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자의 드라마콘서트 ‘혜경궁 홍씨’

 

우리나라 연극계의 거장 박정자가 혜경궁 홍씨로 나오는 드라마콘서트 '꿈속에선 다정하였네'가 대학로 극장 정미소에서 공연된다.

 

선생님 오랜만이에요.” “선생님 그동안 안녕하셨어요?” “선생님 이렇게 공연장에서 뵈니 참 좋아요.” 여기저기에서 반가움에 격앙된 목소리가 들린다. 지난 주 대체공휴일인 6일 오후. 대학로 공연장 정미소에는 공연시작 1시간 전부터 사람들이 입구에 마련된 차와 다과를 즐기며, 젊은 시절부터 공연장에서 보아온 반가운 얼굴들과 이야기 나누기에 바쁘다.

 

무대의 막이 오르면 오른편에는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한 여인이 우아한 기품 속에 세월을 오롯이 버텨낸 얼굴로 앉아있다. 또 왼편에는 천정에서부터 바닥까지 길게 늘어진 흐늘거리는 여러 개의 투명한 하얀 천들이 드리워져 마치 설치미술전시장 같은 공간 연출을 하고 있다. 단조로울 수 있는 무대는 이렇게 입체화되어 새로운 무대로 펼쳐진다.

 

'꿈속에선 다정하였네'는 혜경궁 홍씨가 남긴 자전적인 회고록 '한중록'을 바탕으로 연극과 음악, 영상을 결합해 완성한 드라마 콘서트다. 박정자는 영조의 며느리, 사도세자의 아내, 정조의 어머니로 모진 삶을 견뎌낸 혜경궁 홍씨의 삶을 박정자 특유의 울림 깊은 목소리와 격조 있는 언어로 내면의 깊이를 살린 낭독을 통하여 연극으로 표현한다.

 

한 시대를 호령했던 영조와 뒤주 속에 죽어간 사도세자, 그리고 그 아들 정조의 삼대에 걸친 비운의 이야기에 등장한 여인. 영조의 며느리였고, 경모궁(사도)의 아내였고, 정조의 어머니이자 순조의 할머니였던 사람. 남편과 자식의 죽음을 지켜보았고 81세로 생을 마감하기까지 71년을 구중궁궐 속에서 숨죽이며 살다간 여인 혜경궁 홍씨 이야기다.

 

지난 삶을 돌아보는 혜경궁 홍씨는 부부의 연을 맺었으나 한 번도 만난 적 없이 살았던 사람, 헤어졌어도 영원히 이별할 수 없는 사람과의 회환에 꿈속에선 다정하였네.”라고 나지막하게 읊는다. 세자와 세자빈이기 이전에 한 남자의 여자, 왕의 어머니이기 이전에 한 아이의 엄마인 혜경군 홍씨가 겪어야 했던 고통스런 삶을 바라보며 관객들은 숨죽이며 가슴아파한다.

 

박정자는 한그루 고목처럼 무대에 뿌리를 내리고 80분을 눈빛으로, 손끝으로, 관록의 목소리와 조용한 몸짓으로 궁중 여인의 한 맺힌 질곡의 인생을 드라마틱하게 형상화해 관객을 사로잡는다. 박정자는 열 살에 세자빈으로 간택되던 당시의 혜경궁 홍씨로 돌아가 그 시절의 사건들을 절절하게 토해내며 역사의 비극적 현장을 생생하게 증언한다.

 

박정자의 품격 있는 공연. 박정자만이 해낼 수 있는 영역, 박정자의 절절한 화술과 섬세한 연기가 조화된 명품공연, 박정자의 연기관록, 박정자의 목소리, 박정자의 열정으로 표출되었기에 극적인 드라마가 되어 관객을 몰아의 경지로 이끌었다는 찬사가 그치질 않는다. 이번 작품이 극장 정미소의 마지막 공연이라니 관객입장에서 아쉬움과 허전함이 밀려온다.

 

오래전 대학로에 나오면 즐겨 찾던 화덕 피자집 디 마테오가 아직도 그 자리에 있음에 감격하며 인증샷을 찍고 2층으로 올라간다. 수십 년을 공연장에서 보아온 낯익은 얼굴들이 그 곳에 모여 있다. 모두가 우리일행과 같은 아쉬운 마음으로 집으로 가는 발길을 늦추고. 피자 한조각과 맥주 한 모금으로 공연장의 감격을 계속 이어간다.

 

1961년부터 박정자의 연극을 보아왔으니 2년 후면 60년이 된다. 다음 공연이 기다려진다.

 

 

이 성 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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