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 창립, 몇 명으로 하나?

 

나는 젊은 시절에 통역장교로 군 생활을 필한 뒤 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에 복학하여 공부하고, 국무총리 기획조정실 서울시 담당으로 인턴수업을 하면서 밤에는 명지대학에서 발전행정을 강의하고 있었다.

어느 날 은사이신 이한빈 선생께서 불러서 갔더니 ‘우리나라에도 포항제철이 창설되는데 철은 산업의 쌀이다. 총리실에 근무하는 것도 뜻이 있겠으나 새 역사가 창조되고 이 나라 산업이 요동을 치는 한 복판에서 역사의 변곡점을 몸으로 맞아 보는 것이 좋을 듯한데, 가서 박태준 장군을 만나 뵙도록 하라.’는 권면을 들었다. 특히 박태준 사장과는 국방대학원 창설멤버로 깊은 존경과 신뢰를 갖는 분인 만큼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것이 좋을 듯하다는 말씀이 있었고, 또한 당시 평가교수단 멤버로 활동하시던 윤동석 박사(서울공대 금속과 주임교수. 후일 포스코 부사장 역임)의 권면에 따라 박태준 사장을 찾아뵙게 되었다.

박태준사장은 아무 말씀 없이 내 얼굴만 바라보다가 이윽고 “함께 수고 좀 하지.” 라고 말씀한 것이 전부다.

포항에 내려가서 처음 만난 사람이 황경로 부장이었다. 조직 창설 초기라 황경로 부장 밑에 나 혼자 실무를 담당하는 꼴이었다. 이윽고 회사의 설립과 더불어 사장실 조사역을 거쳐 관리제도과장으로서 황경로 부장 산하에서 오랜 세월 일하는 인연을 맺게 되었다. 많은 대소사가 있었으나 다 일일이 기록할 수는 없고, 꼭 남겼으면 하는 일화를 한 가지 소개하고자 한다.

 

그것은 포스코의 정원 확정에 관련된 전후사이다.

어느 날인가 사장께 경영에 관련된 보고를 드리고 끝날 때 쯤 해서 무심결에 사장이 한 말씀 하던 것이 기억된다.

“도대체 백만 톤 제철소를 하자면 내가 몇 명의 인력을 데리고 해야 하는가? 제철소를 본 사람이라고는 우리나라에서 나하고 윤동석 박사 두 사람인데 이걸 어쩐다.” 혼잣말로 무심결에 말씀하셨다.

그 당시에는 우리나라를 통틀어서 제철소의 실물을 본 사람이 박태준회장(당시 사장)과 윤동석 박사 두 분 뿐이었다. 흘러가는 얘기처럼 말씀한 가운데 나는 굉장한 충격을 받았다. 내가 바로 해내어야 할 일 아닌가? 회사에 있는 서양 고문단에게 물어보았다. 대략 백만 톤 규모의 제철소에 어느 정도 사람이 필요할지. 그 사람들의 대답은 ‘정확한 것은 모르겠으나 아마도 1만 4천 내지는 1만 5천명은 가져야 하지 않을까 추론된다.’고 대답하는 것이 아닌가. 일본 기술 자문단에게도 같은 질문을 해 보았다. 이들의 답변은 ‘아마도 9천 내지는 만 명은 최소 가져야 할 것이다.’ 하도 답답하여 ‘그러면 그 판단 근거가 있을 것 아닌가? 그 자료를 볼 수 있겠나?’ 하고 물었으나 그에 대한 답변은 한결 같았다. ‘거기에 대한 구체적인 자료나 설명내용은 없을 것이다. 이것은 오랜 경험과 경륜에 의한 판단의 결과로 생각해 보면 틀림없다.’고 말하는 것이 아닌가.

과연 그럴까? 의문을 가진 채로 제철소의 직무내용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각각 직급이 다를 것이고. 예를 들어서 청소를 하는데 필요한 인력이라면 충직하고, 근육질이고, 불평불만 없고 꾸준하게 자기의 업무를 다하는 성실한 사람이면 족할 것이지 여기에 고등교육이나 박사학위가 필요한 것은 결코 아닐 것이다. 마찬가지로 제철소의 직무유형은 어떻게 형성되었으며, 그 내용은 무엇이고, 직무수행에 필요한 인력의 규모는 자질과 경력과 능력은 각각 어때야 할지, 이것을 미리 확정하기 전에는 성공적인 제철소 운영은 연목구어(緣木求魚)일 것이라는 결론을 얻었다.

 

마침 일본연수 기회가 있어서 야하다 제철소를 방문한 적이 있다. 그때 야하다 제철소의 전무이사가 동경대학 법문학부 출신으로 강도관 유도4단의 무도인이었다. 마침 내가 같은 분야에 수련을 했던 무도인이라는 사실을 알고 대단히 반가워하고 친동생처럼 아껴주었다. 그래서 조용한 시간에 고민사항을 상의했다. 제철소의 직무내용과 거기에 관련된 자료가 있으면 한번 보았으면 좋겠노라고. 그러자 그분이 쾌히 대답했다.

“물론 있다. 그것이 없이 어떻게 인력편성과 직무훈련과 작업내용을 설계할 수가 있겠는가. 가자.”

그분을 따라 창고에 갔더니 빨간 도장으로 비(袐)자가 찍혀진 직무명세서, 작업내용서, 소요인력판단서 등 상세기록이 있었다. 물론 반출은 안돼서 사례 1장씩만을 구해서 돌아왔다. 귀국 후 일본 수퍼바이저에게 물었다. ‘당신 얘기로는 관행으로 하는 것이지 그런 사례는 없다고 하였는데, 내가 일본에 가서 보니 이러이러한 정밀한 설계와 작업내용서가 있는데 의견이 다르지 않는가?’ 했더니 이 사람이 웃으며 얘기했다. ‘그것은 어쩌면 당연한 얘기가 아닐까? 제철소 일의 내용을 명세한 직무명세서, 작업내용서, 작업의 강도, 그것에 대해 필요한 소요 기술 인력의 내용까지를 전부 알려준다면 오랜 세월에 거쳐서 축적된 노하우를 거저 주는 거나 마찬가지인데, 우리는 교육훈련, 기술연수, 직무판단에 대한 기술 이전비를 전혀 받을 수 없는 것이 아닌가? 달라는 사람이 무리가 아닐까?’ 라고 웃어넘기고 말았다.

통상의 경우 직무명세서 직무분석이라 함은 현재 하고 있는 일의 내용을 시간동작 체크, 작업내용의 실제 등을 분석 연구하여 필요한 작업시간, 필요한 작업도구, 필요한 작업인력을 산정하는 것이 기본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경우 아직 제철소 경험을 가진 사람도 없고 또 제철소 견학조차도 못해봤다.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서 우리는 서울대학교 박동서 교수를 모시고 주로 행정대학원팀 출신들로 8명의 직무분석반을 편성하고 추정직무분석(아마도 세계에서 처음일 것이다) 즉, 발생되지 않은 일을 추정하고 그것에 대한 소요기술과 인력을 산출한다는 어떻게 보면 황당하기 짝이 없는 작업에 도전했다. 불철주야 매달린 결과 5개월여 만에 마침내 작업을 마칠 수 있었다. 거의 사투를 하다시피 작업에 매달렸었다. 여기에 종사했던 분들이 이미 돌아가셨고, 또 아직 젊은 나이에 타계한 동지들이 있어 생각할 때마다 가슴이 아프다. 마침내 최종 보고서가 작성되고 임원회의에 특별보고를 요청해서 브리핑을 시작했다. 결론은 4직계 14직군 64직종 420개 직무의 4,268명이라는 판단서가 나왔다.

 

이 보고를 받은 회장(당시 사장)이 의장석을 손으로 탁탁 치면서 ‘좋다. 백만 톤 제철소 운영을 내가 4천명으로 운영하겠다. 그대로 실시해’라는 결론이 나왔다. 최종적으로 1973년 7월3일 종합준공을 하고 우리가 103만 톤의 제철소를 완공했을 때 최종인력은 4,044명으로 청와대에 당시 보고된 숫자도 이 숫자일 것이다.

다시 한 번 생각해본다. 만약 우리가 비록 추정직무분석이고 무모한 도전일망정 이 가이드라인을 만들지 못했더라면 일본 수퍼바이저 의견대로 만 명이였다면 그 인력 수요판단과 그 비용, 그 일거리는 어찌 되었을 것이며, 미국 수퍼바이저 얘기대로 1만 4천명 인력을 가지고 운용을 했다면 초기에 이익도모가 가능했을 것인가?

인력이 중복되거나 오버되어도 그 사람들도 노는 것은 아닐 것이다. 「파킨슨 법칙」대로 일이 일을 만들기 때문에 서로 바쁘면서도 간섭사항이 생기게 되고 효율은 떨어지게 된다. 인력가이드라인을 4천명 선으로 매듭지어 이것으로 백만 톤 제철소의 직무구조, 작업명세, 시간동작, 직무강도, 직무의 위험요소, 상응하는 직무가치 노동비용 등을 산출할 수 있었던 것은 포스코 성공신화를 이끌어가는 하나의 이정표를 마련했다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지난 세월을 생각할 적에 함께 수고했던 동지들의 노고에 거듭 감사를 드리고, 이미 유명을 달리한 동지들에게도 삼가 명복을 비는 바이다.

 

오랜 세월을 함께 일하면서 조직에 적응하는 방법, 조직에 대한 충성, 최고경영자의 결심을 이끌어내는 노력 등 경영활동의 귀감을 황경로 부장, 황경로 이사, 황경로 회장에게 음양으로 배우게 된 것을 깊이 감사드리고, 황혼의 노년에 계속 강건하시기를 기원 드린다.


여상환 


 

 No.

Title

Name

Date

Hit

2352

한국 사회의 전반적인 안전 수준 : 한국인은 오늘과 내일의 삶이 불안하다(2)

김정휘

2019.12.04

14

2351

한국 사회의 전반적인 안전 수준 : 한국인은 오늘과 내일의 삶이 불안하다

김정휘

2019.11.27

28

2350

학교가 존재하는 이유(2)

김정휘

2019.11.20

53

2349

학교가 존재하는 이유

김정휘

2019.11.13

50

2348

김옥길(金玉吉) 총장님(2)

김정휘

2019.11.06

49

2347

김옥길(金玉吉) 총장님

김정휘

2019.10.30

95

2346

한국도 고령화 사회(ageing society)로 진입했다

김정휘

2019.10.23

83

2345

교육과 수명의 유관성(有關性) (2)

김정휘

2019.10.16

68

2344

교육과 수명의 유관성(有關性)

김정휘

2019.10.09

151

2343

모스크바는 품격 있고 우아한 파스텔 색입니다

이성순

2019.10.01

764

2342

한국의 간디, 조 만식(1883~1950)

김동길

2019.09.30

332

2341

하느님이 하시는 일은 무엇인가?(356)

정우철

2019.09.29

511

[이전] 6[7][8][9][10]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