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바람은 민족성의 원형질

 

하나의 사고나 사상이 오랜 시간에 걸쳐 유전되어 오면 역사적 보편성을 획득하게 되고, 구성원 전체의 공통적인 정서로 일반화되면 공간적 보편성을 획득하게 된다. 우리 민족으로부터 역사적, 공간적 보편성을 획득한 이 ‘신바람’의 실체는 우리 민족의 공통적 정서라고 해야 할 것이며, 이것은 바로 우리 민족성의 일부이다.

민족성이라는 것은 오랜 형성기간을 거친 후에 나타나기에 원형질(原形質)이기도 하지만, 형성 동기를 따져보면 환경과의 반응 결과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한번 형성된 민족성은 환경이 급격히 바뀐다고 해서 당장 따라 바뀌는 것이 아니다. 수천 년에 걸쳐 형성되고 다져온 민족정서가 환경이 바뀐다고 해서 금방 바뀔 수가 없기 때문이다.

새로운 환경의 변화와 외래문화에 끊임없이 저항하는가 하면 새로운 환경과 문화에 적응하기 위한 극심한 자기혁신의 과정을 거치기 위해 심한 개인적, 사회적 홍역을 치르기도 한다. 따라서 새로운 환경의 변화를 외면하고 길들여진 사고에만 집착하는 각주구검(刻舟求劍)식 사고는 스스로를 역사의 낙오자로 만드는 결과를 초래하고 만다는 것은 한말(韓末)의 개화기에 슬기롭게 적응하지 못한 우리의 근세사가 잘 증명하고 있다. 그 결과로 우리는 근 백년에 가까운 세월을 고통 속에서 살아 왔으며, 이를 만회하기 위해 얼마나 큰 민족적 에너지가 요구되었는지 생각해 볼 일이다.

그와는 반대로, 수 천 년 동안 하나의 원형질로 굳어져 온 민족정서와 완전히 괴리된 낯선 사고, 낯선 문화풍토를 우리의 원형질과의 용해과정을 생략한 채 그냥 받아들인다면 신비로움이나 새로움이 주는 매력으로 인하여 잠깐 동안의 유행적 효과는 발생시킬 수 있겠지만, 결국에는 뿌리도 없고 국적도 없는 떠돌이 문화가 사회 전반에 만연하게 될 뿐이다. 이로 인하여 그 사회는 극심한 혼란과 대립이 일어날 수밖에 없게 된다. 김옥균을 비롯한 개화파들의 ‘3일천하’와 그 이후 그들이 걸었던 길을 상기해보면 명확히 인식할 수 있는 일이다.

우리나라에 서구의 근대적 경영기법이 도입된 것은 해방 이후 특히 제3공화국 때부터다. 그 이전에도 기업이란 형태가 존재하긴 했지만 서구의 과학적인 경영기법이 본격적으로 적용되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제3공화국 중반기인 70년대 초반기부터 정부는 수출주도형 경제정책을 강력히 추진했고, 이에 발맞추어 국내의 산업체(특히 제조업)는 대량생산 체제를 확립했다. 대량생산 체제는 대량의 고용을 유발했고, 대량의 고용은 필연적으로 시스템화를 앞당겼다. 즉 생산관리, 품질관리, 인사관리, 노무관리 방식이 서구의 과학적인 경영기법에서 모방 또는 원용되었다. 조직적이지 못하고, 수리적(數理的)이지 못하고, 정량적(定量的)이지 못하고, 논리적이지 못한 우리의 전통적 사고에 일대 혁신을 일으키는 작업이었다. 비과학적인 사고를 배제하고 과학적인 체제를 도입했던 것이다. 풍부한 노동력 관리에 도입된 근대적 경영기법은 효율성을 높일 수 있었다. 이것이 그동안 우리나라의 산업화 과정에 공헌한 바는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 그 경영기법은 한계에 다다랐다. 인력을 생산의 수단으로 인식하는 이 기법이 우리나라의 전통적인 사고와 충돌을 일으킨 것은 당연한 귀결이다. ‘나’라는 개념보다 ‘우리’라는 개념에 익숙해져 있던 우리 민족의 보편적인 정서에 생산 단위로서의 인간이란 식성에 맞지 않는 날고기였다. ‘배불리 먹을 수만 있다면 일을 기꺼이 하겠다’는 시기가 지나자, 우리의 식성은 이 날고기를 거부하고 있다. 앞서 거듭 언급했듯이 신바람이라는 망아몰입(忘我沒入)의 경지에서 폭발적인 에너지를 발산시켜온 우리의 민족성이 다시 그리워지면서 원형질에 대한 갈구가 현실로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우리가 전통적으로 신바람 민족이라는 사실은 이미 설명했다. 어떤 인종, 어떤 민족일지라도 신바람이 없지는 않겠지만 특히 우리 한민족은 신바람 속에다 노동을 파묻었고, 모든 생산 활동은 신바람과 어울려 행해졌다. 노동의 대가로 얻어낸 생산품은 우리 민족에게는 신바람으로 얻어낸 부산물이었다.

무더운 여름의 폭염 아래서 김매기는 김매기가 아니라 소리꾼과 일꾼들의 선창, 후창 작업이었다. 신나게 한 판 벌이다 보면 김매기는 어느덧 끝나 있었던 것이다. 이것이 우리 신바람 문화의 노동현장이었다.

여기서 우리 민족의 원형질을 잠시 상기해 보자.

세계 어느 민족도 슬픔 속에서 흥을 구해내지 않는다. 슬픔은 눈물이요, 비탄이며, 절망이요, 낙담이었다. 그러나 우리는 슬픔은 슬픔이면서 거기에 흥을 구해내는 슬기를 가지고 있었다. 역설이 얼마든지 가능한 민족이었던 것이다. 소리꾼이 판소리 심청가 중에서 한 대목을 목이 찢어져라 불러 댄다. 하나밖에 없는 딸, 심청이가 양녀로 간 것이 아니라 선인(船人)들에게 팔려간 것을 안 심봉사가 울부짖는 대목에서 소리꾼은 청중의 애간장을 다 녹인다. 그런데 이렇게 애절한 대목을 풀어내고 있는데도 옆의 고수는 북을 두드리며 ‘조오타’를 연발하고, 청중도 덩달아 ‘조오타’하면서 무릎을 친다. 슬픔을 슬픔으로만 그만두지 않고 흥으로 승화시키는 슬기를 우리는 기질적으로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모든 일에 대범하고, 차근히 기다릴 줄 알며 당장에는 어려울지라도 이 고비를 슬기롭게 넘기고 내일을 기약할 줄 알았다. 이러한 사실은 우리 선조들의 삶의 구석구석에서 발견된다. 과부의 개가를 국법으로 금하면서도 ‘보쌈’이라는 묘한 제도를 만들어 숨구멍을 터놓았다. 보쌈으로 들려간 과부에게도 충분히 변명꺼리를 만들어 주었던 것이다.

조선시대에 칠거지악(七去之惡)이라는 서슬이 퍼런 계율을 만들어 여인들을 옴짝달싹 못하게 옭아매면서도, 여기에 삼불거(三不去)라는 예외규정을 알게 모르게 숨겨놓고 있었던 것이 우리의 선조들이었다. 이러한 것은 문학작품에서도 얼마든지 발견된다. 아내의 간통 현장을 목격하고서도 ‘본디 내 아내였지만, 빼앗긴 걸 어찌 하겠는가.’ 하면서 물러나는 처용가, ‘누가 자루 빠진 도끼를 나에게 주면, 나는 거기에 자루를 박아서 나라의 동량을 깎겠다.’는 엉큼한 노래를 지어 부르면서 서라벌 거리를 헤매고 다닌 원효, 그 외 많은 고려가요, 조선시대의 변강쇠타령 같은 데서도 잘 나타난다.

원형질로서의 민족정서 즉, 신바람은 우리 민족의 노동의 전제조건이었던 만큼, 이것을 비합리로 규정해 버리는 그동안의 실수를 바로 잡아야 한다.

 

여상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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