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쳐야(狂) 미친다(及)

 

청암 박태준 회장께서 돌아가신지 6년이 지나갔다. 집안 내력도 장수집안이고 본인 스스로의 몸가짐도 철저한 과학적 관리를 하시기에 적어도 10년간은 우리 곁에서 생각의 원천, 힘의 원천, 또 의지하게 되는 버팀목이 되어주실 것을 기대했는데, 홀연히 타계하시니 당최 몸과 마음을 지탱하기가 참으로 힘들구나.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모시고 배우면서 그의 사상과 생각을 제도화 규범화 시키고, 조직의 활력을 최대한 발휘토록 매달렸던 40년 세월의 발자취를 생각나는 대로 함께 나누어보고자 한다.

그중에 하나가 미쳐야 미친다는 우리의 오랜 경험의 일단일 것이다.

한국인의 심성은 직위가 낮을수록 큰 얘기를 듣고자 하며, 정의와 대의명분을 중요시한다. 이들에게 대의에 순응하는 바탕을 만들고, 이러한 흐름이 조직의 전통과 풍토로 정착될 수 있도록 일관성을 유지시켜야 한다.

우리는 조직원들에게 민족이나 역사, 나라의 비전 등을 제시한 후 이기적 사고의 초라함을 느끼게 하고, 인간이란 마음먹기에 따라 하늘처럼 넓어질 수도 있고, 바늘처럼 작아질 수도 있는 존재라는 것을 인식시킬 필요가 있다.

결국 서구의 물질중심의 합리적 사고방식, 개인주의적 책임정신을 우리의 인간 본위의 공동체의식에 용해시켜 인간의 능력을 활활 타오르게 할 때, 앞서가는 한국형 산업문화를 꽃피울 수 있을 것이다.

 

1975년께 당시 세브란스 병원장이자 연세대 부총장이신 민광식 박사와 가톨릭의대 학장 김학현 박사가 포항제철을 방문했다. 필자는 정중하게 현장 안내를 마친 후 게스트하우스인 「영일대」에서 여장을 풀고 담소를 나누게 되었다. 밤이 깊어 파티가 끝날 무렵 깊은 상념에 잠겨 있던 민박사가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오늘 나는 포항제철 현장을 보면서 무한한 감동을 받았습니다. 우리 젊은이들이 거대한 위업을 해냈다는 사실이 도무지 믿어지지 않아요. 그 동안 얼마나 고생이 많았습니까. 그런데 余선생이 인사업무를 맡고 있다니 의학도 입장에서 한 마디 하겠소. 내 얘기를 진지하게 들어주시오. 우선 큰 병원과 상의해서 회장 이하 고급간부들의 정밀 건강진단을 받도록 하시오.”

“우리는 정기적으로 인근 병원에서 신체검사를 받고 있는데요.”

“내 얘기는 중역들과 고급간부들은 정밀도를 훨씬 높인 건강진단을 하라는 얘기입니다.”

“무슨 말씀이신지….”

“당신네 사장을 비롯해서 모든 사원의 눈빛은 광기를 뿜고 있어요. 의학자 입장에서 보면 모두 미친 사람들 눈입니다. 이 위대한 제철소가 현실로 이루어진 것이 지도그룹에 있는 분들이 모두 미쳤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이 말이요. 사장 이하 집단으로 미쳤어요. 이 같은 상태를 지속하자면 엄청난 에너지가 소모되고 쉽게 탈진합니다. 1~2년 내에 중역들이 하나 둘 쓰러질 터이니 서둘러 대비하는 것이 좋아요.”

그 분들이 돌아가신 후 한 달이 지나지 않아 부사장이 목 디스크로 쓰러졌고, 제철소장이 척추디스크로, 업무담당이사가 장 파열로 입원하는 등 여기저기서 건강문제가 터지기 시작했다.

포항제철의 성공요인에 대해 학자들이 여러 관점에서 이유를 밝히고 있다. 대일 청구권 자금의 조기전환, 제철소 건설공기 단축, 원료의 사전확보, 설비의 직접구매를 통한 최소비용 투자 등 여러 가지 요인을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현장에서 잔뼈가 굵어온 본인이 판단할 때 가장 큰 성공요인은 지도자에 대한 깊은 신뢰, ‘제철보국’이라는 일에 대한 보람, 사상초유의 국가적 프로젝트에 도전한다는 성취욕에 옮겨 붙은 ‘신바람’의 폭발현상이요, 이를 지속적이고 효과적으로 관리한 장엄한 휴먼드라마였다.

 

기업을 성공적으로 이끌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 관리기법이 있다. 그러나 직원들의 능력을 불태우고 신바람을 폭발시키는 동인(動因)은 지도자의 솔선수범과 일을 ‘업(業)’으로 받아들여 갈고 닦는 과정에서 도달하는 ‘미친’경지, 그로부터 뿜어내는 자장(磁場)의 형성 없이는 폭발력이 분출될 수 없다. 특히 한국인의 의욕은 합리적이고 경제적인 이유에 좌우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신념과 감정, 상하 좌우의 인간관계에 의해 크게 달라진다는 사실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조직원의 능력이 신장된다 해서 기업의 생산성이 향상되지는 않는다. 조직원의 신바람 에너지가 솟구치지 않으면 개인의 능력신장과 기업의 생산성 향상은 이루어지기 힘들다. 일을 하려는 의욕은 외부적 상황변화에 따라 수시로 굴곡현상을 보인다. 특히 한국인의 신바람은 인간이 천지간(天地間)의 중심핵(中心核)이 되는 존재로써 서로의 마음이 합쳐질 때에 솟아나는 초인적인 힘이었다.

오늘날 기업을 움직이는 주체는 인간이다. 새로운 경영자원으로 대두되는 기술이나 기업문화도 조직원이 만드는 것임을 감안할 때 기업경영의 성패는 ‘사람’에게 달려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따라서 어느 기업이건 경영전략에서 인재 육성의 비중이 가장 크며, 경영자는 조직원의 능력이 무한 증가하여 회사 경영에 보다 많이 기여하기를 원한다. 조직원이 회사 경영에 얼마나 기여했는가도 ‘투입과 산출’의 경제성 원리가 철저히 적용된다. 투입은 급여, 보너스, 후생복지 등 사람에 대한 투자이며, 산출은 조직원의 능력과 의욕의 정도에 따라 나타나는 생산성이다. 경영자는 가능한 적은 투자로 최대의 성과를 거두려고 노력한다.

 

여상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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