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성시럽은 삶에 부친 글 해원굿

 

     언성시럽다.” 이 경상도 사투리를 소설말로 즐겨 쓰는 이는마당깊은집으로 이름난 김원일(1942-  )작가다. 말은 어머니 입술에서 배운다 했다. 그이 어머니는 울산 출신에 대구에서 오래 살았다.

     마침 대구 출신 문학평론가 하응백(1961-  )이 적은 사소설남중(2019)의 주인공 또한 한마디로 지긋지긋하다”, “넌더리가 난다는 말뜻대로 언성시럽게 살았다. 평론가의 어머니가 책의 세 쪽 글 가운데 첫째 글의 주인공. 언성시럽다의 광역대(廣域帶) 말 뜻대로 기구하게 살아낸 기막힌한평생이었다.

     개인사는 사회사의 한 투영이라 했다. 주인공 선산 김씨 여인(1929-2019?)의 사단(事端)의 발단은 6.25사변이었다. 사변의 사회적 파장 하나로 경상도 일원에서 유복자가 다수 태어났다. 그때 종군기자였던 한 노장으로부터 내가 얼마 전 직접 들었던 말이다. 낙동강 전선이 최후 방위선이 되자 인공치하에 들지 않았던 경상도에서 대대적인 징병이 이뤄졌다. 이 지경에서 집집마다 출정을 앞둔 아들을 서둘러 장가보냈고, 그 결과가 타 지역보다 한결 높았던 유복자 출생비였다.

     김 씨도 신혼 사흘 만에 남편을 전장으로 떠나보내야 했다. 한 여인의 불행의 전조로 휴전 발효 직전 남편이 전사했다. 시아버지는 유복자도 갖지 못했던 김 씨가 조만간 떠날 사람이라 여겼지만 당사자는 달랐다. 시댁 귀신이 되어야 한다는 마음을 품은채로 대구 서문시장에서 삯바느질을 했다. 그렇게 벌어 아낀 돈푼을 보내며 시집과 인연을 이어가려 했다.

 

잘난 아들 덕분에 시집도 가고

     그러길 7, 서른 살 때였다. 오가던 시장 통에서 청상을 눈여겨 본 이가 있었다. “색시, 시장할 텐데 요기나 하러 갑시다. 영감의 첫 '작업' 멘트였다....마침 배가 몹시 고팠던 색시는 말없이 영감을 따라 갔다.”

     그렇게 아들이 태어났다. “나이 일흔에 낳은 아들이 내 아들인가(七十生男非吾子)” 여부를 두고 논란의 옛 이야기도 전해오지만 일흔에 훨씬 못 미친 겨우예순셋이나, 그 시절은 누가 봐도 할아버지가 분명한 영감에게 태어난 아들이 나중에 평론가로 자랐다. 그리고 화제의 이 사소설도 펴내기에 이르렀다.

     영감은 북한에서 온 월남인이었다. 사업을 일군 뒤 딸 셋을 둔 고향으로 돌아가려했지만 6.25로 대구에 그만 주저앉았다. 그리고 경제기반을 닦자 엽색이 취미였다. 본처 행세 제 1호 첩 등살로 그 밑으로 입적한 아들에겐 실제로 함께 사는 생모는 호적상 동거인에 불과했다.

     이야기의 골자는 6.25 전사자의 경우, 사실혼이 확인되면 그 과부와 사후결혼이 법적으로 가능하다는 사실을 생모가 알고부터였다. 죽은 남편과 혼인신고를 갈망하면서 이게 성사되기까지 전말을 적은 것이 <김벽선 여사 한평생> 단편이다. 혼인신고특례법에 따라 청구서를 제출하는데 거기엔 당연히 저간의 경위서가 필요했다. 김 여인의 구술을 아들이 받아 적었다. 거기서 모르던 어머니의 자질도 알아냈다. “어머니가 탁월한 이야기꾼이구나, 소설을 써도 잘 썼겠다는 생각을 했다.”

     마침내 소원이 이뤄지자 여인은 희색만면이었다. 고생했다. 잘난 아들 덕분에 시집도 가고.” 해피엔딩이긴 하나 이 아니 언성시러운가.

 

그 사람들 배꼽을 잡고 웃을라

   『객주등 토속적 글을 많이 적은 당대의 큰 소설가 김주영(1939-  )도 언성시럽은 가족사를 몇 년 전 거리낌 없이 자복했다. 경북의 산골 청송 출신의 성장소설(잘가요 엄마, 2012)이 그이 문학을 좋아하는 애독자들을 많이 놀라게 했다.

     소설은 작가에 대한 사회적 평가 덕분에 문광부의 장한 어머니상에 뽑혔는데도, 시상식에 어머니가 안 가겠다는 반응으로 이야기의 막이 오른다. 2007, 실제 상황이었다. 어머니가 상은 어림없다고 손사래 치자 시골에 살던 동생이 상경해서 대신 받았다. 손사래 치는 소설 속 어머니 변은 이랬다.

 

   내가 니를 낳아서 키울 동안 가장 가슴 아픈 것이, 배를 곯게 하여

   남의 밭고랑에 기어들어가 고구마, 감자 훔치고... 목화밭에 들어가

   덜 익은 다래를 따 먹으며 배를 채우게 한 죗값이 무더기로 있다.

   학교에서 사라는 교과서조차 제대로 사준 적이 없었고.... 골목마다

   종갓집이 버티고 있는 이런 괴팍스런 동네에서 사내를 두 번씩이나

   갈아치웠다고 입들을 흔들 비쭉거리고 눈총 받고 살아왔는데, 장한

   에미상을 받았다면 그 사람들 배꼽을 잡고 웃을라.

    

     어머니의 언성시럽은 팔자는 사내를 갈아치운구체 내력을 들어보면 차마 귀를 열고들을 수 없는 아픔이었다. 일제 때 작가의 외할아버지가 큰 아들을 징용을 보내지 않으려고 딸을 유력자의 첩으로 바쳤다. 하지만 별무효과로 아들은 징용에 끌려갔고 거기서 살아 돌아오지 못했다.

     그 사이 첩은 딸과 아들을 두었다. 그런데 그만 소박데기가 되고 말았다. 바로 작가로 자란 아들의 어머니 해주 최 씨였다. 급기야 어머니는 정미소에서 일하다 손가락이 망가진 작은 외삼촌의 생계도 감당해야 했다. 이 곤경의 짐을 좀 덜고자 외삼촌이 작업을 했다. 일본 징용에서 살아 돌아왔다는 한 씨와 살림을 차리게 했다. 새 아버지에게서 아들이 난 것은 나중 일이고 그가 세상에 건달임은 금방 들통이 났다.

     이제 어머니는 두 집 살림을 도맡는다. 이집 저집 품팔이 드난살이로 피골이 마른다. 새아버지와 외삼촌을 싸잡아 내 등골을 빼먹지 못해 눈깔이 시뻘건 날건달 둘을 데리고 산다.”는 어머니 말대로 뼈 빠지게 일하지만 아들의 학교 도시락도 한번 싸준 적 없었고, 학교 월사금을 내준 적도 없었다. 학교에 간 아들은 점심때마다 물로 배를 채워야 했다.

     소설의 조연 한 사람으로 외삼촌에게 얹혀살아 동복(同腹) 사이인줄 한참 몰랐던 누님이 있었다. “내가 보기에 그녀는 천성이 뛰어난 이야기꾼이었다. 어린 나이에도 객지 물을 먹고사는 뜨내기처럼 입담이 좋았다. 그중에도 귀신 이야기를 곧잘 하여 심약했던 나로 하여금 오줌까지 지리게 만들었다.” 미루어 김주영의 작가성엔 피내림도 작용했음을 알만했다.

 

문학이 이렇게도 아름답다

     20세기 전반 한국사회의 고난사는 일제 때는 징용 그리고 6.25 전쟁 때는 징병도 중요 키워드였다. 이 족쇄로 말미암아 김주영의 잔혹 생장사 그리고 하응백의 아비, 어미를 제대로 부르지 못하는홍길동식 소외사가 생겨났다.

     불우의 이 언성시럽은 삶들이 글로 옮겨졌다. 그 문학이 마침내 해원(解冤)굿이 되어주었으니 이 또한 글의 아름다움 아닌가.


김형국, 서울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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