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입 과열에서 학계 먹칠까지

 

    1980년대 말, 한 해가 저물 무렵 과세(過歲) 인사차 원주로 박경리를 찾았다. 오후 5시 뉴스를 보던 소설가는 내 현신을 보자 TV를 껐다. 내방객을 맞아 끄는 줄 알았다. 그 순간 혼자 넋두리처럼 대학입시 뉴스만 나오면 울화가 치밀어 꺼버린다했다. 한숨 소리가 길게 내뿜는 담배 연기에 묻어났다.

    한참 나중에 딸로부터 들은 바이지만, 그 입시철의 수능시험에 당신 외손자가 시간에 맞추어 나가지 못했던 것. 외손자는, 1980년 이전 소설가의 정릉시절을 증언하던 사진이 말해주듯, 당신 딸이 남편 김지하 시인 옥바라지하는 사이로 포대기로 등에 업고 키운 혈손이었다. 내가 원주를 찾을 때면, 그리고 손자를 이야기할 때면 원색적 연민이 뚝뚝 묻어났던 소설가에게 손자의 대입 차질은 더없는 안타까움이었다.

 

눈치작전 대입

    바로 그 즈음 서울대 김종운 부총장이 갑자기 사표를 냈다. 보직 자리를 떠남이 딸 대입에 당신 교직이 아무런 도움이 못됐다는 자괴감 때문이었다고 소문났다. 공직의 엄정 수행이 가정의 최대 염원을 배반하고 말았다며 동료교수들의 동병상련을 불러일으킨 작은 파문이었다.

    1982-93년 사이 대학입시는 학력고사 성적이 결정적이었다. 그걸 갖고 수험생이 대학과 학과를 지망하는데, 지망학과에 수험생이 적게 몰리면 그만큼 합격찬스가 높아질 개연성을 노린 눈치작전이 횡행하던 시절이었다. 그래서 오후 5시 정시 뉴스시간이면 6시 마감 직전의 서울대 학과별 응모자수를 중요 소식으로 전했는데, 박경리가 꺼버렸던 방송이 바로 그 뉴스였다. 과연 학과별 지원율을 미리 안다면 그건 대입 합격의 지름길일 수 있었다.

    그때 서울대 체제는 마감 전후로 수험생의 학과별 지원율을 정확히 아는 자리는 부총장 오직 한 사람이었다. 마침 부총장 딸이 서울대 영문학과에 가려다 수능점수에 따라 경쟁이 좀 덜하다는 언어학과로 낮추어 응모했다. 막상 응모 마감시간이 다가오자 영문학과보다 오히려 언어학과로 몰리는 상황인데도 딸에게 영문학과로 바꾸어 적어라는 말은 못했다. 결과는 낙방이었다.

    기실, 연습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 부모노릇에서 특히 자식교육은 세월이 흘러버리면 돌이키기 어려운 난제가 되기 일쑤다. 해서 부모가 할 수 있는 노릇이라면 고액 과외 등 총력투자를 주저하지 않는다. 안전 등의 목표를 극상(極上)으로 확보하려할 때 가외성(加外性, redundancy)법칙을 적용하는 것이 세상 이치인 바, 원전(原電)의 돌발사고 방지나 항공기의 안전착륙을 위해 이론상의 필요조치에 그치지 않고 가외로 덮개를 더 씨우고, 여분 장치를 더 보태서 만전에 만전을 기하려는 조치와 닮았다.

 

의대 가기 가외성 쌓기

    이번 법무장관 임명 청문회를 앞둔 조 모의 딸 진학행각도 바로 스펙의 가외성 쌓기의 한 전형을 보여준다. 단국대 인턴, 고려대서울대 환경대학원 입학을 거치는 과정이, 그게 그 교수의 말대로 합법인지 몰라도, 도덕성의 일탈로는 경지에 갔다. 무엇보다 고교 1년생의 그 짧은 인턴과정 끝에 의학계의 이른바 학술논문에 저자로 등재되는데, 그것도 1저자에 올랐다. 이는 한마디로 충격적인 비보(悲報)”라며 피부의학의 세계적 교과서에 연구가 인용된 가천대 전 총장 이성낙(“고교생이 노벨상 수상자가 된다면,”바른소리 쓴소리, 2019.8.26)이 개탄했다. 그 근거로 제 1저자의 무게를 제시했다.

 

글로벌 연구 프로젝트를 계획하고 추진한 주역에게는 바로 명예로운 1 저자라는 무거운 책임과 함께 명예의 왕관을 씌워줍니다. 요컨대 제1 저자는 아무나 하는 게 아니라는 뜻입니다...오늘날 우리 생활 용어 속에 깊숙이 자리 잡은 DNA이중 나선 구조1953년 학술지네이처(Nature)에 처음 발표한 연구자의 이름은 제임스 왓슨과 프랜시스 크릭입니다. 두 연구자는 그 공로로 1962년 노벨 의학·생리상을 수상했습니다. 그런데 DNA 하면 왓슨이 떠오르지 구태여 크릭까지 거명하는 경우는 흔치 않습니다. 그래서 2 저자의 비애라는 말이 생기기도 했습니다.

 

    인턴 고교생을 제 1 저자로 앞세운 단국대 교수는 몇 번째 공저자인가. 무엇에 씌어서인지는 몰라도 이런 망령된 작태에 이른 것은 학술 논문의 가치에 대해선 전혀 무신경한, 그러니까 허깨비 교수라는 말이다

    게다가 이를 조 모나 그 가족이 몰랐다는 사실은 정말 말이 안 된다. 의대 진학을 위해 중간 디딤돌이 되고 말았던 서울대 환경대학원의 원장도 페이스북에다 평소 조 후보자가 밖에서 한 주장과 안에서의 행동 사이에 괴리가 너무 커 보여 마음이 몹시 불편하다"고 일갈했다. 이래저래 우리나라 고등교육에 흙탕물을 흩뿌린 전대미문의 흉사가 되고 말았다.

 

주홍글씨 주인공이 되고만 보결생

    조 모의 딸은 장차 어떤 처지로 살아갈까. 짐작할만한 전례가 있다. 1960년대 중반까지였든가 서울대 교수 자제들은 해당 교수가 청하는 경우 아주 간헐적으로 보결 입학이 있었다. 그런데 동기생들 모두는 그가 보결생인줄 알았고, 대학직원 중에도 그걸 기억하는 이가 어디엔가 남아있었다. 법대 소속이니 더 잘 알겠지만, 작년 이맘때 미국 연방대법관 지명자 브렛 캐버노가 청문과정에서 개망신을 당하던 사안도 고교시절에 충동적 행동을 당했다는 여학생의 잠재 기억의 돌출이었다. 기어코 대법관은 되었지만 그의 사법적 판단은 장차 그리고 언제나 그 웃음거리와 함께 인용될 것이다.

    실제 사례로 어찌어찌해서 보결생이 서울대 교수까지 되었다. 하지만 두고두고 교직원들의 뒷말을 들었고 여파로 승진 등에서 뒤처지는 불이익을 안고 지냈다. 퇴직 때까지 보결입학 전력이 옛적 전과자 얼굴에 먹물을 들이던 자자형(刺字刑)이요 미국식으로 말하면 주홍글씨가 되어 있었다.

    그런 점에서, 신입생 선발을 대학이 직접 주관하던 시절 이야기이겠는데, 18년 재임의 이화여대 김옥길 총장은 입시철이면 교직원의 정체성 고양을 위해 몰래 그 자제들의 응시를 파악한 뒤 가급적 입학을 시켰단다. 이 일의 절대 비밀을 위해 총장이 직접 주관한 까닭에 해당 교직원도 슬하 입시생도 그런 배려의 뒤끝인 줄은 전혀 몰랐다는 것. 당신 타계 30년이 가까워지자 한두 마디 새나온, 남달리 현철했던 대학리더십의 숨은 일화였다.

    부총장에서 물러난 김 교수는 외국유학길에 오른 딸을 따라 교수연가를 갔다. 그리고 1991, 서울대 총장을 직선제로 선출하게 되자 그 첫 총장으로 뽑혔다. 그 사이 서울대 입학의 치열함 덕분에 보결생 제도는 아주 진작 없어졌다. 그리고 결원보충의 전입에서도 의과대학 사례로 한 교수가 농대에 갓 들어간 아들을 의대로 전입시키려하자 동서 사이인 동료교수가 같은 조건이면 혈족을 배제하던 전통시대의 상피(相避)원칙을 거론했음인지 무산되고 말았다는 소문이 교내에 퍼진 적 있었다.

    그래도 자제의 응시 때 서울대 교수들이 캠퍼스에서 누리는 혜택은 있었다. 사정(査定)이 끝난 입시서류가 봉인되는 저녁 6시 이후, 다음날 아침 9시 공식 발표에 앞서, 미리 청한 경우에 한해 합격 여부를 대학행정직원이 전화로 알려줌 단 하나였다.

    장관 자리로 나갈 것이란 소문이 파다한 채로 청와대에서 물러난 조 모는 일단 서울대 교수로 복직했다. 한때 서울대 한 기관의 장 노릇을 해본 내 경험으로 사표 대신에 다시 휴직한 채로 장관 자리에 간다면 해당 대학의 운영은 이빨 빠진 채로 음식을 씹는차질을 또 다시 겪을 것이다.

 

김형국, 전 서울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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