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발적인 신바람 운동, 3·1운동

 

1919년 3월 1일 오후 2시, 파고다 공원은 만세의 함성과 태극기의 물결로 가득 찼다.

“오등(吾等)은 자(玆)에 아 조선(我 朝鮮)의 독립국(獨立國)임과 조선인(朝鮮人)의 자주민(自主民)임을 선포하노라. 차로써 세계만방에 고하야 인류평등의 대의를 극명하며 차로써 자손만대에 고하야 민족자존의 정권을 영유케 하노라...”

감격에 떠는 목소리로 학생대표 정재용이 2천 6백여 자의 독립선언서 낭독을 마치자, 공원에 모인 수많은 사람들이 태극기를 흔들며 일제히 독립만세를 불렀다. 이 함성은 공원 일대를 뒤흔들며 서울 장안을 울렸고 전국 방방곡곡으로, 만주로, 하와이로, 세계로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그동안 억눌려 왔던 민족혼의 불꽃이 파고다 공원에서 점화되어 공원에서 거리로, 도시에서 농촌으로, 서울에서 지방으로, 국내에서 해외로 번져갔다.

우리 민족이 있는 곳이면 어느 곳이든지 뜨겁게 타올랐던 신바람 민족운동이었다. 종교, 계층, 남녀노소 구분 없이 전 민족적으로 일어난 이 운동은 우리 민족의 잠재된 독립의지, 강렬한 민족의식이 폭발적으로 나타났던 운동이었다. 북경의 어느 학생이 당시 조선인의 모습을 묘사한 것처럼 태극기를 든 오른팔을 일본 헌병이 칼로 베어 떨어뜨리자 왼손으로 태극기를 주워 다시 흔들며 독립만세를 외쳤고, 그 왼팔마저 베어버리자 만세를 부르며 머리를 헌병에게 부딪치며 죽는 광경은 독립이 아니면 죽음을 달라는 우리 민족의 독립에의 한 맺힌 의지를 보여 주는 것이었다.

3·1운동이 대대적인 전 민족적 운동으로 전개될 수 있었던 것은 여러 갈래의 독립운동의 흐름을 하나로 합쳐 민족 대연합전선을 형성할 수 있었고, 기존의 사회조직 즉 5일마다 열리는 정기 장시(場市) 및 기존의 학교, 종교조직들을 잘 활용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각각 서로 다른 곳에서 독립운동을 하고 있었던 여러 단체들이 기독교, 불교, 천도교라는 서로 다른 이념과 성격을 초월하여 ‘독립’이라는 민족 최고의 가치아래 힘을 합쳤기에 이런 대대적인 운동이 가능했던 것이다. 이런 단체들은 3·1운동을 기해 더욱 조직화되고 구체화된 독립운동을 전개하여 더욱 큰 힘을 갖춰 나가게 된다. 이 운동은 3월 1일에 시작되어 3월 중순경에는 전국 방방곡곡 어느 한 고을 빠짐없이 퍼져나갔고 국내뿐만 아니라 서간도, 북간도, 훈춘, 노령, 연해주 등지에서도 계속되었으며, 미국 지역 역시 ‘한인자유대회’를 연 후 태극기를 들고 시가행진을 하였다. 이에 일본은 중국군, 러시아군까지 동원하여 작두로 애국자들의 목을 잘라 거리에 전시하고 십자가 형틀을 만들어 놓고 시위자들을 형틀에 결박하여 사지에 못을 박아 학살하는 등 잔혹한 보복조치를 자행했다.

비록 독립의 목적은 당장 성취하지 못했지만 이로 인해 우리의 강력한 독립의지를 전 세계가 알게 되었고, 독립운동의 확고한 원동력이 형성됨으로써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수립되는 등 독립역량이 크게 강화되었다. 역사학자들은 3·1운동이 1910년부터 9년간 감행해 오던 일본의 무단정치와 민족 말살정책을 좀 더 유화된 문화정치로 전환시켰다는 점에서 역사적 의의를 찾고 있다. 또한 1차 세계대전 이후 승전 국가들의 지배하에 억눌려있던 식민지, 반식민지 약소민족이 분발하여 적극적으로 독립운동을 일으키는 계기를 열어주었고, 중국 5·4운동의 발발, 인도의 비폭력 독립운동의 고양 등에 큰 계기가 되었다는 세계사적 의의도 간과할 수 없다.

박은식 선생은 ‘우리 민족은 맨손으로 분기해서 붉은 피로써 독립을 구하여 세계 혁명사에 있어 하나의 신기원을 이루었다.’고 쓰고 있다.

‘조용한 아침의 나라’, ‘온순한 백의민족’이라 불리던 순박한 한민족에게서 죽음도 불사하는 무서운 의지가 어떻게 나왔을까? 칼로 베고 총을 쏘는 일본 헌병들에게 같은 무력으로 맞서지 않고 죽어가면서도 외침과 전진을 계속하는 모습은 ‘바지저고리’, ‘조센징’이라 부르며 우리를 멸시하는 일본인들에게 우리 민족이 결코 남의 지배를 받을 민족이 아니며 총칼 앞에 잠시 억눌려 있을 뿐이라는 것을 보여준 것이었다. 자랑스러웠던 우리 선조들의 빛나는 문화와 만주, 몽고 벌판을 호령하며 누비고 다니던 조상들을 생각하며 ‘스스로 다스릴 힘이 없는 민족이라 우리가 다스릴 수밖에 없다’고 말하는 일본인들의 오만을 더 이상 참을 수 없었을 것이다.

동족의 함성에 나라 사랑의 피가 요동치고 뺏긴 설움이 불처럼 일어나 꽃잎처럼 스러져간 사람들이 그 얼마인가? 박은식의 「대한독립운동지혈사」에는 2,023,098명이 참가하여 7,509명이 죽었으며 15,861명이 부상했고 46,948명이 체포되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보고되지 않은 숫자까지 감안한다면 실제로는 더욱 많은 사람이 희생당했을 것으로 보여 진다.

수많은 학생과 시민들, 농민들은 누구의 선동에 의해서가 아니라 지도자도 없이 스스로 자신이 주동자가 되어 식민지 백성으로서의 한과 독립에의 열망을 목숨 걸고 세계에 알렸던 것이다. 이는 우리 민족이 서로 마음이 통하고 보다 높은 가치를 향해 뜻을 모을 때 얼마나 큰 신바람의 위력을 분출할 수 있는가를 보여준 또 하나의 역사적 사실이다. 또한 자신의 이익도 안위도 돌보지 않고 목숨마저도 아끼지 않고 민족자존의 대의를 위해 자신의 모든 소아적인 것을 내던지는 우리 민족의 고유의 특성을 보여준 것이다.

 

여상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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