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 말 같은 말 듣나

 

   북한이 언제 국제적 공도(公道)를 지킨 적 있었나. 권력의 군림방식을 공맹학은 왕도 대 패도(覇道)로 나눈다. 북한이야 말로 인의(仁義)를 무시하고 무력을 갖고 권모술수로 나라를 다스리는패도의 전형임은 세상이 안다.

    인덕으로 다스린다는 왕도에 정반대가 패도다. 조선조 세조나 명나라 영락제가 임금 자리 적통의 조카를 쫓아내고 최고 권력을 차지하곤 그렇게 하늘이 내린 자리인지라 부끄럽게 여길 일이 아무것도 없다는 무치(無恥)의 논리를 앞세워 나라를 다스렸다. 지금도 전제주의사회는, 3대 세습 북한이 바로 그 전형이듯, 권력 그 자체가 정의라고 정당화한다.

    구체적으로 후계 서열에서 밀려난 뒤 무국적자처럼 떠돌던 형을 국제비행장에서 독살했던 북한의 최고 권력은 패도 중에서도 패도이다. 조선조 중엽 인조라는 암군(暗君) 사리에 어둡고 어리석은임금은 호란을 당해 속수무책이었으면서도 전쟁의 외상이 아물자 자신의 권력에 어림 반 푼 저해요소도 없앤다며 왕세자 그리고 거기서 난 손자까지 죽였던 극악 패도에 버금간다.

    그런 북한에 국내외 양식 있는 사람들이 승복할만한 예의가 있을 리 없다. 진작 불량국가로 낙인찍힌 지 오래인지라 세계적 공준(公準)을 지키지 않음이 예사다. 이를테면 2022년 카타르 월드컵 축구예선(2019.9.15)으로 평양에서 남북대결이 치러졌지만 무관중에 중계방송도 무산시킨 그런 철면피다.

 

평양 정권에 예의를 기대하다니

    111일 국회에서 정 모 안보실장 상대로 야당 의원이 문재인 대통령이 상중(喪中)인데 북한이 초대형 방사포를 발사한 것은 예의가 없는 것 아니냐물었다. 따져보면 물음도 말꼬리를 잡으려는 빈말에 지나지 않았다. 예의라는 개념이 아예 없는 곳을 상대로 예의가 있었느냐 묻는 말본새가 그렇지 않은가.

    빈말 질의에 헛말 대답이 나왔다. 안보의 막중 책임을 맡은 공직자 입에서 "대통령이 장례 절차를 마치고 청와대로 사실상 복귀한 다음에 발사가 됐다"는 어거지를 답이라고 말했다. 예의는 지켰다는 말이었다.

    한 신문 사설(조선일보, 2019.11.2)이 제대로 꼬집었다. “코미디 같은 북() 감싸기라고. 북한을 감싸려는 기조에서 굳이 대답하려면 사인(私人)관계와는 달리 국가관계는 예의 수준에서 논평할 대상은 못 된다정도의 수사(修辭)를 구사했다면 이쪽저쪽에 체통은 지켰지 않았을까.

    말의 본령인 믿음이 사라진 이 시대에 공직자의 입말 수준을 임란 때의 명재상에 비추는 것이 무리임은 이 시대 우리 모두가 잘 아는 바다. 그래도 유성룡을 거명하는 것은 정국이 난조의 기류에서 어떻거나 좀 벗어났으면 좋겠다는 백성들의 갈망이 높고도 높기 때문이다.

    임진년 왜란을 피해 의주로 갔던 임금이 1년 반 만인 159310월에 서울로 환궁했다. 그럴 즈음 조선의 사정을 면밀히 살핀다고 명나라 황제의 특명 사신이 왔다. 선조를 임금 자리에서 물러나게 하려는 특임도 품고 온 사신이었다.

    사신의 위세는 대단했다. 선조를 앞에 둔 사신의 자리 앉음이 마치 임금이 신하를 접견하듯 했다(송복,위대한 만남, 2007).

    사신의 특임을 반박하려고 우리 쪽 전시총사령관 유성룡이 그때 사신의 복심(腹心)이던 명군 사령관과 담판했다. “전쟁이 한창인데 그 중심을 바꾸는 것은 재앙을 가중시키는 노릇!”, 단도직입으로 문제제기했다.

    이에 사령관이 감복했다. “옳다. 옳습니다. 옳은 말입니다. 옳은 생각입니다.”옳을 시()”를 네 번이나 연거푸 적었다. 그러곤 신하가 임금의 지위를 논한 것 자체가 차마 입에 담을 수 없는 짓이었다며 필담(筆談) 종이를 모두 불태웠다.

    그렇게 양위 문제는 없던 일이 되었다. 일주일 만에 본국으로 되돌아가는 사신이 선조에게 한 마디 남겼다. “유성룡의 남다른 굳은 충성심과 독실한 인의는 중국의 문무백관과 장수들이 모두 기뻐해서 칭송하지 않은 이가 없습니다. 왕은 참으로 현명한 재상을 얻었습니다.”

 

위아래가 꼭 같다

    이 시대 우리도 유성룡의 백분지일이라도 말다운 말로 국민을 설득하거나 감쌀 줄 아는, 여든 야든, 그런 공직자를 만나고 싶다. 정치가 바로 그런 말다운 말의 수사력에 달렸기 때문이다.

    국민들을 마음으로 설복할 줄 아는 공직자의 말을 기억해 내고 싶을 때면 욕지거리수준이긴 해도 나는 곧잘 옛 신민당 당수 이철승(1922-2016)을 떠올린다. 1978년 여름 중반인가 현대그룹이 요인들에게 현대아파트를 특혜 분양한 사건이 터졌다.

    요인으로 먼저 국회의원들이 거명됐다. 다행스럽게도 신민당의 해당자가 없다는 신문보도가 일단 나왔다. 당수는 희색만면이었다. 웬걸 그 다음날 속속 수뢰자가 밝혀지는데, 야당의원도 몇몇 포함되었다.

    기자가 다시 당사를 찾아가 어찌 된 일이었느냐 짓궂게 따지자 당수는 전라도 특유의 육두문자를 내뺏듯 한마디 했다. “형제가 많다보면 호로자식도 있기 마련!”

    한마디로 특혜 잘못을 인정했다. 세상살이의 체험이나 견문이 있는 사람치고 이 말이 우리 가족생활에서 틀린 말이 아님은 모르는 이 없다. 그래서 그럴 수 있었겠다고 정계 안팎 사람들이 마지 못 한 채로 수긍은 했다.

    한편, 언뜻 생각해도, 이 정권의 말 수준은 신뢰를 잃은 지 퍽 오래다. 지표는 분명 하강 화살표인데 대통령은 경제가 순항 중이라 계속 말하고 있다.

    국회 질의에서 이 정권이 잘 한 일로 노 모 비서실장은 전쟁 위협 제거라 했다. 위협 제거를 비핵화에 두고 있음이 한미동맹의 확고한 입장이었음을 상기한다면 그럼 비핵화에 일말의 진전이라도 있었단 말인가.

    말답지 않은 말하기는 이렇게 비서실장도 대통령에 못지않다. 그러한즉 이를 두고 부창부수를 고쳐 말해 상창하수(上唱下隨)라 할 것이다.

 

김형국 서울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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