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주인공들의 평생도, 박경리(4)

 

     시간지리학은 무엇보다 사람 삶이 시간과 공간에 제약받는 존재임을 전제한다. 사람은 무엇보다 수명이 한정된 까닭에 시간제약적 존재이고, 시간은 공간을 차지 하지 않고는 보낼 수 없다는 점에서 또한 공간제약적 존재이다. 그래서 <토지> 주인공들의 ‘시간지리표’ 작성은 무엇보다 소설 주요 등장인물의 생몰(生沒)연도 그리고 그들이 살다간 터전을 알아야 했다. 

 

토지 주인공들의 태어남과 죽음
     내가 <토지> 1-3부를 읽은 것은 1980년 정초 때였다. 1979년 초여름 박사과정을 마치고 귀국했던 그해의 후반은 좀 비실비실했다. 기숙사 유학생활 피로의 뒤끝에서 수술도 받아야 할 탈도 생겼기 때문이었다. 한참 무기력의 시간이 있은 뒤 책을 잡아봐야겠다고 겨우 마음을 움직인 것은 그해 겨울 방학이었다. 아내가 읽다둔 <토지>가 눈에 들어왔다. 그즈음 KBS가 소설을 드라마로 보여주고 있을 때였을 것이다. 
     손에 잡기가 무섭게 빨려 들었다. 그 사이 학위 ‘찡’에 매달린다고 소설 같은 ‘과외물’은 아주 어쩌다 보았던 처지에서 박경리의 대하소설은 대단한 흡입이었다. 재미에 더해 언뜻 전공분야의 교학(敎學)에 일말의 도움이 되겠다는 생각이 언뜻 들었다. 특히 머리에 맴돌던 시간지리학의 설명에 보조 자료가 될 만하다 싶었다. 문맥 속에서 주인공들의 생몰연대를 찾아내기 위해 두 번 더, 달포 만에 모두 세 번이나 읽었다. 주인공들이 언제 나서 어디서 살다가 언제 죽었는가는 이야기의 속말을 대비⦁대조하면 찾을 수 있었다. 일종의 언어퍼즐(puzzle) 풀기식이었다. 
     토지 애독자들은 기억할 것이다. 길이가 만리장강인데도 소설의 시작은 아주 짧은 한마디였다. “1897년의 한가위.” 이 단 한마디로부터 이야기의 대하는 흘러간다. 1897년이 바로 생몰 연도 파악의 기년(紀年)이었다. 이어 추석이 지나 가을걷이하는 사이로 이야기는 흐른다.  

 

볏섬을 져 나르는 구천의 다리 뒤에 숨어서 살금살금 걸어오던 자그마한 계집아이가 얼굴을 내밀었다. 앙증스럽고 건강해 보이는 아이의 나이는 다섯 살. 장차는 어찌 될지, 현재로서는 최치수의 하나뿐인 혈육이었다(1부 1권 서序, 34쪽).

 

     이 혈육이 토지 주인공 중의 주인공이다. 1897년에 다섯 살이면 한민족의 나이 셈법으로 1893년생이다. 태어난 해를 한 살로 치는 옹근 나이 셈법에 따라서다. 그런데 <토지 사전>(솔, 1997)의 “최서희” 설명은 첫 마디가 “1892년생.” 우리식 셈법이 아니다. 우리 윗대 어른들은 만(滿)으로 나이로 따짐을 “왜놈 방식”이라 했다.   
     마찬가지다. 사전에는 윤씨부인을 1842년생이라 적었다. 견주어 내가 알아냈던 바는 1843년생이었다. 토지 1부 이야기의 앞부분에 나오는 문장(“오십오 세의 나이보다 겉늙은 것 같았으나 긴 눈매가 아름다웠다. 여자답기보다 선비 같은 모습이다.”)이 그 근거였다(1부 1권 3장 61쪽). 토지학회가 펴낸 <토지 인물열전>(마로니에북스, 2019)은 내 파악과 같았다. 1843년생이라고. 
     최참판집 침모의 딸 봉순은 서희와 함께 자랐다. “무당놀이뿐만 아니라 광대놀음도 혀를 내두를 만큼 기막히게 잘하는 봉순이는 서희보다 두 살 위인 일곱 살이다.”(1부 1권 3장 65쪽). 나중에 기화라는 이름의 기생으로 살다간 이 여성은 1891년생이었음을 알 수 있었다.
     이만하면 토지 1-3부 주요 주인공들의 시간지리표 작성할 자료는 모아졌다. 그 주요 내역이다.

  

   1893년: 참판집 최치수(1867년생)와 별당 아씨 사이에서 딸 서희, 태어남.
   1897년: 평사리를 무대로 <토지> 제1부 이야기가 시작됨. 치수의 재취 부인인 별당 아씨(?~1906)가 치수의 씨 다른 동생 김환 또는 구천(1879-1928)과 불륜의 사랑을 맺고 달아나 서희는 생모와 생이별함.
   1898년: 용(1866년생)과 사랑을 나누다가 특히 남자 어머니의 결사 반대로 결합되지 못한 채로 무당의 딸 월선(1868년생)은 자신보다 스무 살이나 더 많은 절름발이 보부상에게 시집감. 한참 만에 거기서 도망쳐서 장터에서 주막을 차린 뒤 용과 통정한지 3년, 다시 삼촌이 있는 만주 용정으로 감. 최치수, 불의의 죽음.
   1901년: 착하지만 마음이 약한 용은, 최치수를 죽이는 일에 끼여 관가에서 죽임을 당한 칠성의 아내 임이네(1872년생)를 동정하다 통정함.
   1902년: 호열자가 돌아 최 참판집 종들이 여럿 죽고 참판집 당주 윤씨 할머니(1843년생)마저 역병으로 죽어 서희가 외톨이가 됨. 용의 정처 강청댁 또한 역병으로 죽고, 용과 임이네 사이에서 홍이 태어남.
   1903년: 월선이가 용정에서 돌아와 평사리에서 삼십리 떨어진 장터에서 국밥집을 열면서 다시 용과 연애를 계속. 이 광경이 <토지> 1부 1권 8장에 그려짐.
   1906년: 별당 아씨가 묘향산에서 죽음.
   1907년: 동학당의 남은 세력의 한 사람인 윤보 목수가 용을 포함한 여러 소작인을 부추켜 윤씨가 죽은 뒤에 조준구(1865년쯤 출생)가 주인 행세를 하는 참판 집을 습격함. 그때 임이네와 홍은 월선의 집에 피신함.
   1908년: 서희와 참판 집의 하인 김길상(1885년생)과 소작인인 용과 영팔 그리고 그 딸린 식구들이 부산을 거쳐서 만주 용정으로 감(<토지> 제1부 끝남)
   1911년: 만주 용정 일대를 무대로 해서 제2부가 시작됨.
   1911년: 월선이 삼촌뻘 되는 공노인(1853년생)의 주선으로 국밥집 ‘월선옥’ 열었는데(1908년) 여기서 세 해 동안 용의 식구가 월선에게 더부살이하다가 큰 불이 나자 용 내외는 용정에서 백리 떨어진 통포슬의 벌목장으로 떠나고 용의 아들 홍은 월선이가 양모가 되어 교육시킴. 서희는 그동안 쌀가게를 벌여 재산을 모으는 데에 애쓴 하인 길상과 혼인하여 가게 이름을 길서상회라 불임.
   1912년: 김 길상과 서희 사이에서 첫아들 환국 태어남.
   1916년: 서희는 월선의 삼촌뻘 공 노인을 앞세워 평사리의 옛 땅을 사들이는 데에 성공하고 한편으로 둘째 아들 윤국을 낳음.
   1917년: 월선의 죽음. 서희는 몇몇 식구와 소작인과 더불어 진주로 내려오고,길상은 독립 운동을 하기 위해 만주에 남음(<토지> 제2부 끝남).
   1920년: 진주 일대를 무대로 하여 제3부 시작함.
   1920년: 서희는 최 참판집의 옛집을 조준구로부터 사들이고 병든 용도 함께 그 집을 지키도록 보냄.
   1924년: 서희의 큰아들 환국은 서울 케이 중학에 입학함.
   1926년: 임이네가 진주에서 병으로 운명.
   1928년: 길상은 만주에서 임이의 밀고로 잡혀서 서울 서대문 감옥에 갇혀 재판을 받는데 서희는 달마다 한번 씩 서울로 오가면서 옥바라지함.
   1929년: 용, 오래 병을 앓다가 평사리에서 죽음. 환국이 일본 와세다 대학에 들어감. (<토지> 제3부 끝남)

  

김형국, 서울대 명예교수 (무단전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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