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성소(至聖所)

 

1978년 가을철로 기억된다. 포철은 2기 공사에 들어가서 한창 조업과 확장공사가 한꺼번에 추진되어가던 전쟁터 같은 상황이었다. 날짜는 정확하지 않으나 아직 추위가 덜 가셨던 늦은 봄으로 기억된다.

기독교 장로교의 원로이시며 한신대학 총장을 역임하신 조향록 목사님과 ‘이 생명 다하도록’ 이라는 주옥같은 프로그램으로 기독교 방송을 통하여 국민들의 영성을 개발해 마지않던 주태익 선생 일행이 우리 포항제철 공장을 방문하셨다. 이미 고인이 되었으나 조향록 목사님은 가까이 모시던 선배이시기에 정중하게 공장을 구석구석 안내해 드리고 포스코의 과거, 현재, 미래 또 그 비전에 대해 정성껏 브리핑해드렸다. 저녁에는 시내의 승리식당(당시에는 외빈을 모실만한 변변한 식당조차 포항시내에 없었다. 유일한 곳이 승리식당이라는 화식 집이었다.)에 모시고 좋은 분위기 속에서 저녁만찬을 할 때였다.

내가 문득 궁금하여 물었다.

“아까 낮에 잠시 연락드릴 것이 있어서 목사님 행방을 찾았는데 연락이 잘 안되었습니다. 혹시 어딜 가셨기에 연락이 두절되었습니까?”

그러자 목사님이 답했다.

“아, 그런 줄 모르고 나는 그 솔밭 송림에 가서 여러 가지 감회와 느낌이 있어서 하나님께 통성기도를 드렸네. 아마 그래서 연락이 안 된 것 같구먼. 미안하게 됐습니다.” 라고 말씀하셨다.

“통성기도라니요?”

통성이라는 어휘에 신경이 쓰여 재차 물어보았다.

“아 뭐 신경 쓸 것이 아닙니다. 그런 것이 좀 있었으니까 이해하시길 바랍니다.”

그러자 주태익 선생이 말씀을 하신다.

“아, 귀한 자리인데 말씀하시라고요.”

“그럴까? 나는 하나님을 신봉하고 모시는 목사요. 헌대 해방 이후 지나간 30여 년간 나는 기도 중에 한 자락은 하나님에 대한 항거기도를 많이 드렸네. 항거기도라는 것은 하나님께 간구하는 기도 중 하나가 ‘하나님, 우리 백성들이 무슨 죄가 그렇게 많아서 일제 36년간의 질곡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역사하심이 미쳐서 저희가 감격의 해방을 맞고 열심히 땀 흘리고 있습니다. 이제는 조금 고삐를 늦추어 주십시오. 이제 또 우골탑 마골탑하여 자식들 교육시킨다고 논 팔고 밭팔아 교육에 매달리느라고 농촌이 피폐하고 유리걸식하는 사회분위기가 팽배합니다. 하나님 숨이 가빠서 따라가기 힘드니 한 박자만 늦춰주십시오. 해방 전 36년 일제의 질곡과 미쳐 숨 돌릴 사이 없이 교육열에 매달리느라고 생활이 뒤죽박죽이 되고 있습니다.’ 라는 일종의 항거간청의 기도를 드려 마지않았네. 그런데 오늘 여기에 와서 포항제철이 이루어진 것과 확장건설 과정을 아울러 살펴보니 인간의 얕은 생각과 짧은 안목으로 하나님의 경륜을 재단하려 들었던 내 오만스러웠던 모습이 부끄러워 하나님께 눈물을 흘리고 사죄를 드리고 통성기도를 드렸네. 생각해보니, 나도 왜정시대에 근로보국도 가고 철강에 대해서 간접적으로 귀동냥도 해서 또 여기 오기 전에 철강공부도 좀 하고 이래서 현장 학습차 왔어요. 철강이란 거대한 장치산업이요 엄청난 자본투입 사업이기 때문에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철강업에 손을 대면 적어도 그 수익을 도모하기 까지는 5년~10년의 자본 회임기간이 필요하다는 것은 상식 중의 상식이 아니던가. 헌대 여기 와서 보니 조업 첫해부터 흑자를 내고 연전연승 흑자행진을 계속하고 있어요. 여러분들은 자랑스럽게 말하더군요. 국책사업으로 박정희 대통령이 재임 중에 13번이나 여기 와서 현장 격려를 했고, 박태준 회장의 리더십이 그처럼 치밀하고 강한 리더십으로 혼신의 열정을 불사르고 있고, 또 헌신적으로 생명을 걸고 우향우 정신으로 제철보국에 몸과 혼을 바치고 있다는, 어떤 면에서는 설명 또 어떤 면에서는 자랑을 수도 없이 듣고 그 또한 나도 감동, 감격해 마지않았다. 그러나 나는 하나님을 신봉하는 사람이다. 현장을 둘러보면서 ‘아하! 이 대목에서 하나님의 손길이 미쳤구나. 아하! 이곳에서 하나님이 뒤를 받쳐주셨구나.’ 하나님의 손길이 미쳤던 그 흔적들을 보고 느껴 마지않았다. 이곳은 하나님이 직접 역사하시고 지켜보시는 지성소다. 그 뜻을 깊이 인식하고 모두들 몸과 마음을 가다듬기 바란다. 흔히들 하나님이 역사하실 적에 모세의 기적이 일어나고 홍해를 가르고 천둥벼락을 치는 등 엄청난 외적 변동을 염두에 두기 쉬우나 하나님의 역사는 그렇지 않다. 오래 전에 사람을 심어두고 오래 전부터 훈련을 시키고 대비하여 어느 날 문득 상황이 전개되었을 때 하나님의 역사가 이루어지는 것을 우리는 보아왔다. 이곳이 바로 그곳이며, 지성소다. 그런데, 한 가지 내가 알 수 없는 것은 하나님이 왜 포철을 선택하셨을까? 왜 이들을 불러 세웠을까? 자네들 잘 먹고 잘 살고 살 통통 찌라고 만들어주는 것은 아닐 것이다. 뭔가 다음 단계의 목적을 가지고 뭔가를 이루시려는 큰 뜻을 가지고 그 뜻을 성취하는 도구로서 포항제철과 여러분을 쓰시려고 준비시키는 것은 아닐까? 하나님이 포철을 도구로 하여 달성코자 하는 그 경륜과 목표를 아마도 나는 보지 못하고 죽을 것 같다. 그러나 여러분은 연부역강하니까 오늘 이 얘기를 깊이 명심하여 훗날 포항제철의 성공이 단순성공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이 뜻을 성취시키고자 미리 깔아두었던 도구요, 칼이요, 목표였노라고 증언해주기 바란다.”

이때 나는 조목사님의 유언을 듣는 기분이어서 이렇게 대답했다.

“명심하겠습니다.”

 

그로부터 30년의 세월이 흘렀다. 내 머릿속에는 포철을 통해서 이루려는 하나님의 역사의 방향이 무엇일까? 화두는 그것으로 집중됐고, 머리는 그것으로 가득 찼었다. 모르겠다. 정말 모르겠다. 그러나 10여 년 전에 ‘백두산동우회’ 현장근로자 대표들, 산업계 지도자들을 인솔하고 배로 중국 천진을 통해서 백두산을 갈 적에 선상강의가 이루어졌다. 그때 내가 이 설명을 하고 문득 머리에 스치는 것이 있었는데 아마도 그 의미는 이렇다.

‘1450년 전에 신라 경주를 중심으로 이 나라가 통일이 되었는데, 지금 1500년 후에 같은 경주문화권인 포항을 중심으로 역사 통일의 기운이 새로이 움트는 것은 아닐까? 우리가 바늘로부터 선박에 이르기까지 철강이 없었으면 현대자동차, 대우전자, 삼성컴퓨터 등 철을 사용하는 어느 산업도 일어날 수 없었다. 여러분들은 이 나라 철강경제의 조타수 아니었나. 헌대 이제 통일의 기운이 움튼다. 남과 북을 막론하고 누가 강요한 것도 아닌데 ‘우리의 소원은 통일’을 목이 터져라 외치고 있다. 역사의 방향을 제시하는 것이 아닐까. 무력통일로는 우리 민족은 절멸한다. 경제통일로 경제성장을 통해서 이끌어갈 수밖에 없다. 그러면 통일기금이라도 비축하고 역사의 전개가 이루어지자면 통일의 원동력을 이끌어가는 수레바퀴의 견인차가 아닐까. 여러분들은 통일꾼이다. 통일꾼의 사명이 우리에게 있다. 여기에 무슨 이해관계가 있으며 노조관계의 갈등과 충돌이 나오겠는가. 약간 더 먹으면 어떻고 덜 먹으면 어떤가. 우리의 목표는 차원 높은 통일꾼이다. 이것이 하나님의 소명이 아닐까?‘

그날 나는 포스코 동지들이 단순한 이해관계를 초월해서 “나는 통일꾼이다” 라고 소리 높이 외치는 사명자의 역할로 몸과 마음을 받쳐 주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그리곤 한 번 더 외쳤다.

“포스코는 하나님의 손길이 미치고 있는 지성소다. 아멘!”

 

여상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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