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판 참선비의 자찬비명

 

   북한산 등산길에 심원 송복(心遠 宋復, 1937- )교수 내외와 앞서거니 뒤서거니 했던 적이 여러 차례였다. 하루는 심원이 앞서 한 걸음 놓았기에 뒤따르던 그 아내와 대신 안부 인사를 나누었다. 첫마디가 남편의 필봉(筆鋒) 때문에 못 살겠다!”는 볼멘소리였다. 신문 칼럼에다 대통령은 적어도 대학은 나온 인사라야 한다고 적고나자 김대중노무현 팬들이 심원 집으로 욕지거리를 해대는 통에 전화에 불이 났다는 것.

   그 말에 오히려 대학교직의 내 마음에서 칼럼이 새삼 감동으로 되살아났다. 캠퍼스는 대학생들이, 교수는 물론, 의욕의 새 친구들과 만나 고담준론을 주고받는 시공간인데 그런 훈련, 그런 체험을 누리지 못한 채로 대통령 자리에 오른다면 주변 사람들의 바른 말 듣기에 익숙하지 못한 지도자가 될 개연성이라는 논지 때문이었다.

   심원이야말로 비판의식을 제대로 갖춘 옛 선비의 재래라 싶었다. 대통령은 성군(聖君)에 버금가야 한다고 기대함은 전통시대 발상법의 연장이겠는데, 성스러울 ()’자 자형(字形)()’는 크고 ()’은 작게 조형했음은 성군의 작은 입은 적게 말함이고, 큰 귀는 남의 말을 많이 경청함이란 뜻을 담았다 했다.

대학 감투도 일언지하에

   박영식(朴煐植, 1934-2013)연세대 총장도 심원을 아주 높게 평가한 교육계 인사였다. 전직들 모임에서 여러 차례 마주쳤던 박 총장은 가감 없는 직설 어법이 매력적이던 분이었다. 이를테면 40대 말에 이르러 전공인 철학공부가 싫증났고 그렇다면 총장이나 한번 해보자고 선거판에 뛰어들어 당선되었다 했다. 이어 교육부장관, 다른 사립대 통장을 더 역임한 뒤 은퇴하고 나자 그제야 여기저기 세상 돌아가는 것을 둘러보게 되는데 바야흐로 젊은 여성들의 스커트가 아주 짧아진 이른바 하의실종(下衣失踪)시대가 눈앞에 펼쳐지더란 것. “눈요기로 나쁘지 않다고 말하고 싶어도 체면상 못한다는 농반진반(弄半眞半) 말도 주저하지 않았다.

   박 총장이 심원을 높게 치는 데는 직접구체적 계기가 있었다. 총장 선출 직후 대학보직을 조각을 할 때였단다. 학장처장 등 보직 자리를 노리는 자천타천이 몰려듬에서 선거운동 적극 참여의 저의가 느껴졌던 것. 그럼에도 단지 학덕만을 높이 사서 심원을 부총장 자리에 점찍었더니 나를 죽이려는냐?!”며 단칼에 사양하더란 것. 해도 겸양의 말로 일단 알고 부총장실까지 마련해두었지만 한 달이 넘도록 아예 학교에 나오지 않았단다. 시절은 교수들이 이른바 교내외 감투에 연연하는 이른바 폴리페서시대의 도래임에도, 글 읽기에 전념하려고 산림(山林)에 머물던 옛 선비처럼, 심원은 캠퍼스 학림(學林)에서 오로지 연구와 교육으로만 일관했음에서 연세대 최고의 교수, 아니 이 시대의 최고 교수가 분명하다고 단언했다.

   연세대와 무관했던 내 행동반경에서 강의 등 심원의 교육적 수월성은 만날 길이 없었다. 하지만 소문만으로도 진경이었음은 능히 짐작할 만 했다. 글과 말이 도도해서 그의 교양과목을 듣는 수강생이 많았다던데 강좌 첫 수업은 어김없이 대학인은 최소 3백수 시는 외울정도의 인문성 강조였다. 시경 3백수는 한마디로 사악한 생각이 없다(思無邪)”논어유명 구절을 유념한 권유였을 것이다. ‘시정신(詩精神 poésie)’이란 사특함과 담을 쌓는 언행(言行)의 권면인데, 그만큼 시를 공부하지 않고서는 말할 게 없다(不學詩 無以言)”는 공자 가르침의 현대판 환기였다.

   심원의 교육성은 그 정도 듣고 짐작했을 뿐이지만 연구 성과는 적잖이 직접 만났다. 저술들을 말함인데 이 나라에 자심한 지역감정의 연원에 대한 사회학적 해석도 인상적이었지만(“지역갈등의 구조적 요인,” <한국정치의 민주화>, 1988), 왜란이 임박하자 내지(內地) 벼슬살이 이순신을 대뜸 수사(水使)로 올려 해전에 나아가게 했던 류성룡, 이 둘의 관계를 상설한 역사사회학적 저술 <위대한 만남>은 임란 전황에 대한 심층 공부였다. 감동한 나머지 신문 서평(<동아일보>, 2007. 12.29)을 자청했다.

   이순신이 불멸임은 한민족 구성원치고 모르는 사람이 없지만, 전시재상이 나중에 남긴 <징비록>은 나라 경영의 각종 방책을 말하는 양이 일대 귀감이고 교훈임은 십분 확인된다면서 심원은 서애학회 결성에 앞장섰고, 드디어 작년 말 창립총회를 가졌다. 당신을 배울 참이면 창립회원 참여를 권유하기에 나도 주저하지 않았다.

   필시 이 연장이지 싶었다. 코로나 황파의 와중이라 ‘X 로 앉은 점심자리에서, 당신 아내는 못마땅하게 여겼다지만, 자찬비명(自撰碑銘)을 지었다고 혼자 말처럼 흘렸다. 그 말을 듣자마자 한번 보여 달라고 떼쓰듯 앙청했다.

 

고종명의 높은 경지

   자찬비명이라 함은 옛적 고려조 이래 문자속이 있던 이들이 생전에 당신의 삶을 일별하는 비문을 스스로 적었음을 말함이다(심경호, <내면기행>, 2018). 일대의 마감을 앞두고 스스로 되돌아봄은 오복의 하나인 고종명(考終命)에 들 것인데, 이는 자기 집에서 깨끗이 죽음을 맞음은 일차적 실현이고, 삶의 궤적을 의미로 살펴보는 노릇은 고차원적 실현이 분명했다. 그래서 일대를 평면적으로 서술하는 산문(散文) 끝에 결론 삼아 의미론적으로 압축한 운문(韻文)으로 마무리한 게 비명이었다.

   전래 자찬비명의 좋은 보기는 조선조 큰 선비 이황(李滉, 1501-70)이었다. 424구 비명의 끝 4구는 시름 가운데 즐거움 있고(憂中有樂) 즐거움 속에 시름 있도다(樂中有憂) 승화하여 돌아가리니(乘化歸盡) 다시 무엇을 구하랴(復何求兮)”라 적었다. 이렇게 순명(順命)이 비치는 것은 영조 연간의 문신 박필주(朴弼周, 1680-1748)도 마찬가지였다. “이처럼 살다가 이처럼 죽어 태허로 돌아가니 다시 무슨 누가 있으랴가 비명 의 끝인데, 이 대목은, 어느 극중의 말인지 확인 못했지만, 이렇게 왔다 이렇게 가는 것을의 셰익스피어 어구와 같았다.

   더 간결한 비명도 동서양이 다르지 않았다. 역시 퇴계인데 당신의 묘표, 곧 묻힌 사람의 정체를 적는 자리에선 자신을 일러 아주 간결하게 退陶晩隱”(퇴도만은) 퇴계 그리고 도산이라 자호했던 이가 너무 늦게 (관직에서) 물러났음이라 적었고, 영국시인 키츠(John Keats, 1795-1821)는 조숙한 천재답게 자기 이름을 물 위에 적은 그, 여기 잠들다"고 적었다. 우리 현대의 간결한 비명은 시작(詩作)으로 문학을 시작했고 마지막 작품도 시집으로 남긴 소설가 박경리의 절명시(絶命詩)일 것이다. 시집 제목이 된 대로 버리고 갈 것만 남아 홀가분하다!”

   우리 현대에 들어 과문한 탓인지 자찬비명의 소문은 거의 듣지 못했다. 그런 점에서 한국현대정치사의 풍운아 김종필(1926-2018)의 자찬은 뉴스가 될 만했다.

 

사무사를 인생의 도리로 삼고 한평생 어기지 않았으며 무항산이 무항심을 치국의 근본으로 삼아 국리민복과 국태민안을 구현하기 위하여 헌신진력하였거늘 만년에 이르러 연구십 이지팔십구비(年九十 而知八十九非)라고 탄()하며 수다한 물음에는 소이부답 하던 자- 내조의 덕을 베풀어준 영세반려와 함께 이곳에 누웠노라

 

   대단한 유식자라 소문났던 대로 비명은 한문학 고전의 집대성처럼 읽혔다. 사무사는 공자의 유명 어구, “생활이 안정되지 않으면 바른 마음을 견지하기 어렵다는 말은 맹자의 가르침, 소이부답은 자연에 의탁해서 얻는 한가로움을 읊은 이태백의 시, 그리고 나이 구십에 여든 아홉은 헛됨이었다 함은 공자의 흠모를 받던 그 시대사람 거백옥(蘧伯玉)을 패러디일 것이다.

   유식과 달관으로 말하자면 JP가 어찌 심원을 당할 것인가. 당대의 선비가 당신의 일대를 어떻게 되돌아보는가가 그래서 궁금했다. 최근 일본 언론계 소식도 기억났다. 요미우리신문 주필 와타나베 쓰네오의 회고담을 들려주는 NHK 텔레비전 인터뷰가 인기라던데, 이이가 얼마나 일본 현대정치의 막후 실력자인가를 말해주는 근거로 전 일본총리 나카소네 야스히로에게서 자찬비명을 미리 선물 받을 정도라 했다(<조선일보>, 2020.3.21).

   심원의 경우, 자찬비명의 공개 대상이 절대로 무작위(無作爲)가 아닐 진데 선입선출(先入先出)을 기대할 수밖에 없었다. 당신 서재까지 한걸음에 달려갔다. 서예전을 두 번이나 열었던 서가답게 만년필 글씨가 자못 호방했다

 

/ 여기와// 산과 들과 나무와 꽃과/ 구름과 달과 파도와 바람과/ 어린 아이와 친구와 술을 사랑하고// 글쓰기와/ 아내와 함께 붓으로 마음 닦기와/ 책을 즐겨 읽었어데// 과 속의 경계를 그 높이와 깊이의 끝을/ 끝내 보지 못하고 가노라 심원 송복 2020317일  


   당신의 아호가 준거하는 도연명의 <음주> 5수의 경지였다. “사람 사는 곁에 집을 지어도/ 말이며 수레소리 시끄럽지 않네/ “어찌해야 그럴 수 있소?”/ “마음이 멀어지니 사는 땅은 절로 외지네(心遠地自偏).”/ 동쪽 울타리 아래 국화를 따서/ 멀거니 남산을 바라보네... (후략).

   자연의 품으로 돌아가려는 심원의 마음이 거기에 담겨있었다.

 

김형국 서울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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