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을 불어주자 꽃이 된 분청

 

이름을 불어주자 꽃이 된 분청

 

           ‘옹깃셈은 전래 우스개다. 옹기는 팔았는데 손에 쥔 돈은 받아야 할 값의 절반에 불과했다는, 옹기장수는 바보라는 웃음거리였다. 이 줄거리 우화 책도 나왔다니 우리 사회에 오래, 널리 퍼졌던 이야기였음은 분명했다.

        “한국처럼 도자기가 중요한 의미를 갖는 나라는 많지 않다.”함은 세계적 도예평론가의 지적이다. 그럼에도 우리 것의 정체를 스스로 제대로 몰랐다는 점에서 한민족 모두가 오랜 역사동안 옹깃셈의 주인공이 아니었던가, 그런 자괴심도 생긴다.

        도굴한 고려청자를 이등박문이 선물하자 고종임금이 어느 나라 물건이냐 물었다는 딱한 이야기는 작은 일화라 치자. 조선조 전반에 명멸했던 분청사기는 일본사람의 극진한 사랑으로 아예 그들 작명 미시마(三島)’로 통용되었고, 우리가 고작 막사발이라 했던 것은 단숨함과 자연스러움의 정화(精華)라며 일본사람들이 이도(井戶)’라 이름 짓고 국보로 받들어왔다. 막사발 사랑에 빠진 한 시인이 이 지경을 장탄식했다(정동주,<조선 막사발과 이도다완>, 2012).

 

         어쩌다 기구한 운명으로 피붙이를 낳을 수밖에 없었던 절박하고 가련한 엄마, 낳기는 했지만 젖꼭지 한번 물려보지 못한 채 어둠속 뉘집 사립문 앞에 버려야 했던 비운의 어미. (중략) 그 자식이 자라 어른이 된 뒤 찾아 왔을 때 어미는 차마 고개를 들지 못한다. 이름도 모르고 낯도 설다. 다만 자식이 한사코 제 어미라고 부르니까 그저 그런 줄 따름이다. 막사발 또는 이도다완에 대한 한국인의 모습이 바로 자식 버린 그 기구한 어미를 닮았다


드디어 나타난 문화재 의병장들

        그래도 우리 현대문화사에서 고맙게도 이 낭패 국면을 벗게 해준 빼어난 미술사학자가 나타났다. 점토 곧 고령토가 원래 있던 곳에서 물에 쓸려 내린 것이 이차점토인데 이걸 성형하고 백토 유약으로 분장(粉粧)하자 표면이 회청(灰靑)색이 되었다해서 분장회청사기1933년에 이름 지은 이는 우리 박물관학의 비조 고유섭(高裕燮, 1905-44) 개성박물관장이었다. 이를 줄여 분청인데, 종주국에서 제대로 이름 짓자 일본 유수의 미술관도 마침내 이 작명을 따르게 되었다.

        그 고유섭의 아호 하나가 汲月堂(급월당)인 것. “원숭이가 물 마시러 못가에 왔다가 거기에 비친 달이 하도 탐스러워 떠내려고 못물을 길러내기() 시작했지만 아무리 해도 달()은 못에 남았을 뿐이었다는 고사가 이르는 대로 학문은 못에 비친 달과 같음이라 오로지 다함없이 매달릴 뿐이라는 뜻의 금언이라 했다.

        의미 있는 아호의 대물림도 우리 문화전통이었다. 분청 제작의 미래 싹을 확인하고는 그에게 아호이자 가마 이름으로 급월당을 전한 이는 고유섭의 고제(高弟) 최순우(崔淳雨, 1916-84) 전 국립중앙박물관장이었다. 분청 전통이 일본에선 줄곧 성행해 왔음에 반해 이 땅에서 백자에 밀려 임란 전후로 절멸한 것을 안타깝게 여겨 대학 도예 공부 때 분청이란 말도 들어보지 못한 윤광조(尹光照, 1946- )를 그쪽으로 이끌었다.

        그가 동아공예대전에서 대상을 받았을 때 최순우는 심사위원장이었다. 동향인 김광균(金光均, 1914-93)시인을 부추겨 제 1회 개인전을 열어주었고, 백토 유약 위에 꼬챙이 등으로 그림도 그리는 분청의 분장기법을 감안하여 마음의 벗 장욱진(張旭鎭, 1917-90) 큰 화가와 도화전도 열게 주선했다.

        최순우의 분청 사랑은 1962년 우리 문화재 유럽 순회의 파리 전시 중에 찾아온 우리 유학생의 불학무식에 충격 받았음의 반작용이기도 했다. 유명 소설가 출신 프랑스 문화부장관 앙드레 말로도 격찬했던 전시였는데, 5-6명 당시 프랑스 유학생은 몰려와선 이런 옹기 조각들을 무슨 국보라고 갖고 와서 전시를 하느냐?!”며 핀잔하듯 내뱉었다던데 옹기라 지목했던 것이 바로 조선 시대 예술의 최고 작품으로 생각하고 어렵사리 갖고 온바로 그 분청사기였다(이성낙, “멋모르고 만난 그분: 해외 전시에서 만난 최순우 선생”, <그가 있었기에최순우를 그리면서>, 2017).

        최순우의 분청 사랑은 하나둘이 아니었다. 재력을 쌓던 고향 개성출신 기업가에게 분청을 권하고, 시중에 분청이 나오면 일일이 그 가치를 따져주기도 해서 그 호림미술관 수장이 일류로 올라서게 도와주었다(윤장섭, <호림, 문화재의 숲을 거닐다>, 2012). 뉴욕시대 김환기의 점화(点畵)가 꽃 도장을 촘촘히 찍는 식의 분청사기 인화문(印花紋)에서 영감을 받았다는 지적이 사실이라면 여기에도 부산피난시절 이래로 두 사람이 서로 깊은 우정을 나눈 사이였음이 예사롭지 않게 다가온다.

 

세계적 작가가 마스크를 찾아 헤매다니

        부모 다음으로 최순우에게서 평생의 반복(半福)을 입었다는 윤광조의 발신은 이후 일취월장이었다. “외국에서 더 분청을 높이 쳐준다는 최순우의 말이 틀림없었음인지 2003년 미국 유수의 필라델피아미술관에서 동양 도예작가론 처음 초대전이 열렸고, 이어 2005년 시애틀 미술관도 개인전을 열렸다. 후자의 관장(Mimi Gates, 1942- )은 동양도자전문이자 마이크로 소프트 창업주 빌 게이츠의 양모로 대학미술관으로 세계 정상인 예일대 미술관장 출신이라 했다. 해방이후 국내 조형예술가로 이만한 해외 평판을 누리는 이가 윤광조 만한 이는 찾기가 쉽지 않다.

        그런 윤광조가 경주시 안강읍을 마스크를 구하려고 헤맸지만 헛걸음이었다 한다. 도기공방(Studio pottery)을 꾸려가려면 싼 땅을 찾아야 하고, 게다가 연기가 나오는 재래식 가마가 기피시설로 경원되기 일쑤라 도예가 생활은 불가피 사회적 거리두기방식으로 살아올 수밖에 없었다 했다.

        윤광조 가마도 경주시 안강읍의 옥산서원을 지나 한참 계곡을 따라 올라간 곳의 외딴집에 홀로 자리 잡고 있다. 하도 외진 곳이라 우편물도 우체국의 사서함을 직접 이용해야 하는 일상이다. 그 사서함으로 우편물을 찾아 나서자니 마스크가 필수라 해서 읍내 일대를 아무리 돌아다녀도 도무지 구할 수 없었다는 것.

 

     윤광조 "반야심경"         윤광조-장욱진 합작 "인간관계"
 

        결국 마스크와도 부득불 사회적 거리두기를 해야 하는 형편이 부화가 난다는 볼멘소리였다. 역대 대통령들의 기업체 방문은 시대별 첨단산업시설의 출범 현장인줄 알았는데, 하이텍(high-tech) 스마트폰 세계 제 1위 생산국을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나라로 만들겠다 해놓고선 로텍(low-tech)의 초보기술 마스크 공장 현장방문마저 내세워야 하는 처지의 위정자가 세계 정상 도예가의 장탄식을 들으면 무어라 말할까.

 

김형국, 서울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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