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간디, 조 만식(1883~1950)

 

                     한국의 간디, 조만식 (1883~1950)

 

해방이 된 뒤에도 나는 한 번도 그와 마주 앉아 이야기를 나눈 적은 없다. 다만 그가 평안남도 인민위원회 위원장이 되어 아침 조례시간에 훈화하던 모습과 확성기를 통하여 카랑카랑하면서 우렁차게 들려오던 그 목소리를 멀리서 보고 들을 수 있었을 뿐이었다.

 

조만식은 일제하에서 평양을 본거지로 민족 운동을 전개하였기 때문에 나의 부친도 그를 존경하였고 그 이름 석 자는 어려서부터 들어서 익히 알고 있었다. 그는 물산 장려운동을 시작하였고 국산품 애용 운동에 선봉장이었다.

 

특이하게도 그는 제대로 지어진 두루마기가 아니라 요샛말로 하자면 하프코트같은 두루마기 아닌 두루마기를 입고 다녔다. 누군가가 그 어른을 뵙고 그 짧은 두루마기에 감동하여 저도 입으신 것과 같이 짧은 두루마기를 만들어 입겠습니다.”라고 했더니 조만식이 대뜸 너는 안 돼.”라고 했다는 일화를 아버님께서 말씀하신 적이 있다.

 

그를 한국의 간디라고 부르는 사람들이 많았다. 옷차림도 말투도 소박하였지만 두 눈에는 밝은 정기가 어리어 있었다고 한다. 그는 일본 유학생으로 명치대학을 마치고 남강 이승훈이 설립한 오산학교에서 교사로 일했고 교장의 자리에까지 올랐다. 해방되고 민족주의 진영의 인사들이 다 월남하였는데 선생님도 같이 떠나셔야죠."라고 누군가가 권했더니 다 떠나면 어떡해. 나라도 남아야지.”라고 하셨다고 한다. 


고려호텔에 오래 감금되어 있다가 6.25때 어디선가 총살되었다고 들었다.

그러나 조만식은 오늘도 우리 가슴 속에 애국자로 생생하게 살아 있다.



 

 No.

Title

Name

Date

Hit

2476

예술의 거리 몽마르트, 물랭루즈

이성순

2020.02.18

55

2475

구십이자술 3 (셋집 바꾸기를 열네 번)

김동길

2020.02.17

952

2474

하느님이 하시는 일은 무엇인가?(376)

정우철

2020.02.16

172

2473

425. 우리 손에 쥐어진 핸드폰, 과연 문명의 이기일까? 아니면 흉기일까?

인승일

2020.02.15

305

2472

신뢰와 자신감의 풍토를 조성하라

여상환

2020.02.14

179

2471

한 미술수집 집념의 열매

김형국

2020.02.13

1311

2470

세시음식歲時飮食을 즐기다

이성순

2020.02.11

680

2469

구십이자술 2

김동길

2020.02.10

825

2468

하느님이 하시는 일은 무엇인가?(375)

정우철

2020.02.09

318

2467

424. 난 케이크만 자르면 웬 놈팽이가 남편이 돼 있더라구.. - <주디 갈랜드>

인승일

2020.02.08

324

2466

꺼지지 않은 신바람 불씨관리

여상환

2020.02.07

126

2465

성취 현대사엔 역시 사람이

김형국

2020.02.06

1715

[이전] 1[2][3][4][5]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