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의 혼(魂) 키우기(國魂論 序說)-2

 

조선조로 들어서는 이것이 어떻게 해석이 되는가? 지금 덕수궁 대문을 들어서면 50m전방 오른쪽으로 ‘중화전’이라는 대궐이 있다. 기록에 보면 아관파천하기 전 고종이 중신들과 더불어 국사를 논하던 장소였다. 이름이 중화전으로 기록되어 있다. 처음에는 무식한 생각에 ‘중국에 그렇게 시달렸으면서, 원세개에게 그런 수모를 당하면서도 ‘중화’라는 이름을 왜 붙였을까’라는 생각을 해 보았다. 그러나 이것은 엄청난 잘못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정도전이 신권사상을 드높이는 이상적인 국가를 만들려고 조선을 개국했을 때 기본 되는 사상이 바로 ‘中和’였다. 인간의 사단(仁·義·禮·智) 칠정(喜·怒·哀·樂·愛·惡·欲)이 통치의 기본이었다.

喜怒哀樂之未發이 謂之中이요(희로애락의 성향이 발현되지 않은 것이 바로 중이고)

發而皆中節이면 謂之和라(발했으나 제대로 잘 발현되었으면 이것이 곧 화라)

中也者는 天下之大本也이요(따라서 중을 추구하는 것이 천하의 근본이다.) 이것은 가운데라는 뜻이 아니다. 거문고 줄이 너무 팽팽하면 끊어지고 느슨하면 소리가 안 난다. 딱 하나인 최적중, Optimism이다. 통치의 기본은 적중이다.

和也者는 天下之達道也다(화를 추구하는 자는 천하의 도를 이루는 첩경이다.)

致中和하면 天地位焉하고 萬物育焉이라(따라서 중화를 다 다스리게 되면 천지가 제 질서에 들어가게 되고 모든 천하 만물이 제대로 생육 발전하게 된다.)

얼마나 장한 뜻인가. 弘益人間, 在世理化, 敬天愛人으로 비롯돼서 이것의 실천수단으로 相磨以道義, 相悅以歌樂이 있었고, 遊娛山水 無遠不至, 이것을 실천하는 수단으로 세속오계(世俗五戒)가 이루어졌었고, 조선조에는 이어받아서 천하의 근본에 이르는 것으로 中也者를 꼽고, 천하의 달도에 이르는 것으로 和也者를 꼽았으니 이를 통해서 만물이 생성발전 하는 것을 도모했다. 이로부터 호연지기가 이루어질 수 있고, 이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혼자 있을 때를 삼가고 생각이 사특해서는 안 된다. 이걸 바탕으로 하는 정치이념으로는 삼강령팔조목(三綱領八條目)을 주창해 마지않았다. 명명덕(明明德, 명덕을 밝히고), 신민(新民, 백성을 계속 새롭게 하고), 지어지선(止於至善, 최선을 다한 지선에 멈추어야 한다). 이를 이루기 위해서는 팔조목(八條目)으로 현장에 임해서 이치를 공구하고 ‘격물(格物)’, 앎에 이르게 되는 ‘치지(致知)’, 자신의 의지를 성실하게 유지하는 ‘성의(誠意)’, 마음을 바르게 하는 ‘정심(正心)’, 자신을 다스리는 ‘수신(修身)’, 집안을 가지런하게 하는 ‘제가(齊家)’, 나라를 다스리는 ‘치국(治國)’, 온 세상을 평안하게 만드는 ‘평천하(平天下)’이다.

얼마나 장한 이념의 정돈인가. 특히 항시 이를 갈고 닦기 위해서는 어질음을 갈고 닦는 측은지심(測隱之心). 즉 내 자식이 아니더라도 물에 빠지려고 하는 남의 집 아이를 차마 버리지 못하고 쫓아가 붙잡는 어진 마음을 가져야 하고, 의로움을 갖춘 義之端은 수오지심(羞惡之心). 옳다는 것은 부끄러움을 아는 것이 기본이다. 禮之端은 사양지심(辭讓之心). 남에게 먼저 베푸는 것이다. 우리는 사양지심의 극치를 쓰나미 겪은 일본의 사건에서 볼 수 있다. 쓰나미로 모두 고통 속에 있을 때 물통 2개를 받은 청년이 “나는 혼자이니 한 개로도 족합니다. 뒷사람에게 줘야합니다.”라며 넘겨주는 절제와 사양의 마음, 끝으로 智之端은 시비지심(是非之心)이다. 안다는 것은 별 것이 아니다. 결국 옳고 그른 것을 아는 것이 기본이다.

이것을 갈고 닦기 위해서 사대문을 인의예지로 정리했다. 살펴보자.

예절을 으뜸으로 숭상하는 선비들이 모여든다, 숭례문(崇禮門). 어질음을 갈고 닦는 선비들이 구름처럼 모여든다, 흥인지문(興仁之門). 낙산이 세가 약해 비보사상에 따라 갈之 하나를 더 붙여 興仁之門. 의를 돈독히 한다, 돈의문(敦義門). 정숙하고 총명을 도모한다, 숙정문(肅靖門). 사대문을 지난 선비들이 구름처럼 종로에 모여든다, 보신각(普信閣). 33천의 도솔천까지 이르는 종을 치고 믿음을 논하고 믿음을 넓히는 普信이다. 왜 믿음을 강조했을까?

자공이 공자에게 묻는다.

“스승이시어. 나라를 지키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외적을 막아야 하니 兵이지.”

“그 다음은 무엇입니까?”

“民은 이식위천(以食爲天), 먹는 것으로 하늘을 삼으니 食이지.”

“그 다음은 무엇입니까?”

“民 無信不立, 백성은 믿음이 없으면 바로 설수 없으니 信이지.”

“그렇다면 그중에 하나를 버리면 무엇을 버리리까?”

“兵을 버려라”

“또 버려야한다면 무엇을 버리리까?”

“食을 버려라. 굶더라도 믿음이 있어야 나라가 서고 개인 간에 관계가 형성된다. 하여 信이다. 無信不立. 이것이 나라의 요체중의 요체이다.”

우리나라가 이러한 역사적인 기맥 속에 5000년이 흘러왔건만 지금 민주정치를 하면서 태평성대를 구가해 마지않는 현재에도 가장 타락하고 잘못된 것이 無信不立이 정립되지 않은 것이다. 말을 믿을 수가 없질 않는가. 흔히들 우리 역사를 폄하하는데 그렇지 않다. 이스라엘의 모세오경 탈무드 못지않은 우리의 경전이 있다. 弘益人間, 在世理化, 敬天愛人 이를 실천하는 수단으로써 우리가 해 온 것은 相磨以道義, 相悅以歌樂, 遊娛山水 無遠不至했다. 이를 위해서는 조의선인, 화랑, 무절로 청년의 기상을 훈련시키고 다듬었다. 이를 위한 도덕적 실천수단으로 우리는 세속오계를 간직했다. 事君以忠, 事親以孝, 交友以信, 臨戰無退, 殺生有擇. 조선조로 와서는 이기론(理氣論)에 입각해서 중화를 도모했다. 즉 喜怒哀樂이 未發된 것이 中이고, 發하더라도 中節이 되면 謂之和고, 中의 중요성, 和의 중요성 中和達道를 으뜸으로 보았다. 이를 통해 호연지기(浩然之氣)와 낙이불음(樂而不淫)하고 애이불상(哀而不傷)하는 원숙한 인격체를 도모하도록 했다. 이를 위한 실천 강령으로 仁義禮智, 無信不立을 근간으로 삼고 갈고 닦아 왔다. 역사의 굴절에 따라서 내용의 변질이 있었으나 우뚝 선 홍익인간으로부터 인의예지에 이르는 이 역사철학은 계속 갈고 닦고 남아야 할 우리의 기둥 중의 기둥이 아닐까 생각한다. 생각 있는 많은 분들의 참여와 관심을 촉구해 마지않는다.

 

여상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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