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미술수집 집념의 열매

 

   현대한국에서 미술 사랑이 공공부문의 중요 관심으로 등장한 것은 1988년 서울 올림픽 때였다. 유럽 등지의 공간미화정책을 본받아 도시 중요장소에 들어설 건축물은 건축비 5% 정도를 들여 미화하게 했다. 국제 스포츠행사를 찾을 외국인에게 흠 잡히지 않도록 도시경관을 정비함은 물론, 못지않게 내국인의 정서함양이 목적이었다.

    한편 민간부분에서 미술품이 시장거래의 대상이 된 것은 1970년이다. 서울 인사동에 상업화랑의 효시 현대화랑(오늘의 갤러리 현대)이 문을 연 시점이었다. 이 전후로 극소수이나 미술수장에 뜻을 둔 행보가 화랑가 주변에서 엿보이기 시작했다. 그래저래 세월이 흘렀다. 미술 사랑의 결실인 수집품을 공익에 부응하려는 몸짓의 일환으로 그간의 수집 경위를 적은 회고록 출간을 준비 중이라는 미술수집가가 나타났다. 1995년 이래 한강포럼이란 모임을 이끌고 있는 여춘 김용원(如春 金容元, 1935-  )문화운동가가 바로 그이다

미술사랑의 상전벽해

   우리 미술 사랑이 여기 이런 수준에 이르렀음은 내 어두운 기억에 견주면 가히 상전벽해라 할 것이다. 제법 알려진 미술평론가가 1960년대 말에 겪었던 봉변(?)을 기억하면 그러하다는 말이다. 사연은 그 시절 동사무소를 찾아 주민등록등본을 뗄 일이 생겨 신청서를 적는데, 거기에 신청자의 직업란도 있었다. “미술평론가라 적었더니만 동직원이 대학에서 가르치느냐?”고 물었다. 어디 소속은 아니고 수시수처(隨時隨處)로 글을 적는 자유기고가라고 답하자 직원은 그 당장에 두 말 없이 미술평론가기입은 두어 줄로 빡빡 지워버리곤 거기에 무직이라 대신 적어 넣더란 것

   그런 미술 황무지 시절에 여춘이 수장을 시작했음은 가히 혁신가 중의 혁신가라 할 것이다. 조선일보에 기자로 들어간 그 이듬해가 1960년인데 고교 담임선생의 개인전에 갔다가 그림 한 점을 산 게 계기였다. 토속풍경을 즐겨 그렸던 일본 유학파 박상옥(1915-68) 화백의 꽃그림은 갓 차린 신혼살림 장식에 더 할 바 없었다. 그 시절은 말이 전후복구기였지, 보릿고개가 연례행사였다. 그 전후로 이중섭, 박수근 그리고 권진규가 굶어죽었던 판이었다. 하지만 절대가난에도 그림에 손을 놓지 못하는 환쟁이는 있기 마련이었으니 마음만 먹으면 한 달 월급을 아끼면 박수근을 살 수 있던 시절이었다(한 세대 지나 그 박수근 그림은 값이 만 배가 올랐다).  

    그렇게 발동이 걸린 수집 행보는 오늘까지도 멈추지 않았다. 그 사이 무려 60년을 그림 바닥에서 놀았다는 말이다. 행적이 그대로 현대미술의 참여관찰이었다. 미술품 수급상황은 화상(畫商) 못지않게, “돈질을 해본 사람의 그림 감식력이야 말로 괄목상대하다는 말대로, 명망 수장가로서 미술판의 산증인이 되고도 남았다. 모르는 사람 눈엔 한 장의 종이에 지나지 않지만 사랑의 눈에는 금은보화보다 더 귀한 것이 그림이다. 이 연장으로 판화 같은 아무리 값싼 그림일지라도 돈과 바꾸어본 적 없으면 그림사랑이란 말이 공허하겠는데, 이 점은 유명화가 박고석(1917-2002)의 가정교육이 실감나게 일러 주었다. 그이 큰아들에게서 내가 직접 들은 이야기였다.

    박고석은 천경자(1924-2015)와 가까웠다. 그런 사이는 드로잉 그림 정도는 정표 삼아 서로 바꾸어 갖기 마련이어서 전자의 설합엔 후자의 종이그림도 여럿 뒹굴고 있었다. 어느 하루 아들이 천경자 그림을 한 점 갖고 싶다!”하자, 아버지는 그러냐?! 그럼 그림들을 알만한 화랑에 맡겨둘 터이니 거기서 부르는 시세대로 선매(先買)할 수 있게 일러두겠다.” 하더란 것. 거저 얻게 되는 그림은 사람들이 소중하게 애완하지 않음을 에둘러 말함이었다. 그래서 내 생각인데, 문화행정가들이 미술이 국가의 문화자산으로 대단히 소중하다고 입만 열면 역설 또 역설하는 경우도 직접 돈을 주고 사본 적이 없던 이의 말이라면 그건 헛말이 분명하다는 게 내 확신이다.

좋은 미술품 수장도 혁신인 것을

    그림의 가치는 누가 어떤 경로로 알게 되는가. 통설은 작품의 가치에 대한 최초의 확신은 작가 자신의 몫이고, 그 다음은 안목 있는 친지 또는 비평가의 눈길에 들게 됨이며, 다음이 화상, 그리고 다음다음이 구안(具眼) 눈이 밝은애호가라 했다.

    좀 까다로운 현학적 설명도 가능하다. 삶에서 편의성을 크게 높여준 고안을 일컬어 혁신(innovation)’이라 하는데, 아름다움을 창출해준 좋은 조형도 당연히 삶에 생기를 안겨주는 혁신인 것. 혁신은 창의적 인재가 먼저 시도하고, 그렇게 생겨난 혁신을 앞서 알아본 일단의 사람들이 그 가치에 호응하고 나면, 이를 따라 불특정 다수보다 앞서 그 혁신의 가치를 향유하려는 일단의 사람들이 나타난다. 발생과 전파에 대한 이 혁신이론 단계설에서 처음 창안한 사람은 원착상자(innovator)’, 붕아기에 앞서 알아보고는 주위에 그 가치를 전파시키는 사람은 창도가(advocate)’, 창도가의 말을 듣고 발 빠르게 채택해보려는 사람은 선채택자(initial adopter)‘라 한다.

    이를테면 희대의 세계미술 하나의 원착상자 반 고흐에겐 세 사람의 창도가가 있었다. 화가 생전은 동생 테오와 고흐 창작을 긍정 평가한 비평가(G,-Albert Aurier, 1889)가 창도자였다. 사후를 감당했던 불멸의 창도가는 유작을 한동안 굳세게 지키면서 그의 명성을 드높여나갔던 테오의 아내 요한나 봉거(Johanna van Gogh-Bonger, 1862-1925)였다. 그리고 나중에 고흐 그림을 거래하려고 달려든 전설적인 화상 볼라르(Ambroise Vollard) 같은 이가 선채택자였다.

     이 설명틀에 따라 말한다면 조각가 권진규(1922-73)를 수집했던 여춘의 운신은 혁신이론적으로 창도가와 선채택자 사이를 오간 경우였다. 권진규의 예술세계를 높이 샀던 한 화상 창도가의 말을 좇아 작품을 처음 만나자마자 그의 예술세계에 깊이 빠져들었다. 이어 그 수장을 늘리려고 부심했을 동안의 여춘은 선채택자였다.

    세월이 흘러 세상의 몰인식을 비관해 자살로 생을 마감한 그를 기리는 회고전이 뒤늦게 마련되자(호암갤러리, “권진규 회고전”, 1988), 어렵사리 모았던 10여점 <자소상> 등 대표작을 기꺼이 출품했음은 창도가의 순정 모습 그대로였다. 일련의 여춘의 행보는 작품의 가치를 간파한 구안에다, 아직 현대미술에 대한 우리 애호가층이 형성되지 않았던 시절에나 생길 법 했던, “일찍 나선 새가 벌레를 잡는다.”는 서양속담을 연상케 하는 운명적 조우였다

    유명 창작예술가마다 대표작이라 호가 난 작품이 있다. 장욱진의 <자화상> (1951), 이중섭의 <황소>(1953), 천경자의 <내 슬픈 전설의 49페이지>(1976)가 그런 보기라고 애호가들의 입을 오르내린다. 창작가 입장에서도 세계 공통으로 하늘에 걸어둘만한 작품 한 점을 향해 창작한다고 자코메티가 그랬고, 클레가 그랬다.

 한평생에 한번 만날 미술품을 위해

    여춘의 수장은 그림 사랑의 방식이 착하게 나아감의 좋은 본보기라 하겠다. 주머니가 넉넉해서 수장한 것이 아니라 지극한 사랑이 그길로 끌고 갔고, 수장품들에 대한 뒤처리 방식도 사랑의 결실로 아름답게 진행 중이다. 가족과 함께 작은 미술관을 꾸미려고 모책(謀策)하면서 우선 수집 경위를 정리한 서증(書證)의 준비를 서두르고 있다.

    필부의 그림 사랑이 일구어낸 수장이 혹시 나중에 흩어졌더라도 그 경위가 적어도 책으로 남을 수 있다면 그건 고마운 일이다. 정조임금 때의 의관 출신 김광국(1727-97)의 수집은 흩어졌지만 화첩 <석농화원(石農畵苑)>이 남았고, 한때 수장에 열심이던 동주 이용희(1917-97)도 결국 책 한 권(<한국회화소사>, 1972)은 확실히 남아 조선조 시대 수묵화의 실체를 밝힌 빼어난 고전으로 읽히고 있다.

    늦어도 올 상반기 안에 미술수집 60년 행장기 <구름의 마음 돌의 얼굴: 내가 만난 작품, 내가 만난 작가>가 출간될 것이라 한다. “마침내 한 점이란 유명 작가의 걸작은 애호가의 입장에선 일본말 표현대로 한 평생에 한번 만남의 그림이라는 일기일회(一期一繪)’인데, 이 일본말 조어(造語)는 본디 그들이 차와 함께 하는 사람의 만남을 소중하게 여겨 한 평생 단 한번 만남의 뜻인 일기일회(一期一會)’ 사자성어의 이치고 이치에발음이 같음에서 차용했던 말이다. 아무튼 여춘의 손을 거쳤거나 현재 수장 중인 일기일회의 미술품 사연도 아주 흥미롭게 그의 수집 일대기에서 만날 수 있을 것이다.

 

김형국  서울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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