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칸추루 교수와 한국몽골학회 시원핵심멤버의 남한산성 등반

 

 

1990년 8월 5일 우리는 송파 소재 삼전도비를 거쳐서 남한산성엘 올랐다. 몽한 연구자 사제 동료 4인과 수미야바아타르 교수 부인 및 故하칸추루 교수 여식이 동참했고 결국 이이들이 그 후 한국몽골학회의 시원 핵심 멤버가 됐다. 하칸추루 교수님의 전공분야 제자이며 신구몽문을 함께 공부한 박원길 선생이 논문 집필 중에 학회의 학술적인 기초 틀로 이들 사제동료간의 담론을 종합·정리해내면서 자연스럽게 그렇게 마련케 됐던 것이다.
 

[그림] 우로부터 하르누드 운 하칸추루 교수님[嫩江 상류가 본연고지; ‘검은 눈동자’의 큰 바위란 뜻의 이름-몽골인은 보통 눈동자 색깔로 성을 삼는다]과 딸 사란(하버드대 대학원생 와그너 교수 제자) 부녀 그 왼쪽 끝이 베 수미야바아타르 교수[다리강가 스텝이 고향, 1950년대 후반 평양유학] 부인, 뒷줄 우가 필자, 그 왼쪽이 베 수미야바아타르 교수(단국대 객원교수), 그 왼쪽 끝이 박원길 선생이다. 이상이 최서면 국제한국연구원장님을 중심으로 모인 최초의 한국몽골학회 실제 핵심멤버임. 1990년 8월 5일 남한산성에서 촬영. 붙임 그림은 하칸추루 교수님의 위구르친 비칙 친필 휘호로 단장된 『몽골학』 학회지 표지.

 

이제 어느덧 30년이 지나 각 시대 각 분야 전공자들이 동참하는 학회로 발전됐지만 그 초기 씨앗은 13세기 몽골사-『몽골비사학』을 핵심으로 심어졌음을 이제 되돌아보는 일도 그 나름의 의미가 있으리라 본다. 그래서 몽한 수교후 한국몽골학회 첫 몽골입국시의 제1회 『몽골비사』에 관한 한몽 심포지엄에서 한극측 대표인 필자의 주제발표 제목이 「『몽골비사』 연구와 두 민족의 기원 문제」 였기도 했다. 시원 몽골측 멤버가 모두 눈강(嫩江 상류; 단군탄생 동굴 추정 Gaxiandong-阿里河-‘대백산’<鮮山 해발 1000m 정도> 소재, 백두산은 해발 3000m 육박)~랴오허(遼河; 烏桓의 桓雄圈)에 이르는 싱안링(興安嶺) 일대 출신으로 한몽관계사 연구에 직간접적으로 밀착된  이들임도 결코 우연이 아니다. 우루쥔 루훈데브 초대 주한몽골대사도 홍산문화권 서북단 다리강가 스텝이 고향인 평양유학생으로 조선사학부 졸업생 출신이다. 기나긴 한몽사의 시각으로도 들여다봐야 할 문제 일 듯하다.

 

하칸추루 교수는 한국몽골학회 표지에 위구르친 비칙으로 휘호를 올리기도 했지만, 제주도에 들자마자 “몽골에서도 이미 사라진 몽골상층문화가 여기에 살아남아있다. 마침내 몽골과 고려는 함께 몽골세계제국을 역사적으로 창업해냈다!”는 일성을 남겨 주위를 놀라게 했다. 이성계 조선조에 들어 편찬된 『고려사』에만 나오는 「북원(北元)」이란 용어다. 그렇다면 이는 분명 남원(南元)을 동시에 전제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북원이든 남원이든 그 명칭은 황제의 정통후예 소재를 전제하는 것이라면  원말 1360년대에 들어서는 말기의 위기상황 하에서이기는 하지만 대도(大都: 現베이징[燕京]) 원(元)나라정부의 탐라천도(耽羅遷都) 시도마저도 있어 마침내 구체적으로 탐라도(耽羅都) 황궁(皇宮)의 주춧돌을 놓았고, 이후의 북원의 마지막 황제 토구스 테무르와 그의 아들 텐바아오류가 1388년 10월 같은 황족 부하 예수데르에게 울란바토르 툴(Tuul)하반에서 모조리 시해되면서 이내 다음 해인 1389년엔 이성계 조선과 주원장 명이 해중 수도 제주도로 포로로 잡아 호위해온 보보(拍拍) 황태자의 역사적인 존재 의미도 새삼 되새겨볼 필요가 있다 하겠다.

 

결국 쿠빌라이 대칸의 5대손 몽골 보보황태자의 후예들은 조선인으로 귀속돼 지금도 살아오고 있음에 거의 틀림이 없어 보인다[허용범의 제주도-‘南元’? 칭기스칸 정통황족혈맥 생존 문제 보고( 『월간조선』1998.10)]. 그렇다면 1388년 대원제국(北元)의 소멸과 함께 몽골황통을 내포하면서 처음으로 다시 이를 내적으로, 특히 팍스 몽골리카의 문화 정통을 계승하며 창업해낸 첫 나라가 사실상 몽골 기원지 호눈선원(呼嫩鮮原:HoNun Sopka & Steppe)을 중핵으로 삼고 동북몽골을 경영한 옷치긴 울루스를 태반으로 해온 이성계 조선조일 수가 있다[윤은숙 『몽골제국의 만주 지배사』 소나무 2010]. 

 

언어학적인 배경이야 전혀 모르기는 하지만 필자에게는 ‘달님’이란 뜻의 이름인 딸 「사란」을 부르는 하칸추루 교수님의 억양이 어찌 그리도 “달님아~!”하는 우리 아버지들의 그것과 혹사(酷似)한지...기적처럼만 느껴졌던 듯하다. 어쩌면 몽골의 뿌리가 차탕조선(Chaatang Choson: 순록치기 朝鮮)에 닿고, 몽골의 기원지대를 중핵으로 삼는 옷치긴 울루스에 주로 그 기반을 두어온 시원 이성계 조선의 혈맥이 직간접적으로 몽골인과 역사적으로 상호 접목돼왔음을 은연중에 암시하는 한 작은 징표일 수 있을지도 모른다.   

 

 

chuchaehyok.com 월요역사칼럼 


 

 No.

Title

Name

Date

Hit

2179

379. “이건 내 이야기이고, 내가 주인공이에요!”... <콜레트>

인승일

2019.03.16

613

2178

밥상론 소고(小考) -2

여상환

2019.03.15

380

2177

하느님이 하시는 일은 무엇인가?(328)

정우철

2019.03.17

565

2176

세대(世代, generation)별 차이와 특성(71)

김정휘

2019.03.13

961

2175

‘장인정신’을 아십니까?

이성순

2019.03.12

775

2174

한몽수교 직후 몽골초원, 철도가 한몽합창과 러식·미식 춤사위 판 갈이 배경은?

주채혁

2019.03.11

722

2173

378. 돈을 벌면 모든 것을 살 수 있을 줄 알았으나 시간은 살 수 없었어...

인승일

2019.03.09

608

2172

밥상론 소고(小考) -1

여상환

2019.03.08

495

2171

하느님이 하시는 일은 무엇인가?(327)

정우철

2019.03.10

550

2170

광야에서 바라본 시각, 전시장에서 생각하는 광야

이성순

2019.03.05

1062

 ▶

하칸추루 교수와 한국몽골학회 시원핵심멤버의 남한산성 등반

주채혁

2019.03.04

890

2168

377. 가장 친한 친구와 50년 동안 말하지 않고 지냈다... 무슨 이유일까?

인승일

2019.03.02

780

[이전] 11[12][13][14][15]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