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포동인회 월차 인문강좌 5백회

 

   모두들 그런 느낌을 받는다. 기차역 플랫폼까지 나온 전송은 사랑이 깊을 대로 깊어가는 연인들의 잠깐 이별이거나 그걸 그린 영화장면이라고.

   그런즉 현직에서 물러난 지도 오래인 학계 인사들을 전별하려고, 역 개찰구에서 이미 작별의 말을 나누었음에도, 마산지방 유지들이 굳이 플랫폼까지 따라 나와 다시 인사하고 기차가 출발하자 열차 차창을 향해 손을 흔들던 모습은 이 바쁜 세상에서 연인 사이라도 그리 흔한 경우는 아니었겠다. 지극정성의 한 단면이 바로 그러했다.

    상경 인사를 전송한 이들은 지금은 창원시의 일원이 되고만 옛 마산시 출범의 합포문화동인회 전현직 간부 일행이었다. 19773월 중순, 1회를 시작으로 매달 열어온 합포문화강좌가 42.5년 만에 무려 5백회를 맞자 이를 자축하는 기념행사(2019.9.27)를 가졌다.

    옛적 강사들도 여럿 내빈으로 참석했다. 이를 고맙게 여긴다며 다음날 일행을 따오기 복원에 성공한 창녕군 우포늪으로 안내했다. 이어 가까운 동대구역에서 전별하는 시간이었다.

 

깨어있는 지방의식을 위해

    처음 민족문화강좌란 이름으로 시작했다. 이래로 서울공화국이라 이름 할 만큼 물심양면으로 경향(京鄕)간 격차가 자심한 이 나라에서 적어도 사회의식은 깨어있어야겠다는 지방정서가 거둔 장소적 성취로 자리 잡았다.

   “진주라 천리 길이란 전래 말은 그 이웃 경남 해안가 옛 마산도 다르지 않았다. 서울에서 바라보면, 2010년 말 고속열차가 운행되기 전까지만 해도, ‘개땅쇠들이 모여 사는 변방이라 바쁜 명사들 초청 섭외가 간단치 않았다.

    그나마 국내항공편 가운데 운항의 항상성이 가장 높았던 김포-김해 노선이 구원투수였다. 항공편으로 일단 당일 왕복이 가능하다는 부연이 특히 서울출발 명사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었다. 그렇게 비행장에서 영접한 강사를 강연장으로 모시는 도중에, <가고파> 국민가곡의 고향이란 말은 들은 바 있었다지만, 처음 만나는 지방도시의 정서와 인심에 대해 들려주는 브리핑의 수고도 발족 때부터 오래 동인회를 대표해온 조민규(趙敏奎, 1936- ) 회장이 도맡았다.

    이 간곡한 접대가 주효했다. 낯선 고장에 대한 낯가림이 일단 없지 않았는데 막상 강의장 열기가 기대 이상으로 높았음이 일단 감동이었고, 강의가 끝난 뒤 전송까지도 대표라는 사람이 몸소 비행장까지 따라 나옴 또한 감동이 되고도 남았다. 이 감동이 다음 강좌에 설만한 유력 연사를 직접 소개해주는 연쇄효과도 낳았다. ‘인사(人事)’란 말은 사람 사이의 간곡한 예절이란 뜻이기도 한데, 바로 그렇게 인사가 만사인 경지를 보여주었다.

    그 사이 이어진 강사진은 한마디로 이 나라의 명사 족보와 다름이 없었으니 이 강좌를 즐겨온 마산시민의 자부심도 좀 넘치게도저(到底)했다. “합포문화강좌에 아직 서지 못한 이는 아직 한국명사 반열에 오르지 못한 사람!”이라고.

 

옛 시인의 권유

    지방도시 인문교육의 국내 최고성공사례로 꼽히는 강좌는 노산 이은상(鷺山 李殷相, 1903-82) 시인의 창안과 권유였다. 그때 민족문화강좌를 해마다 중요 대학을 순회개최하려던 복안의 연장으로 1976년 말 고향을 찾았던 전국 명성의 노산이 청장년 여럿에게 지방문화 창달의 방편으로 인문강좌를 제안했다.

    즉각적인 호응이 있었다. 그 이듬해 초 민족문화협회 마산지부를 결성했고 3월에 제1회 민족문화강좌가 열렸다. 문화행사용 도시인프라가 전무했던 시절이었던지라 노산의 충무공의 구국정신명강도 도심 다방에 신세를 졌다.

    착상(着床)한 창의 아이디어가 지속적으로 실행되자면 반드시 지성(至誠)의 리더십이 있어야했다. 그때 누구보다 이 아이디어가 솔깃해서 조민규 여당 사무국 마산지부 간부가 여기에 깊이 발을 담근 데는 그럴만한 사정이 있었다. 몸담던 정당이 공익(公益)을 실현한다며 남발해온 공약(公約)이 공약(空約)으로 유야무야되는 판국에서 손에 잡히는 구체적 실행의 보람을 느끼기 어렵던 차 그 대안 찾기였던 것.

    한데 문화강좌 개최를 주선진행하는 여력 봉사도 만만치 않았다. 날로 부담이 가중됨을 느낄 무렵 아예 공동체 봉사형인 일자리를 만날 수 있었다. 대한적십자사가 출범시킨 경남지사의 사무국장으로 자리를 옮기자 그만큼 문화강좌에도 심혈을 쏟을 수 있었다. 지방문화의 헌신 행각을 미쁘게 보아준 적십자사 총재들의 배려도 남달랐다. 다른 지방의 사무국장 보직도 맡아야 하는 순환보직 관행에서 열외(列外)시켜준 덕분에 계속 마산에서 강좌 일에 참여할 수 있었다.

 

그리운 마산’, 합포 이름으로 환생

    강좌 5백회 기념에 앞서 2017년 봄에 마흔 돌맞이 기념 잔치도 성대하게 개최한 적 있었다. 불혹(不惑)의 세월이 예사 연륜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거기서 강좌 역사의 주춧돌이었던 공덕을 기려 자리에서 물러나는 조 회장에게 합포(合浦)’란 아호를 거시(擧市)으로 헌증했고, 동시에 그의 공덕을 기리는 합포 조민규 봉사상도 제정했다. 매년 시상금도 동인회 회원 출연이 약조되었다.

    처음 민족문화강좌라 이름 했던 것을 2013년에 합포문화강좌로 바꾼 것도 뜻이 있었다. 필시 지방의 정체성을 대표하던 도시이름 마산이 창원시의 발족으로 구명(區名)으로 위축되었음을 안타깝게 여긴 나머지 역사적 지명으로나마 되살리려는 작은 시도라 싶었다. 나 같은 출향인사도 기껏 유명 고향 선배들의 부고 기사에 적힌 경남 마산 출신이란 글귀로 고향의 옛 정명(正名)을 겨우 만나고 있음이 무척 아쉽던 차였다.

    딴은 1960년의 마산 3.15 의거그리고 197910부마사태의 역사적 현장이 지금도 나라의 바른 앞날을 위한 돌파라면 우리가 끝판을 낼 수 있다는 사회적 자의식은 숨기지 못한다. 이게 합포문화강좌를 지속시켜주고 있고, 역으로 강좌 또한 그 의식을 부추기고 있음은 분명하다.

 

김형국, 서울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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