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그릇 만들기

 

한 사람이 지니고 있는 도량이나 능력 등을 종종 그릇에 비유한다. 그래서 사람을 평가할 때 그릇이 크다느니, 혹은 작다느니 하는 말을 쓴다.

물건을 그릇에 담을 때는 담을 것이 많으면 큰 그릇에 담아야지 작은 그릇에 많은 것을 담으면 넘치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사람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그릇이 작고 역량이 부족한 사람은 요행히 큰 재물을 모은다손 치더라도 얼마 못가서 모조리 탕진해버리거나 그 재물로 오히려 자신을 다치게 한다. 또 많은 부를 축적하고 유지해 나가는 사람을 보면 그 나름대로의 철학과 사상, 기량을 갖춤으로써 자신의 내부에 그러한 부를 담을 그릇을 지니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사회발전을 설명할 때도 이 논리는 그대로 적용된다. 우리는 한 민족이나 국가가 발전을 해나가다가 어느 시점에서 발전의 궤도에서 일탈, 나락으로 빠져드는 걸 볼 수 있다. 그러한 원인이 과연 무엇이었는지는 논의의 여지가 있겠으나,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그런 나라는 발전을 통해 얻을 수 있었던 성과를 담을 수 있을만한 그릇을 갖추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 그릇은 바로 사회의 지도철학과 지도자의 경륜, 사회 구성원의 정신과 가치관, 구성원 모두가 공유하는 미래에 대한 비전 등의 총체적 집합이라 할 수 있다. 이 그릇의 크기가 그 국가와 민족의 지속적인 발전을 가능케 하는 것이다.

 

예전 우리는 ‘아시아의 네 마리 용’ 중에서도 가장 현저한 성장을 보이는 가능성의 나라로서 세계인의 칭송을 한 몸에 받았었다. 그들은 우리의 성공을 ‘한강의 기적’이라 부르는데 주저하지 않았으며, 침이 마르도록 칭찬하는데 인색하지 않았었다. 그러나 얼마지 않아 샴페인을 너무 일찍 터트린 나라로 모멸의 손가락질을 받으며 승천하지 못하고 떨어져버린 이무기의 꼴이 되어 버렸었다. 왜 그런가? 그 까닭은 바로 우리가 그러한 발전을 수용해낼 그릇을 준비하지 못한 까닭이다. 사회의 지도 이념이 없으니 사회는 흔들리고, 사람들은 다소 풍요해진 물질의 노예가 되었다. 가치관이 전도되는 역현상이 빚어져 뜻 있는 사람들은 개탄을 금치 못했다.

오늘날 우리는 세계경제의 블록화와 함께 높아져 가는 무역장벽 등 대외의 위협요소들을 우리가 겪고 있는 어려움의 빌미로 삼으려 하지만, 그보다 더 근원적인 곳에는 바로 그 ‘그릇의 크기’라는 문제점이 도사리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새로운 지도이념과 철학, 민족적 비전으로 채색된 커다란 그릇을 마련할 필요가 절실함을 느낀다.

이러한 우리나라의 상황에 주어진 4반세기에 걸친 제철(製鐵) 대역사를 성공적으로 완성하고, 세계 철강사에 길이 남을 또 하나의 이정표를 세운 우리의 성공은 어떠한 의미를 갖는 것일까?

일찍이 제철산업의 중요성에 눈을 뜬 많은 개발도상국들은 각자 나름대로의 의욕으로 이 거대한 사업에 도전했었다. 그러나 우리 포항제철을 제외하고는 이렇다 할 성과를 거둔 예를 찾아볼 수 없다. 그렇다면 왜 유독 우리만이 이러한 성공을 거둘 수 있었을까? 그 이유도 역시 지금까지 이야기 해 온 그릇의 논리에서 찾을 수 있다.

KISA의 집행책임을 맡았던 코퍼스 사의 이컨(Eakin)부사장이 우리 회사를 위한 조언으로, 필리핀과 한국은 다 같이 식민지의 고통을 겪었지만 해방 후 사뭇 다른 양상을 보인다고 했었다. 필리핀은 식민지 지배를 받으면서도 각 계층별 간부를 키울 수 있었으나 한국은 일제의 혹독한 식민통치 탓에 계층별 간부를 길러내지 못했다고 했다. 따라서 포항제철은 앞으로 기술자의 양성과 훈련도 중요하지만 간부의 양성에 보다 신경을 써야 할 것이라고 충고했다. 그것은 지난 세월동안 한결같이 나의 귀 언저리를 맴도는 화두(話頭)로서 우리 회사 발전의 기본방향을 제시하는 이정표가 되고 있다. 이렇듯 사명감에 불타는 각 계층별 간부의 양성은 우리의 그릇을 형성하는데 큰 영향을 미쳤다.

한번은 UPI의 노조책임자들을 인솔하여 광양제철소를 방문했을 때의 일이다. 초등학교 교실을 돌아보던 중 노조책임자 한 명이 몇몇 학생의 이름표를 보고는 이들 학부모가 누군지 확인해 달라고 하였다. 의아하게 생각하여 확인해본 결과 그들은 모두 생산직 사원의 자녀들이었다. 이 사실에 접한 그 노조책임자는 내 손을 꼭 잡으며 ‘이제 포항제철의 진실성을 믿겠다. 그리고 이들이 자라나 떠받치게 될 20년 후의 포항제철이 두렵기까지 하다’고 말하고, 자신들에게도 보다 높은 수준의 교육프로그램을 도입해 달라며 협력을 약속했었다. 이렇듯 우리는 회사 창립과 함께 인재의 양성에 혼신의 힘을 기울여 왔다. 교육을 생명처럼 중요시한 최고경영자의 지론에 입각해서 우리는 공장 건설에 앞서 연수원을 건설한 신화를 가지고 있으며, 이제는 세계가 부러워하는 교육 유토피아를 건설해 놓았다. 이 교육이야말로 우리가 준비할 그릇임에 다름이 없다.

그러나 이에 앞서 이 모든 것을 가능케 한 것은 바로 최고경영자의 원대한 경륜에서 나온 숭고한 철학과 해내고야 말겠다는 불굴의 정신, 그리고 어떠한 외부의 압력에도 굴하지 않고 견지해온 제철보국의 신념이었다.

제철 대역사의 완성은 우리에게 또 다른 도약을 요구하고 있다. 그것은 보다 큰, 보다 많은 결실을 넘침 없이 수용해 낼 수 있는 그릇의 마련을 전제로 한다. 우리가 성취한 발전의 잠재력이 무엇이었던가를 다시 한 번 곰곰이 생각해보고, 최고 경영자의 철학과 경륜과 신념을 형상화하는 한편 새로운 도약에 걸 맞는 중추적인 인재 양성에 주력함으로써 다가오는 미래를 대처할 수 있는 큰 그릇을 준비해야겠다.

이제 우리는 제철 대역사의 완성과 함께 다시 한 번 특유의 역량을 발휘, 우리 자신의 발전을 물론이고 우리 사회 전체의 역량을 성숙시키는데 이바지해 나가야 하겠다.


여상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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