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 시를 말하려는” 전직 총리

 

    연말 지인끼리 송년모임에서 송복 연세대 명예교수가 누군가의 부탁이라며 한 손에 잡히는 자그마한 시집을 전해주었다. 교수는 대학가에서 대단한 시 사랑으로, 연장으로 학부 강의 때면 詩三百 思無邪(시삼백 사무사)” 시 삼백에 사악한 생각이 하나도 없다던 저 유명한 논어 한 구절을 일깨우며 수강생들에게 삼백 수 정도는 암송하기 바란다고 강조한 이로도 소문났었다. 이 이야기를 시 사랑의 또 다른 명수 김동길 교수가 암송해온 고금(古今) 우리 시영시한시일본시 가운데서 내가 백편을 골라 책(<내 마음의 노래>, 2019)으로 묶을 적에 그 해설 글에다 덧붙인 적 있었다.

    그 글을 누군가가 읽은 모양이었다. 바로 우민 고건(又民 高建. 1937- ) 전 총리이지 싶다. 두 분은 서울대 정치학과 입학동기로 우민이 공직에서 물러난 뒤로 매달 만나 소주잔을 나누는 자별한 사이라 들었다.

    우민이 꾸민 책이 어떤 성격인지는 제목이 단도직입으로 말해준다. <내가 좋아하는 친구, 친구가 좋아하는 ()>(2019)인데 서문에다 그걸 풀었다. “시를 읽고 싶었다. 내가 가끔 만나는 친구들에게 좋아하는 시를 받았다.,,, 나이 들면서 사라지고 있는 기억력의 소멸시효를 늦춰 보려 했다.” 아니 사람 사이의 최고 경지를 일컬어 공자가 가여언시(可與言詩) 곧 더불어 시를 말할 수 있음이라 했는데 자비 출판 시집은 당신의 지우들과 더불어 그 경지로 나아가려는 몸짓이 분명했다.

    총 2백여 편이 실렸다. (우리 현대시), 시조한시, 해외 시, 노래 가사 소제목의 네 부류 시가 빼곡 했다. 재미있는 점은 가고파같은 우리 가곡은 물론 목포의 눈물”, “봄날의 간다등의 이른바 뽕짝 가사도 들어 있었다.

    정작 우민의 시 사랑 내심은 다산 정약용의 뜻과 같을 것이다. 착한 것은 들어서 감발(感發)시키고 악한 것은 듣고서 잘못을 뉘우치게 한다. 그리고 임금을 사랑하고 나라를 근심하지 않는 시는 시가 아니다”라고 그는 잘라 말했다. 지금 시절이 민주 공화시대인 만큼 이 말에서 임금 사랑대신 자유 민주주의 사랑으로 대입하면 그대로 진선진미의 말이 될 것이다.

 

나라 녹화의 밑그림을 그리다

   고 총리를 내가 가까이 사석에서 만난 것은 분주했던 현직(顯職)에선 물러났으나 그래도 공무(公務)가 반쯤은 걸렸던 시점이었다. 2009년 연말, 이명박 정부의 고빙으로 계층과 이념, 지역과 세대 간 갈등 해소에 대해 자문 받으려고 발족시킨 대통령직속 사회통합위원회위원장 자리를 맡고선 위원회가 현창해야 할 바로 특히 "북한 지역에 나무심기로 우리 사회의 이념 대립 해소에 일조하겠다는 포부를 공언한 뒤였다.

    내가 고건이란 존함을 처음 접한 데는 가깝지도 멀지도 않는 인연이 있었다. 1968년 봄, 그가 서울대 행정대학원이 갓 부설한 도시 및 지역계획학과’(1973년 이후 환경대학원 환경계획학과) 1회 야간부에 입학했던 바로 그때, 대학원 행정학과를 졸업한 나는 그 신설학과의 교수요원 양성계획에 뽑힌 무급조교였다. 학과 야간부는 도시나 지방발전의 새로운 이론을 배우려던, 내무부와 서울시청의 엘리트 공무원이 주류였다. 그때 맹렬 기세로 불붙던 도시화에 선제적으로 대처하겠다던 앞선 의욕수 덕분이었든지 졸업생들 가운데 서울시장, 환경부장관 등 고위 공직자로 입신한 이가 여럿 나왔다.

    그 가운데 발군은 단연 우민이었다. 대학원 때 이미 동기생 가운데 가장 직급이 높았다. 이후 우리 공무원 현대사에서 이른바 출세를 가장 높이 그리고 많이 한 이로 기록되었다. 30대 전남 도지사를 시작으로 서울시장 두 차례에다 세 부처의 장관, 그리고 두 번이나 국무총리에 올랐다면 말 다한 게 아닌가.

    그렇게 현란하게 고위 공직을 자리를 빛낼 동안에도 이론연구형 교수로 자임하던 내가 한 번도 관청 일로 그와 공사석에서 어울릴 일은 없었다. 그러나 그의 인물됨은 내무부 시절 상사로부터 실감정감나게 들었다. 초등학교 졸업으로 국세청장까지 오른 공직인데 당신의 큰 자랑이 1970년대 중반 경북지사 때 관내의 산림녹화에 진력했고, 그 전국 계획인 치산녹화 10개년 계획(1973-82)을 지방국 후배인 고건 새마을담당관이 세웠음이었다(김수학, <이팝나무 꽃그늘: 보릿고개 넘어온 눈물의 민족사>. 2008).

    그런 당신의 자랑을 뒤늦게 현장 목격하려고 2007년 경북 포항시 흥해읍 오도리에 세운 사방기념공원을 함께 찾기도 했다. 구호물자 밀가루 포대로 노임을 주며 일대 주민들로 하여금 바위와 모래의 산비탈을 가로로 줄지어 파낸 거기로 흙을 날라 나무가 뿌리 내릴 수 있게 했던 총면적 4500ha 공사에 연인원 360만 명이 참여했음의 기념이었다. 공사 중 악천후에도 불구하고 현장시찰을 나온 박대통령에게 직접 보고했음이 일생일대의 자랑이던 산림국장 박상현이 미리 자찬(自撰) 비문을 적는데 상사의 이름도 꼭 넣어야한다고 고집하자 김 지사는 나에게 윤문(潤文)을 부탁한 적도 있었다.

 

전국이 금강산이 되었고

    박정희가 세상을 떠난 직후 그의 최대 공적이 국토의 산림녹화라 했던 이는 일본 수상 역임의 후쿠다 다케오였다. 20년 미만 집권기간 중에 녹화에 완전 성공한 것은 고도성장·수출증대·중화학공업 등 혁혁한 경제업적보다 더 값진 위업이라 했다.

    이 점은 세계 공인이기도 했다. 1988년 세계식량기구(FAO)는 세계근대사에서 독일, 영국, 뉴질랜드 그리고 발전도상국 가운데 유일하게 한국을 세계 4대 조림 성공국으로 뽑았다. 독일 등은 나무를 벌채한 만큼 꾸준히 조림하고 계속 가꾸어온 경우이지만, 전국 규모 황폐화로부터 다시 산림을 완전복구한 나라는 현대한국이 유일하다 했다.

    현대한국의 산림녹화 성공의 위업에 지혜의 초석이 되어준 우민이 북한의 조림을 도울 방도를 다각으로 모색하고 있음은 고마운 일이다(고건, <회고록: 공인의 길>, 2017). 북한지역 나무심기 사업을 양묘조림연료 확보방재소득 창출 등 통합적으로 진행해야 한다는 등 성공 경험의 정책 아이디어로 도울 마음의 준비는 되었다지만 북한의 호응은 좀 엉뚱하다 했다. 그쪽 체면을 위해 현물기술지원을 동남아에 진출한 유엔기구를 창구로 삼겠다하면 모든 걸 직접 하겠으니 현금만 달라고 고집한다는 말도 들었다.

    이쯤해서 나는 우민 당신의 산림녹화 공덕을 기려서 푸르름을 되찾기 이전의 우리 산야를 그린 오장환(吳章煥. 1918-51?)<붉은 산> 시 한편을 읽어드리고 싶다.

 

가도 가도 붉은 산이다./ 가도 가도 고향뿐이다./ 이따금 솔나무 숲이 있으나/ 그것은/ 내 나이같이 어리구나./ 가도 가도 붉은 산이다./ 가도 가도 고향뿐이다.”

 

    시인은 정지용의 제자로 백석과 서정주와 더불어 한때 우리 시단의 3대 천재로 불렸다. 당신과 동갑으로 함께 어울렸던 백오세 장수의 김병기 화백의 개인 증언에 따르면 대단한 미남으로 소문났던, <미라보 다리> 시로 우리에게도 친숙한 프랑스 시인 아폴리네르를 닮은 호남이었단다. 그는 서자를 푸대접하던 전통주의 등에 반발했음인지 1948년에 월북했다. 625동란 때 종군작가로 서울의 김광균 시인을 찾아오기도 했다가 나중에 그곳에서 숙청되고 말았지만, 이곳에선 월북 예술인의 행적이 1988년에 해금되면서 그의 문학을 기리는 기념관이 당신 고향인 충북 보은에서 세워졌다.

    <붉은 산>의 감상은 우리 시문학 해설의 대표 교과서(유종호, <시란 무엇인가?>, 1995, 20-22)에서 인용하는 것이 좋겠다. 붉은 산 일색의 산하가 안겨주던 황량한 절망감을 체험하지 못한 젊은 세대에게는 별 감흥이 없는 소품쯤으로 여겨질 것이리라. ...이러한 산하를 등지고 많은 동포들이 만주로 이주해 갔으며 또 이러한 터전에서 1950년의 전쟁이 진행되었다는 사실에 무심하지 못할 것이다.”

    산림녹화 성공 덕분에 이 나라 방방곡곡이 금강산라 감탄하는 이는 산수의 아름다움 찾기에 이골이 난 이 나라의 중진 동양화가 한 분이다. 이제 오장환의 시구도 가도 가도 푸른 산이다./ 가도 가도 고향뿐이다.”로 바꾸어 읽어도 좋을 것이다. 그리고 나무가 울창해진 마당에서 수필가로도 이름이 드높았던 이양하(1904-63) 영문학자의 나무 덕목 명상도 우민을 위해 한 구절 읽어드리고 싶다(이양하, <나무>, 1964. 14-16)

 

나무는 덕을 가졌다. 나무는 주어진 분수에 만족할 줄 안다. 나무로 태어난 것을 탓하지 아니하고, 왜 여기 놓이고 왜 저기 놓이지 않았는가를 말하지 아니 한다. 등성이에 서면 햇살이 따사로울까, 골짝에 내려서면 물이 좋을까 하여 새로운 자리를 엿보는 일도 없다.

 

     이양하가 누구인지는 한동안 중학교 국어책에 실렸던 그의 수필 경이와 건이”(1940)를 읽었던 사람은 안다. 세 살 건이가 바로 우민의 어린 날이었다.

 

김형국 서울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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