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국호국의 정열, 화랑도 정신

 

젊은이들이 그 나라의 장래를 결정짓는다는 말에 이론(異論)은 없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통일 전 신라의 화랑도는 신라의 장래를 비춰주는 거울이라고 할 수 있었다. 화랑도는 삼한사회의 비중앙집권적 정치, 사회구조 하에서 자연발생적으로 형성되어 미성년집회, 청년조직으로 발달되면서 진흥왕 때 호국과 국가중흥이라는 대의명분 아래 국가 공공단체로 성장한 것으로 보인다. 김대문의 ‘화랑세기’에 나오는 현좌충신(賢佐忠臣)이 여기서 나오고, 양장용졸(良將勇卒)이 이로부터 생겨난다는 말은 화랑도가 신라의 융성과 삼국통일의 원동력이 된 인물들을 많이 배출해낸 인재양성의 요람이었음을 나타내주고 있다. 어떠한 사상이었기에 젊은이들이 구국, 애국의 신념으로 하나같이 강하게 뭉칠 수 있었을까?

“우리나라에 현묘(玄妙)한 도(道)가 있다. 이를 풍류(風流)라 하는데 이 교(敎)를 설치한 근원은 선사(仙史)에 자세히 실려 있거니와 실로 이는 삼교(三敎)를 포함한 것으로 모든 민중과 접촉하여 이를 교화(敎化)하였다.”

이는 최치원의 난랑비(鸞郞碑) 서문에 있는 내용으로 화랑도가 유(儒), 불(佛), 선(仙)의 3교, 즉 효(孝)와 충(忠)의 유교(儒敎), 무위(無爲)의 일을 하고 불언(不言)의 가르침을 행하는 불교(佛敎), 선행을 하는 선(仙)을 포함하고 있는 것으로 이는 조화와 통일을 추구하는 우리 고유의 민족사상의 원형이었다. 최남선은 화랑을 ‘부르’교단이라 하여 상고 조선시대의 고유 신앙인 밝의 뉘(光明世界)에서 찾았고, 신채호와 안호상 박사도 소도제단의 무사 또는 단군한배검에서 그 유래를 찾고 있다.

화랑도는 이와 같이 단군정신의 에토스(Etos), 즉 민족혼의 제도적 표현이었다. 칼을 잡고 수련을 쌓되 거울을 들고 세속오계와 삼미(三美)에 입각한 자기성찰을 잊지 않았다. 그런가 하면 방울을 흔들면서 춤을 추었지만 결코 하늘의 도리를 잊지 않았다. 칼과 거울과 방울이라는 단군정신의 상징인 삼부인의 정신을 명산대천을 주유(周遊)하며 자신의 인격화, 내면화 하는 것이 화랑도의 교육내용이었다.

다시 말하면 삼부인이야말로 문무겸전(文武兼全)하는 인간을 만들었고 하늘과 땅과 하나가 될 수 있는 조화로운 인간을 육성했으며, 소아를 버리고 대아를 쫓는 ‘한’사상의 윤리적 귀감이 되었다. 이러한 화랑도 정신이 삼국을 통일하게 한 원동력이었다.

화랑도 교육에서 우리는 흔히 살아있는 ‘전인교육’의 원형을 대한다. 즉 이성적인 도덕성(홍익인간)과 감성적인 논리(제천의식)를 조화시킨 전형적인 전인교육이었다. 도와 의로서 이성을 도야하는(相磨以道義) 것은 지(知)적 수양이고, 시가와 음악을 즐기는(相悅以歌樂) 것은 정(情)적인 수양이며, 명산대천을 두루 찾아 심신을 단련시켰으니 (遊娛以山水 無遠不至) 이것은 신체적 수양이다. 이것은 화랑들의 도의성과 유희성의 이상적인 조화를 말하며, 따라서 노래와 춤은 반드시 절제와 규율이란 도덕성의 울타리를 벗어나지 않았던 것이다.

가무는 마음을 닦아 모두를 동화시켰고, 도덕은 몸을 닦아 서로를 구별 짓게 했다. 이것을 현대용어로 빌려 말하자면 전인교육의 표본인 지, 정, 의인 것이다. 따라서 화랑도는 거칠고 야만적인 일본 무사도가 아니며 인문일변도적인 서구의 기사도도 아니다. 내적인 인격수양과 외적인 상무정신이 하나로 조화되어 완숙한 인격체를 형성했던 것이다.

전쟁에 나아가 임전무퇴의 '관창'이 되었고, 평상시에는 만백성의 귀감이 된 ‘사다함’이 될 수 있었던 것이다. 바로 이와 같은 화랑도가 우리 민족의 조직으로서의 ‘혼’이었다. 따라서 화랑도 정신은 문무(文武) 어느 방면에서나 진충보국(盡忠報國)을 생명으로 여겼다. 그것은 나라가 곧 나요, 내가 곧 나라가 될 수 있다는 일체의식 즉 ‘한’사상으로 이념화 했었다.

신라의 화랑은 무당같이 타의적으로 신내림을 받는 것이 아니라 오랜 자신의 수련을 통해 스스로 내면에서 신을 일구었다. 김상일 교수는 이를 무(巫)적인 신바람이 아니고 선(仙)적인 신바람이라 했다. 무적인 신바람은 주술적이고 감성에 치우칠 위험이 있으나 선적인 신바람은 이성과 감성, 즉 로고스와 파토스가 잘 조화된 신바람이다. 우리 역사 속에는 이런 자생적인 신바람이 몇 번 일어나곤 했다. 그때마다 국운이 융성하였으나 그 신바람이 죽을 때는 국운이 기울었다. 화랑도 정신도 조화와 균형을 잃게 되면 불가사의한 신통력을 지녔던 민족에너지를 집약할 수 없게 된다. 삼국통일 후 신라는 문약(文弱)에 흐르면서 상무정신이 약화되었고, 끝내 멸망의 길을 걷게 된다. 반면에 고구려의 기상은 외향적인 상무정신으로 너무 치우쳤기 때문에 균형을 잃은 채 국운이 다한다. 통일 한국을 눈앞에 두고 있는 지금 옛날 신라시대의 국선들이 불러 일으켰던 애국호국의 화랑도 정신을 재현시킬 필요를 절실히 느낀다.

 

여상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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