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도』, ‘거북선’인가 神風인가? 살례탑 잘라(札剌)는 Dalai부족(海族)! e

 

풍도(風濤)돈황으로 유명한 거장으로 노벨문학상 후보에 올랐던 일본의 국민작가 이노우에 야스시(井上 靖: 19071991)가 쓴 역사소설이다[저서; 講談社, 1963./역서; ]장병혜서울 현대문학사 1986]. 1259년 고려태자 원종이 40여년의 항전 끝에 항표(降表)를 들고 쿠빌라이에게 입조하는 데서부터 시작하여 쿠빌라이 대칸이 죽어 일본 정벌이 끝나는 1294년까지의 당대 최대 태평양 세계대해전사를 다룬 작품이다. 역사소설이 이렇게 치밀하게 현지답사를 해가며  면밀한 고증을 거쳐 써진데 매우 놀랐다. 그래서 그렇게 쓰려다 보니 고려를 중심으로 쓸 수밖에 없었다고 고백하기도 하지만 논자가 보기에는 과학적인 엄밀성에 소설적인 허구를 덧칠하면서 겨냥한 과녁은, 전혀 자기 생존 당시인 해양제국시대 지금의 발등에 떨어진 불을 끄는데 철저히 빈틈없이 겨냥돼 있었을 따름이었다세계해전사 상의 기린아로 등장한 조선의 거북선(龜船)이란 놀라운 팍스 몽골리카 그 당대의 총체적 역사적 독창 결실은 아예 안중에도 아주 없었다. 그 발등의 불은 선진 과학방법을 빌어 급한 대로 시대권이 크게 바뀐 산업혁명 후 해양제국시대급 가미카제(神風)사관을 급조해보는  작품 창작에만 주로  결집된 듯하다.

 

chuchaehyok.com에 그림 실림

[그림] 맨 위 녹색 풍선은 딜라이, 다음 청색 그림 붙임 둘은  해양제국기 이전까지의 툰드라·타이가·스텝 순록~양유목 세력들의 해양진출 경향 상징도.

 

논자가 처음 이 풍도라는 역사소설을 대하면서 놀란 것은 개성과 강도 해역(海域)의 풍도에 대한 치밀한 현지 답사다. 저자의 지적대로 고려가 중심이 되는 역사 서술일 수 있음에도 일찍이 정작 고려반도-한반도에서는 그런 역사현지를 구체적으로 답사해 쓴 단 한편의 역사소설조차도 나온 적이 없어서였을 것이다. 관계 논문들은 40여년의 대몽항쟁을 서술하면서도 주적인 몽골기마군단의 구체적인 실체를 상대적이고 객관적으로 함께 엄밀히 천착하기보다는 고려군민의 애국이나 매국 중심류의 서술이라는 피상성을 주로 보여서 어딘가 엄밀한 과학적 현장감이 미흡함을 감지케 된 것도 사실이었다. 이러던 차에 풍도를 읽게 된 터였다. 새로운 지평을 여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러나 읽어나갈 수록 사실(史實)보다는 가미카제사관(神風史觀)이랄까 하는 어떤 특정사관(特定史觀)에 과녁을 맞춘 역사소설이라는 점을 점차 실감케 됐다.

 

우선 송도(松都)와 강도(江都) 사이의 해류-풍도를 면밀히 살펴 서술한 의도는 어디까지나, 스텝 몽골기마군단의 해전역량(海戰力量) 태부족과 이른바 강화천도의 탁월한 대응을 드러내면서 진도-제주도-일본열도로 이어지는 항몽 해전역량의 극대화를 드러내기 위한 의도적인 가설이 잠재돼 있었음을 보여주는 것 같았다. 그리고 결국은 당시대 팍스몽골리카 하 세계해전역량을 총동원해서 고려국탐라국을 점령 기지화해 일본열도를 공략하고서도 일본열도만은 해전역량이 아니라 초과학성을 갖는 풍도-가미카제(神風)  가호로 의연히 당대 무적의 원구(元寇)를 물리칠 수 있었다는 신풍신화(神風神話), 700여년후 바다제국시대 산업혁명후 메가톤급 풍도를 맞으면서까지 새삼 되살려내보고 싶었음이 분명해 뵀던 것이다.

 

실은 1259년 원종이 쿠빌라이에게 입조한 후 1274년과 1281년의 2차 일본정벌에서 1294년 쿠빌라이 대칸의 사망 이 전 까지의 삼별초 항몽전쟁을 내포하는 고려의 50여년에 걸치는 장기 항몽전쟁이 치열하게 지속되기도 했다.

 

아무리 역사소설이 사실(史實)을 빌어 소설적 허구를 연출하는 작품화가 불가피하다고 하더라도, 우선 절정기 스텝의 몽골세계제국유목군단이 수전~해전 경험이 거의 전무하다고 보는 건 말이 안 된다. 고원지대 스텝을 위주로 서정(西征)을 주도해 떠나며 칭기스칸은 금국정벌을 비롯한 몽골본부 중심의 동정(東征)  국왕 권황제(權皇帝: 황제 권한 대행) 무카리(木華黎)에게 일임한다. 그리고 그 금국정벌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이 산성해도(山城海島)로 뒤덥힌 반도국 고려국 정벌이고 태평양 해중 전진기지 탐라국 점령이며 해양제국시대에 접어들기 이전의 왜구(倭寇)의 열도국 후진 일본공략이다. 명조에 들어 편찬된 원사』 「외이열전엔 그래서 <고려> 밑에 <탐라>, 탐라 밑에 당시의 최후진인 <일본>을 적었다. 아무튼 동정은 서정과 달리 태평양 바다로 열려있는 바다의 스텝이라 할 해양 전장을 지향케 마련이다. 연경에 수도를 정한 것이 스텝의 바다육로와 동시에 바다의 스텝인 태평양(황해)으로도 운하가 열려 있기 때문이라는 사실은 공인된 견해다. 그래서 동정원수 국왕 권황제 무카리는 애당초에 바다’-Dalai(札刺亦兒=Далай: )부족출신이다. 대흥안령 북부 훌룬부이르시 달라이호수(海湖)’가 바로  Jalairtai(札刺亦兒台: 札刺亦兒台=‘撒禮塔’) 성씨의 기원지다.   그래서 무카리는 본래 Jalairtai(札刺亦兒台)-Sartai(撒禮塔) Mukhali(木華黎)가 온전한 본성명(本姓名)이다. 원사씨족표1 몽고 잘라이르씨편 札刺台조에 태종(1206)~헌종(1259)기까지 정()고려원수라 적어논 소이가 바로 여기에 있다. ‘잘라대Dalai()란 성을 가진이들을 뜻하기 때문이다. 수전~해전에 능한 바다부족(海族)’에게 동정총사령관직을 대를 이어 맡긴 것은, 도송(C. d’Ohsson 몽골사1834-35)의 지적대로 전문성을 최고로 중시하는 칭기스칸 몽골군에게는 상식 중의 상식이다. 휘하 장사병들 중에도 이런 사례는 무수히 많다. 그래서 세계사를 처음 쓴 몽골세계제국을 창업할 수 있었음은 물론이다. 살례탑(撒禮塔) 무카리(木華黎) 이래로, 합진(哈眞: Khajin)·잘라(札刺: Djala)=살례탑(撒禮塔: Sartai)·차라대(車羅大: Djarartai)가 모두 국왕 권황제 동정원수 바다부족’ Jalairtai(札刺亦兒台=‘撒禮塔:Далай’)씨임에는 틀림이 없다. 세상에 세계사적인 시련 없이 얻어지는 세계사적인 성과란 절대로 없는 법이다.

 

1218~9년 강동성(江東城) 전역후 고려 원수 조충(趙冲)과 구체적으로 형제맹약을 맺은 주체는 당시의 몽골원수 합진이 아니고 부원수 잘라(札刺. 그 부원수 잘라가 1231년에 권황제 원수로 진급해 정고려원수로 재침한 살례탑(撒禮塔)이다. 논자는 학위논문에서 야나이와다루(箭內 亘)합진(哈眞)=잘라(札刺)

 No.

Title

Name

Date

Hit

2305

하느님이 하시는 일은 무엇인가?(351)

정우철

2019.08.25

12889

2304

혁명 투사 김 구(1876~1949)

김동길

2019.08.26

231

2303

402. ‘디터 람스’의 디자인 철학 - 좋은 디자인의 10가지 원칙!

인승일

2019.08.24

544

2302

애국호국의 정열, 화랑도 정신

여상환

2019.08.23

327

2301

정계 지도층의 엇박자 안목

김형국

2019.08.22

645

2300

세대(世代, generation)별 차이와 특성(87)

김정휘

2019.08.21

281

2299

작은 거인에 대한 오마주

이성순

2019.08.20

782

2298

공화국을 처음 세운 이승만 (1875~1965)

김동길

2019.08.19

452

2297

하느님이 하시는 일은 무엇인가?(350)

정우철

2019.08.18

472

2296

401. 멀쩡한 눈의 맹인(?) 피아니스트가 눈을 잃게 되었다... 그러나

인승일

2019.08.17

532

2295

고구려의 고대판 이스라엘 전쟁

여상환

2019.08.16

393

2294

세대(世代, generation)별 차이와 특성(86)

김정휘

2019.08.14

509

[이전] [6][7][8][9]10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