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의 고대판 이스라엘 전쟁

 

위기를 맞았을 때 전민족의 역량을 한 곳으로 모아 얼마나 큰 힘을 발휘할 수 있는가에 따라 강한 민족이 될 수도 있고 약한 민족이 될 수도 있다.

지난 1971년에 발발한 중동전에서 대조적인 현상을 볼 수 있었다. 전쟁이 일어나자, 국민의 존경을 받아야 할 사우디 왕족들은 외국에 도피하여 국내 사정에는 아랑곳 없이 돈을 물 쓰듯 펑펑 쓰면서 개인의 사생활을 즐기는데 반해, 이스라엘 국민들은 나라가 위기에 처하자 외국에서 그동안 소중히 모았던 재산을 정리하고 하나하나 입국하여 전선으로 달려갔다.

이스라엘 국민들의 마음속에 어떤 정신이 살아 숨쉬기에 2000년 동안의 나라 없는 설움을 딛고 당당히 아랍의 한복판에 나라를 세우고 국가가 위기에 처할 때마다 조직적인 큰 힘을 발휘할 수 있었던 것인가? 그들 민족의 힘은 철저히 몸에 밴 애국애족의 정신이며 거기에서 나오는 단결력이다. 그들은 위기에 처했을 때 이스라엘 특유의 민족혼으로 땅덩어리가 크고 인구가 많은 아랍권에 조금도 굴하지 않고 싸워 이길 수 있었다. 단결의 위력을 발휘할 줄 아는 강한 민족이다.

우리도 이스라엘 민족만큼이나 애국애족 정신이 강한 민족이다. 우리나라가 민족혼이 발현되어 하나의 큰 힘으로 응집됐던 예는 수, 당의 침입을 막아낸 고구려에서 찾아 볼 수 있다. 당시 수나라는 양자강 이남의 진나라를 멸망시키고 강력한 중앙집권적 봉건 전제국가를 세웠다. 수나라 왕은 자신을 천하의 최고 통치자로 자처하면서 주위의 여러 나라를 통합하였다. 그 침략의 마수는 점차 고구려에까지 뻗쳐왔다. 2차 침공(612년)때는 전국에서 모은 군인수가 무려 113만 3800여명이 되었으며, 이밖에 후방공급을 맡은 인원이 전투 인원의 곱으로 총인원은 무려 300만명을 헤아릴 정도였다. 더구나 당시 현대적 무기라 할 수 있는 성벽파괴용 무기인 당차나 큰 돌을 날릴 수 있는 포차도 갖고 있었다. 그러나 고구려는 십분의 일도 안 되는 인원으로 오직 칼과 창으로 맞서야 했다. 핵무기를 갖춘 이스라엘처럼 적들이 공포감을 느낄 정도의 현대적 무기를 갖춘 것이 아니었다.

한번 지배당하면 다시 힘을 키워 그 지배국의 손아귀에서 벗어나기는 그리 쉽지 않은 시대인지라 고구려인들에게 이 전쟁은 처절한 국가존망의 싸움이었을 것이다. 선대부터 광활한 영토를 지배해 온 고구려에 있어 국력의 상징인 땅을 잃는다는 것은 뼈아픈 고통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다행히도 그들에게는 믿고 따를 수 있는 명장 을지문덕이 있었고, 1차 침공을 승리로 이끈 자신감과 사기는 어느 군대 못지않았으며 위기 앞에서 개인의 힘을 조직의 큰 힘으로 모아지는 특유의 신바람 민족혼이 흐르고 있었다.

침공이 시작되자 을지문덕은 적과 담판을 하기 위해 적군의 진중을 서슴지 않고 찾아 갔다. 뜻대로 되지 않아 돌아왔지만 을지문덕의 적황 파악은 어느 정도 끝난 상태였다. 적군은 오랫동안 멀리서 행군해 왔기 때문에 식량이 떨어지고 군사들의 사기가 상당히 저하된 상태였다. 을지문덕 장군은 전략적으로나 수적으로 약세를 가진 군대가 이길 수 있는 독특한 청야수성술(淸野守城術)을 사용하였다. 후퇴하면서 들판을 깨끗이 비워 적군이나 말의 먹이를 모두 없애버리는 전술이다. 역시 수나라 군사들은 추위와 굶주림에 지쳐 사기는 갈수록 저하되었다. 나폴레옹이 러시아를 침공했을 때 러시아가 사용한 전술도 이 을지문덕 장군의 전술을 원용한 것이었다.

불리한 아군의 전력을 유리하게 반전시킨 또 하나의 예를 을지문덕 장군이 적장 우중문에게 보낸 한편의 시에서 찾아볼 수 있다.

“슬기로운 전술은 천문을 꿰뚫고 묘한 전략은 지리를 통달하였다. 전쟁에서 승리한 공이 이미 높으니 만족함을 알았거든 이제 그만함이 어떠한가.”

적에 대한 신랄한 야유인 동시에 궁지에 빠진 적에게 퇴각할 구실을 마련해 줌으로써 다음에 벌일 고구려군의 군사작전을 준비하는 전술책이기도 했다. 전쟁은 반드시 칼로만 이기는 것이 아니다. 한 편의 시가 몇 만의 군사보다 값질 수 있다. 결국 을지문덕 장군의 기묘하고 대담한 전략과 국민들의 불타는 결의가 살수대첩의 승리를 낳았다.

고구려는 당태종이 침략했을 때 또 한 번의 시련을 겪어야 했다. 당태종은 포차와 충차(성벽 파괴용)를 동원하여 안시성을 포위했기 때문에 안시성 군민들은 진퇴양난에 빠져 있었다. 더구나 안시성은 적의 손에 넘어갈 경우 나라 전체가 위협받게 되는 전략요충지였다. 그러나 한 치의 땅도 양보하지 않겠다는 결연한 의지와 사명감으로 안시성 군민들의 사기는 떨어질 줄 모르고 갈수록 높아만 갔기 때문에 안시성을 함락시키기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적군은 포차와 충차만으로 견고한 성을 공격하기 어렵다는 것을 알고 안시성보다 높은 흙산을 쌓기 시작했다. 군사 50만명을 이용하여 60일 동안 안시성보다 두 길이나 더 높은 흙산을 쌓고 공격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안시성 군민들은 굴하지 않고 양만춘 장군을 선두로 결사항전을 벌였다. 북을 치면서 함성을 지르고 견결한 투지와 불타는 적개심으로 적에 대한 끊임없는 증오와 멸시를 나타내었다. 끝까지 싸울 결의에 충만한 터라 당나라 수백만의 군대도 그들을 당하지 못했다. 하루에도 흙산 쌓기는 수 십 번, 치열한 전투도 하루 수차례 계속되었다. 적들의 발악이 심해질수록 안시성 군민들은 더욱 완강하게 버티었다. 결국 당나라는 수많은 사상자만 내었을 뿐 안시성을 함락시키지 못했다.

국민의 마음속에 해야겠다는 굳은 결의가 있고 이를 바탕으로 강한 조직력이 발휘될 수만 있다면 아무리 강한 적이라도 충분히 물리칠 수 있다는 좋은 역사적 교훈이다. 고구려인들의 나라를 지키겠다는 강한 민족 주체의식에 총화와 단결이 있었기에 300만이나 되는 적군을 단지 몇 만의 군사로도 능히 대적할 수 있었으며, 일곱여 차례나 되는 침략도 거뜬히 막아낼 수 있었던 것이다. 그야말로 신바람난 항전이고 승전이었다.

위기시의 국민총화와 단결력! 이것은 예나 지금이나 강한 민족과 약한 민족을 구분 짓는 하나의 기준이 되고 있다.


여상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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