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2 그리고 0:8

 

    문학평론가 유종호의 수필을 좋아하는 애독자가 많다 한다. 나도 그 한 사람이다. 빼어난 독서력 온축을 바탕으로 문학전문 영역 논의를 훨씬 넘어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사 이모저모를 짚고 있는 양이 애독자로 하여금 책 읽는 맛을 느끼게 해주기 때문이다. 신간그 이름은 안티고네: 유종호 에세이(현대문학, 2019)도 그래서 반갑게 만났다.

    거기 실린 에세이 제목 하나가 눈길을 끌었다. 다른 말없이 대뜸 “0:22”이다. 한쪽이 아주 일방으로 이기거나 지고만 야구 아니면 축구 경기스코어 같다는 인상을 먼저 받았다. 서둘러 읽었더니 노벨 학술상 수상에서 한국은 전무한데 일본은, 문학상이나 평화상 그리고 일본계 외국인 수상자를 뺀, 학술부문 수상자가 무려 스물두명이란 말이었다.

 

노벨상 기대로 스웨덴 발 뉴스에 촉각

    20세기 후반에 들어 특히 나라경제가 비약하자 우리 국민들 사이에서 국격(國格)을 따지는 발상법도 따라 생겨났고, 연장으로 노벨상 수상 기대가 열병 수준으로 뜨겁다. 해마다 수상자가 발표되는 시월이면 온통 스웨덴발 외신에 촉각을 세우는데, 잔뜩 부풀은 기대에 바람 빼듯 우리의 대일감정을 자극하기라도 하듯 거의 해매다 일본 학자들 수상 소식을 전한다.

    한국사회의 노벨상 기대는 오래다. 아직 낭보가 전해지지 않았지만 나는 머지않아 한국인 수상자가 날 거라 확신한다. 유학시절에 만났던 수재들이 기억나서, 호암상경암상청암상 등 우리 유력 시상(施賞)들이 노벨상 수상을 지원자극하는 성격으로 꾸려지고 있음에서 그리고 그 무엇보다 나라의 기초과학 지원정책을 엿보며 그런 믿음을 가졌다. 20세기 초 일본을 찾았던 외국인이 기초과학 연구 분위기가 없다고 걱정한 지 거의 반세기만인 1949년에 유카와 히데키(湯川秀樹)가 물리학상을 받았다는 “0:22” 수필의 지적사항도 내 유감(類感)에 힘이 되었다.

 

‘0:8’도 있다

    그런데 “0:22”에 이어 “0:8”은 또 다른 대일(對日) 열등감이다. 미국 하이얏 호텔 그룹이 만든 프리츠커(Pritzker) 건축상이 한국은 해당 없음이고 일본은 무려 여덟 명이다. 1979년 만들어진 이래 수상자는 모두 43, 이 가운데 아시아권은 중국과 인도 각 1명을 보태 모두 열 명이다.

    건축계 노벨상이란 높은 이름에 한국 건축가도 장차 오르도록 우리 정부가 손을 쓰려한다. 국토부가 올해 넥스트 프리츠커 프로젝트 사업을 마련한 것. 건축학과 갓 졸업자, 건축사 자격을 딴 지 3년 이내 청년건축사 등을 상대로 해외 유수 건축설계사무소 또는 연구기관에서 3개월 내지 1년을 연수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 했다. 말하자면 학문 쪽 국내박사들에게 외국에 나가서 박사후과정을 밟도록 후원함과 닮았다.

    이 나라 건축계도 무척 고대해 마지않던 프리츠커상이 주어지지 않자 그렇다면 세계를 겨냥한 큰 건축상을 우리도 만들어야 한다는 논의가 연전에 있었다. 기실, 그런 국제적 상으론 독일 건축가 미스반데로에(Mies van der Rohe) 이름을 딴 ‘EU 건축상등 아는 사람은 아는 좋은 건축상이 세계엔 여럿 있다.

    해도 프리츠커를 따르지 못한다. 미국은 구글, 한국은 네이버가 앞서거기 뒤서거니 했던 여느 포털을 압도해 버린 IT 생태계의 포털독점현상처럼 상금이 훨씬 많더라도 노벨상을 능가하지 못했는데 이 점에서 프리츠커상도 마찬가지이지 싶다.

 

수상엔 사회성 실현도 중요

    프리츠커를 흉내 낸 짝퉁상을 궁리하기보다, 엄청난 양의 건축이 이뤄졌던 고도성장 대한민국인데도 프리츠커를 받을만한 수상이 여태껏 나타나지 않았음을 심층으로 성찰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교수시절 연학(硏學)이 건축과도 인연이 많은 도시계획이었던지라 나도 짐작은 가는 바 있었다.

    프리츠커 재단이 밝힌 심사기준은 창의적 재능(talent), 안목(vision) 그리고 참여의식(commit ment)을 통해 인류애 신장과 건조 환경 발달에 기여한 경우라 밝혔다. 그렇다면 내 보기론 무엇보다 참여의식이 함축하는 사회성 또는 도덕성의 의미 있는 구현을 한국건축계가 보여주지 못했음도 그동안 수상과 거리를 멀게 만들지 않았을까. 2014년 수상 일본의 반 시게루(坂茂, 1957- ) 그리고 2016년 수상 칠레의 알레한드로 아라베나(Alejandro Aravena, 1967- )의 수상 이유에서 그런 게 느껴졌다. 전자는 대지진 이재민 수용 임시주택 제안, 후자는 빈민들의 자조주택 제안이 크게 평가받았다.

    견주어 급격한 도시화 탓에 1960년대 이후 특히 서울에 달동네가 난립했어도 우린 극빈층 주거형편을 건축학적으로 진지하게 고민하던 건축가는 단 한 사람도 없었다. 이는 달동네를 사회과학적으로 조금 공부했던 내가 확신을 갖고 말할 수 있는 대목이다(김형국, “철거민의 토굴살이”, 나남, 1989).

 

지금 포항 흥해엔

    주거 불편을 겪는 계층을 안타깝게 여기는 측은지심(惻隱之心) 없기는 우리 건축계가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라 싶다. 20171115, 규모 5.4 포항지진의 이재민 일부가 아직도 흥해실내체육관 임시 구호소에 머물고 있다. 그 주거형편으로 말하자면 들놀이 나가서 하루 정도 묵을 수 있는 1-2인용 텐트 속에서 버틴 게 벌써 두 해가 가깝다.

 

   

   

포항 지진이재민 수용

(조선일보, 2019.6.21일자)  

일본니가타 지진이재민 수용 

(Philip Jodidio, Shigeru Ban, 2016, p.70)

   견주어 20041023, 진도 6의 일본 니가타 지진으로 생겨난 이재민 수용소는 달랐다. 조립형 나무골조를 사방으로 둘러치고 거기에 종이 칸막이를 걸어 프라이버시가 보호되게 만들어주었다.

  두 사진 이미지를 비교하면 어떤 경우에 세계적인 건축상을 받는지 금방 짐작이 된다. 우리 건축계의 알만한 인사가 포항지진 이재민 수용소를 찾아 조언했다는 소식은 나는 아직 듣지 못했다. 해서 우리 국토부의 넥스트 프리츠커 프로젝트도 자금에 구애받지 않는 첨단 건축에 대한 배움 못지않게 미래의 건축가들이 가난이나 재난에 시달리는 사회적 필요의 현장에 대한 감각과 의식을 증진할 수 있는 쪽으로 진행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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