수던 작가의 자기 닦달 방식임을 알아차렸다).

 

      화제가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라든지 신변의 일상을 놓고 작가가 열심히 발언할 때는 가늘면서 약간 쉰 목소리의 톤이 올라가는 역설이었다. 해도 창작의 내밀한 경위에 대한 간파는 말보다 역시 나중에 당신 글을 읽어야했다  


웬만한 것이면 목수도 되고 미장이도 되는 내 일상은 말하자면 그것도 일종의 절연 현상이다.”(<원주통신>, 1985, 96-97).

스스로 현실로부터 자신을 추방하여 문학에 전념하는 것을 그는 현실과 대결하는 방법으로 삼았다는 것입니다. (제임스) 조이스는 어떠한 것에도 예속되지 않고 복종하지 않았던 대표적인 작가의 한 사람일 것입니다”(“문학의 자리,” <Q씨에게: 박경리 산문집>, 1981).   


      당신 또한 그렇다는 말이었다.

 

김형국, 서울대 명예교수(무단전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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