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십이자술 2

 

  내가 태어난 곳은 평안남도 맹산군 원남면 향평리 110번지였고 때는 1928102일 새벽 5시였다. 내가 그 때와 장소를 기억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나의 어머님이 그렇게 일러주셔서 나는 그대로 기억하고 있을 뿐이다.

  내가 태어났을 때 나의 어머님은 스물다섯이었고 내 위로 누나가 한 사람, 형이 한 사람, 그리하여 나는 당시 원남면의 면장이시던 아버님(김병두)과 어머님(방신근)의 둘째 아들로 태어난 것이다. 나의 조상은 평남 강서에서 농사를 지으며 살다가 김씨 일가가 모두 맹산으로 이주한 후에는 큰 집에 식구들이 다 같이 살았다.   

  내가 태어나던 날 아버님은 출장 중이셨다고 들었다. 돌아와 갓 태어난 나를 보시고 하도 좋으셔서 "당신 정말 큰 수고했어요"라고 하셨다고 어머니는 그 한마디를 평생 잊지 않고 자랑스럽게 생각하셨다. 나는 그 산골에서 부모님은 물론 모든 식구들에게 사랑을 받으면서 탈 없이 살았다. 누나는 나보다 일곱 살이 위였고 형은 네 살이 위였는데 그 누나가 나를 업어서 키웠다고 늘 자랑하였다.

   1960년대에 연세대와 이화여대를 지원하는 한 기독교 재단이 개최하는 큰 만찬에 초대받아 보스턴에서 박사학위 과정을 이수하고 있던 나는 그 모임에 참석한 적이 있다. 나의 누님이 나보다 앞서 몇 마디 인사를 하면서 그 뒤에 내가 간단한 연설을 하게 돼있는 줄 알면서도 "내 동생이 어렸을 때 제가 업어서 키웠습니다"라고 한 마디 우스갯소리를 하니 단 위에 올라 일장연설을 해야 되는 내 꼴이 얼마나 초라하게 되었겠는가. 업어서 키운 것이 사실이라 하더라도 사람들 많은 곳에서 공개적으로 그런 말을 하니 내 입장이 일시적으로나마 난처했던 것은 사실이었다.

  내가 아주 어렸을 적에 나의 아버님이 면장직을 사임하고 광산에 손을 대게 된 탓에 우리 가족은 맹산을 떠나 매우 큰 도시인 평양으로 이사를 가게 되었다. 그러나 아버님이 경영하시던 광산이 뜻대로 되지 않았다. 원남면에 소유하고 있던 논과 밭을 다 팔아 넣었지만 되지 않았고 살던 집까지도 팔아야 하는 비운에 처하게 되었다.

  누님은 겨우 그 면에 하나 있던 보통학교(소학교)를 졸업한 어린 나이였는데 우리 가족은 고향을 버리고 낯선 도시 평양에서 가난한 생활을 시작할 수밖에 없었다. 누군들 자기의 어머니가 자랑스럽지 않겠는가마는 나의 어머니는 지금 생각해도 보통사람은 아니었다. 면장댁으로 여러 사람들에게 존경받으며 넉넉하게 사시던 분께 갑작스레 밀어닥친 가난한 삶이었지만 어머님은 단 한 번도 당신의 신세를 한탄하는 일도 찡그린 얼굴로 우리를 대한 적도 없는 분이셨다.


김동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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