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장실, 작지만 큰 삶의 질

 

   외신은 얼마전 영국의 한 명가에 설치되었던 18금 변기를 도둑맞았다는 소식을 전했다. 2차 세계대전 때 연합국을 승리로 이끌었던 전시 영국수상의 옛집에서, 그것도 이탈리아 조각가의 작품이어서 화제가 되었다.

   일찍이 프랑스 작가 마르셀 뒤샹이 <>(1917)이라고 거기에 사인을 해서 기성품 도기(陶器) 변기를 예술품으로 변신시켰던 거사는 그 판의 시대흐름이라 치자. 해도 변기 또는 화장실은 예술이기 훨씬 이전에 개인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사람들의 생활 수준을 가늠할 수 있는 가장 기본 척도 하나임은 공감대가 넓다.

 

삶의 질의 창 화장실

   20세기 후반에 절대가난의 한국이 마침내 보여주기 시작한 성장탄력 궤적도 화장실 문화의 열악 대 그 비약적 개선으로 풀이하던 관변 경제학자가 있었다. 인기 전국 순회강연에서 경제 성장의 극적인 상징으로 뒤처리를 전근대시절의 호박잎 또는 기껏 신문지조각 대 근대화 성공의 과실이 분명한 클리넥스휴지로 대비하던 역설(力說)에 청중들은 웃음으로 공감했던 시절도 있었다. 연장으로 양변기 설치 화장실이 공사(公私)간에 가장 실감나는 삶의 질 지표로 등장했다.

   우리 현대사에서 양변기의 대중 보급은 아파트 주거방식을 통해서였다. 처음 나라가 한 사람 최소 필요 주거면적을 2.5평이라 산정해서 5인 가족 13평형 국민주택형 아파트를 공급했고 이어 민간도 주택시장에 진입하면서 30평 전후 이른바 맨션이 등장했다. 지금은 아파트 이름에 각종 외국어 관형사가 총천연색으로 난무하지만, 그 시절 맨션은 주거복지적으로 의미 있던 낱말이었다. 화장실이 둘인 아파트를 말함이었다.

   화장실이 주거복지로 중시되는 나라로 일본이 빠질 리 없다. 도쿄 등지의 비씬 땅값 때문에 돈을 좀 모았다 해도 집 평수 늘리기는 절대 역부족인 것. 대안은 화장실의 리모델링이라 두루 공감하는 사이 토토(Toto)가 약칭인 동양도기회사가 변기 개량을 서둘렀다. 마침내 1980년에 세정(洗淨)기능이 붙은 변기를 출시하자 인기가 치솟아 2015년까지 무려 4천만대나 팔았다. 브랜드 이름 워시레트(washlet)’가 고급 변기를 일컫는 보통명사로 원용되기에 이르렀고, 회사는 일약 세계 굴지의 메이커로 부상했다 

 


                   일본 제국호텔 객실 비치, 토토의 워시레트

 

사회인프라의 얼굴이기도

   그럴 즈음 우리 정부조직도 화장실을 중요 공공 인프라로 여기기 시작했다. 나라경제의 성장 탄력이 느껴지던 1977년에 접객업소는 수세식 화장실 설치가 허가 조건이었다. 그리고 2002년 월드컵 개최를 앞두고 고속도로 휴게소를 포함, 외국인이 몰려들 것이라며 공중 화장실의 현대화에 박차를 가했다. 가시적 사업이라 지자체 단체장도 부심했던바, 이를테면 통영-대전 고속도로 초입인 금산군 관내 인삼랜드 휴게소 설계는 인천공항 실내디자인을 진행 중이던 세계적 프랑스 건축가 빌모트(J.-M. Wilmotte, 1948- )에게 군수가 개인적으로 어렵사리 접근해서 설계 개념을 얻어내기도 했다.

   그때 경기도 수원안산 등지는 카페 분위기가 나는 일억 원짜리 공중화장실을 지을 것이라 미리 자랑했다. 기실, 이 발상은 일본 지자체가 고장을 대외적으로 알리려던 장소판촉(place-marketing)의 일환으로, 일억엔 짜리 화장실 만들기를 벤치마킹한 시도였다. 일언엔 화장실로 이를테면 홋카이도 삿포로의 외곽 나카야마 길목에 지었던 화장실은 한 구석에 간이 도서실을 만들고는 여행객들이 그 마루턱에서 바라본 경치의 감회로 하이쿠를 짓게 했다. 그걸 모아서는 시상도 출간도 하는 운영방식을 자랑해왔다.

   좋은 공중 화장실 만들기의 나라시책은 결실이 많았다. 2000년 무렵 이후 각급 단체가 아름다운 화장실 전국 경연대회를 펼쳐오고 있다. 아주 최근엔 한국도로공사가 고속도로 화장실을 대상으로 느낌 있는 화장실 베스트 10”도 선정했다(건설기술, 2019.5.18). 여기서 이용객 추천의 휴게소 화장실 1위는 망향(부산방향), 2위는 진영(순천방향), 3위는 칠곡(부산방향)이었다.

   공중화장실의 분위기 비약은, 다른 나라에 나가봐야 내 사정을 안다는 말대로, 특히 유럽 등지의 해외여행이면 아주 그리고 자주 실감한다. 이른바 선진국에 가서 당하는 당혹스런 어려움 하나라 하면 화급하게 생리요구를 처리해야 할 적에 화장실 이용료 동전의 마련이 아니었나 싶었다. 적어도 철도역이나 버스 터미널의 화장실 이용에서 돈 내고 사용한 적이 없던 한민족에게 당혹감이 아닐 수 없었다.

   한편, 이른바 우리 공중화장실 복지가 상대적 우위를 얻기까진 성장세대 개개인의 투신(投身)도 잊을 수 없던 정경이었다. 그 시절 한국의 성인남성이라면 고속도로 휴게소, 예비군 훈련장, 버스터미널 등 전국 대부분 공중화장실에 1970년대 중반부터 등장했던 흰색 플라스틱용기를 기억한다. 아직도 공중화장실이 수세식이 되지 못했던 시절에나 등장할 수 있었던 그 용기에는 국민 여러분 소변에서 추출한 효소는 유로키나제란 약품으로 외국에 수출됩니다. 수출에 적극적인 협조를 바랍니다,”라는 문구가 적혀있었고, 이에 애국심까지 발동돼 자세를 가다듬었던(?)” 국민들의 소변도 나라의 수출드라이브를 도왔다.

   더러움악취어두움안전위험이 사악(四惡)’이라던 우리 현대사 초기의 공중화장실은 후발(後發)의 이점이 보태져 어느새 선진국 수준을 훌쩍 뛰어 넘었다. 오늘의 나라 형편은 일단 외형으로 이른바 “30-50 클럽국가”(국민소득 3만 불, 나라 인구 5천만)의 선진국 대열에 올랐다.

   그럼 이 시대는 후대를 위해 어떤 과실을 넘겨줄 것인가? 그건 하드웨어가 아닌 아마 국민의 문화의식 같은 소프트웨어 고양이면 그 얼마나 좋겠는가, 문화대국을 갈망하던 김구의 꿈은 여전히, 아니 더욱 유효하다.

 

    

김형국, 서울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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