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을 느끼는 땅 ‘곶자왈’_박영숙전

 

2달여 만에 전시장을 찾는다니 가슴이 뛴다.

 

전시장 문을 여는 순간 한 벽면을 가득 채운 대형사진이 반긴다. 짙게 우거진 숲속에 금방이라도 날아갈 듯 가볍고 부드러운 하얀 천이 마치 계곡을 흘러내리는 큰 물줄기 같다. 어둠과 밝음, 무거움과 가벼움, 그리고 불안과 희망이 대비된 숲속을 걸어가듯 전시장으로 들어가며 감격의 순간을 맞는다. 그리고 긴 호흡을 한다.

 

비바람이 휘몰아칠 것 같은 컴컴한 숲속에 커다란 나뭇가지에 휘감긴 흰 천들이 엉켜있다. 다른 숲에는 바람 한 점 없는 평온 속에 빳빳한 이불호청 같은 하얀 천이 펼쳐 있다. 또 다른 숲에는 펄럭이는 흰 천 사이로 작가가 입었던 오래된 웨딩드레스가 숨죽인 듯 걸려있다. 깊은 산속에 차려진 작은 소반에 놓여있는 백자대접의 정화수에서 하늘에 닿은 어머니의 치성을 느낀다.

 

사진에는 각종 오브제 웨딩드레스, 어머니 사진, 아버지에게 받은 카메라, 립스틱, 실과 바늘꽂이, 장난감, 유리구슬과 편지 등 작가의 추억이 담긴 물건들이 자리 잡는다. 또한 평소 박영숙이 흠모하는 여성주의 작가 루이즈 부르주아를 비롯한 여성들의 사진이 곶자왈숲 여기저기 흩어져 자연과 작가의 삶의 흔적이 뒤섞여 있다.

 

박영숙 /그림자의 눈물(2020 3.26~ 6. 6)’ 전시를 보기위하여 아라리오 갤러리를 찾는 발걸음이 빨라진다. ‘코로나19’ 바이러스로 사전현장 예약을 통해 11인 혹은 1팀 대상 프라이빗 전시 관람 형태로 진행된다는 정보를 알고 찾는다. 예정보다 10여분 일찍 가니 마스크를 쓴 2명이 관람을 마치고 나간다. 엇갈리게 예약을 받은 것 같다.

 

그림자의 눈물은 여성의 신체가 아닌 곶자왈이라는 제주도의 한 지역을 담고 있다. ’곶자왈은 숲을 뜻하는 제주 사투리 과 가시덤불을 뜻하는 자왈을 합친 나무와 덩굴이 뒤섞여 원시림의 숲을 이룬 제주 고유어다. ‘곶자왈은 과거에는 버려진 땅이었지만, 현재는 자연자원과 생태계의 보전가치가 높은 지역이 되었다. 이 땅에 박영숙은 오래된 기억의 흔적들을 배치하여 생명을 느끼는 새 땅을 불러온다.

 

페미니즘 사진가 박영숙은 대표작 '미친년 프로젝트' 등을 통해 여성을 억압하는 가부장적 사회를 비판하는 작업을 펼쳐왔다. 사진의 중심은 여성이었고, 여성성을 강하게 표출하는 도발적인 인물 사진 등으로 여성 해방을 부르짖었다. 여성신체가 화면을 압도하였던 전의 작품과는 달리 이번에 선보인 신작 '그림자의 눈물' 연작에는 인물이 보이지 않는다.

 

박영숙은 “1500여 년 전, 마녀화형을 하던 그때, 현명하고, 지혜로운 마녀가 화형 당하지 않은 않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녀 몇 명은 카도릭의 권위에서 벗어나려 바다로 향했을 것이다. 바다에서 흘러흘러 떠돌다 머문 제주, 그곳이 버려진 주인 없는 땅임을 알게 되었고, 신성성이 있는 그 땅에 머물며 생명 살리는 삶을 살아낸 그녀들의 흔적을 재현한 작업이다.”라 말한다.

 

제주 자연의 소리가 그대로 살아 숨쉬는 곶자알을 찾아 사유하며, 한층 자유로워진 세상을 펼치는 박영숙의 작품에서 여성성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발견한다. 이제 곶자알에서 새로운 소꼽놀이를 하며 또 다른 시작의 첫 출발을 하는 80대 페미니스 사진작가 박영숙의 도전에 기대와 격려의 박수를 보낸다.

 

사진속의 하얀 물줄기가 코로나19’ 바이러스도 흘러내리게 할 것 같아 전시장을 나오는 발걸음이 가볍다.

 

 

이 성 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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