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생각 저 생각 - 장비 이야기 2

 

장비 이야기 2

내가 중학 2학년 때인가 한다. 학원(學園)이란 잡지에 연재되던 김용환 화백의 코주부 삼국지를 더러 읽었다. 1954년부터 정음사(正音社)에서 삼국지를 출판하기 시작하였다. 몇 해 걸쳐서 열권이 나왔다. 모두 사서 열심히 읽었다. 대학 다닐 적엔 요시카와 에이지(吉川英治)의 삼국지가 번역되어, 그것을 읽은 기억도 있다. 내가 마흔이 넘어 반포아파트에 살 때다. 집의 아이들이 읽는 고우영 삼국지를 옆에서 같이 보기도 했다. 고우영 화백과는 같은 동에 살아서 여러 가지 인연이 많다. 술도 같이 여러 번 마셨다. 장비처럼 마셨는지 늘 대취했다. 내가 소설이 아닌 삼국지(1993)를 낼 적에 그는 스무 장이나 되는 컷을 그려 주기도 했다.

나는 1977년 여름에 처음 대만에 갈 기회가 있었다. 중국대륙에 처음 간 것은 1990년이다. 그 후 대만도 중국본토도 여러 차례 갔다. 그때마다 시간이 나면 책방에 들려 여러 판본의 삼국지를 구입했다. 내가 삼국지를 좋아한다는 소식이 퍼져서인지, 삼국지와 관련된 각종 책을 보낸 동료와 제자들도 있다. 일어책도 있고, 한어(漢語) 혹은 중국어책도 있었다. 그 덕분에 진수의 삼국지도 읽었고, 사마광(司馬光)자치통감(資治通鑑)의 삼국시대 부분도 읽을 수 있었다. 나는 20062월에 정년을 하면서, 책들 거의 모두를 대학도서관에 기증했다. 삼국지에 관한 책들도 내 손을 떠나기는 마찬가지의 운명이었다. 삼국지는 졸업했다는 심정도 있었다. 그런데 또 삼국지 이야기를 하고 있으니, 사람의 일이란 알 수 없다.

어려서 읽은 톨스토이의 사람은 무엇으로 사나?란 단편이 떠오른다. 거기서 톨스토이는 사람에게 있는 것이 무엇인가? 사람에게 없는 것이 무엇인가?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세 질문을 던졌다. 해답은 각각이다. 사람에게 있는 것은 사랑이고, 사람은 하나님의 보살핌으로 산다고 한 것 같다. 그러면서 사람에게 없는 것은 아는 힘이라고 하였다. 사람에게는 앞일을 아는 힘이 없다. 한치 앞을 모른다.

순자(荀子)를 보면, 더 옛날에 고포자경(姑布子卿)이란 유명한 관상쟁이가 상을 보고 길흉과 수요(壽夭)의 장단을 기막히게 잘 맞췄다는 이야기가 있다. 삼국지에도 관로(管輅)란 점술가가 앞일을 잘 알았다는 일화가 나온다. 그랬을 수도 있다. 그러나 다시 말하거니와 사람에게는 앞일을 아는 힘이 없다. 톨스토이도 노벨문학상을 기대했을지 모른다. 그러나 자신에게 상복(賞福)이 없다는 것은 몰랐다.

1983년에 정음사에서는 중국고전문학선집을 출판했다. 그 첫 세 권이 삼국지다. 그것은 전에 열권으로 출판된 것을 세 권에 몰아 수록한 것이다. 열권으로 된 삼국지의 번역 및 발행인은 최영해(崔暎海)이다. 국어학자 최현배(崔鉉培) 선생의 장남이다. 그 때 정음사 대표다. 중국고전문학선집의 삼국지의 번역 및 발행자는 최동식(崔東植)이다. 번역은 물론 아니다. 선고장의 뒤를 이어 정음사 대표직을 맡고 있었기 때문에 그냥 번역자가 된 것이다. 그는 당시 고려대학교 교수였다. 전공이 화학이나 사회역학(社會力學)이라고 스스로 명명한 좀 기이한 사회이론을 개발하였고, 사회과학도들과 잘 어울렸다. 시작은 불확실하나, 나는 그를 여러 번 만났다. 만나면 늘 의기가 투합했다. 술도 많이 마셨다. 삼국지에 관한 이야기도 들었다.

앞에서 나는 참는 것도 한도가 있다는 장비의 말이 삼국연의에는 없으나, 정음사 삼국지에 나온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렇다면 장비의 그 말은 번역한 사람이 원문에 없는 것을 창작하여 집어넣은 것이란 생각이 든다. 창작치고는 최상급의 창작이다. 그렇다면 그것을 창작한 번역자는 누구인가? (계속)

 

서울대 명예교수 최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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