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나가던 화가들은 왜 붓을 꺾었을까?

 

피하고 싶고 두려워해도 작가들에게는 ‘절필’의 순간이 온다. 

 

덕수궁 앞에는 “NO조국-시험치지 않습니다. 공부하지 않습니다. 학비내지 않습니다”라고 대형 현수막 아래서 사람들이 외치는 소리와 그 옆에는 수문장들의 교체행렬로 시끄럽고 소란하여 얼른 그곳을 피하고 싶다. 덕수궁 안으로 들어가니 ‘중화문’을 지나 ‘중화전’이 고고한 자태를 드러내고 멀리서 보이는 ‘석조전‘의 품격에서 평온을 찾는다. 

 

왕성한 활동을 할 나이 37세에 갑자기 닥친 기억상실증으로 35년간 그림을 그리지 못하다가  72세에 기적처럼 기억을 회복하자 하루 종일 붓을 놓지 않고 1년여의 노력 끝에 재기전을 계획했지만 다음 해 1979년에 워싱턴의 개인전을 준비하다 돌연 세상을 떠난 비운의 작가 백윤문의 작품을 똑바로 쳐다 볼 용기가 나지 않는다. 

 

‘근대미술가의 재발견1: 절필시대’전 (2019. 5.30~ 2019. 9.15)이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에서 열리고 있다. 전시는 우리 미술사에서 저평가된 근대기 화가들의 흔적과 기억을 모으고 재조명함으로써 근대미술사의 지평을 확장하기 위하여 마련된 전시다. ‘절필시대’는 누구보다 강한 집념으로 독자적인 예술성취를 이룬 화가들이 끝까지 예술 활동을 지속할 수 없었던 상황에 주목한다. 

 

이번 전시에 소개되는 화가 6명은 여성화가에 대한 편견(정찬영1906-1988 ), 채색화에 대한 오해(백윤문1906-1979), 정치 이데올르기의 대립(정종여1914-1984, 임군흥1912-1979), 다양한 예술에 대한 이해부족(이규상1918-1967, 정규1923-1971) 등 일제강점기, 해방기, 한국전쟁 시기, 전후 복구기로 이어지는 격동의 시대에 우리가 미처 살펴보지 못한 화가들을 재조명한다.

 

전시는 1. ‘근대미술가의 재발견 : 정찬영, 백윤문’, 2. ‘해방 공간의 순례자 : 정종여, 임군홍’, 3. ‘현대미술의 개척자 : 이규상, 정규’ 3부로 구성된다. 

 

1부는 조선미술전람회에서 채색 화조화와 채색 인물화로 두각을 나타낸 신세대 화가 정찬영과 백윤문을 소개한다. 정찬영은 조선미술전람회에서 채색 화조화와 채색 인물화로 두각을 나나낸 신세대화가였다. 그러나 생후 8개월 된 둘째 아들을 잃은 뒤 그 충격으로 절필한 뒤 화단에서 사라졌다. 백윤문은 사실적인 화풍의 풍속화와 전통적인 산수화와 인물화를 재해석하여 관심을 끌었으나, 돌연 병마로 쓰러진 뒤 활동을 중단했다.

 

2부는 월북화가 정종여와 임군홍 작품을 소개한다. 이들은 해방 후 1940년대 화단에서 왕성하게 활동했지만 월북 이후 한국미술사 연구에서 제외되었다. 정종여는 ‘한라에서 백두까지’ 전 국토를 화폭에 담고자 하였으나 분단으로 그 꿈을 이루지 못했다. 임군홍은 중국 한커우와 베이징을 오가며 자유로운 화풍의 풍경화를 남겼다. 또한 광고사를 운영하며 직접 그린 초기 광고디자인을 볼 수 있다. 

 

3부는 한국 현대미술의 개척자 이규상과 정규를 소개한다. 이들은 ‘모던아트협회’ 1세대로 불린다. 이규상은 일찌감치 기하학적 추상화를 선보인 전위적인 화가이지만 가난과 질병으로 40 대에 활동을 중단하고 만다. 정규는 모던하고 세련된 회화와 판화 작품으로 근대화단에서 독특한 위상을 차지하고, 후기에 몰두했던 세라믹 벽화로 현대공예 정립에 기여한 공예가이기도 하다. 

 

미술계의 끝나지 않을 것 같은 편견과 오해, 이해부족으로 21세기에는 절필하는 작가들이 없어지기를 바라며.

 

 

이 성 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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