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한국연구원, 그 시절의 한국 몽골학 비전 스케치

 

 

1990년 몽한 수교와 더불어 국내에서 판을 먼저 주도해 벌인 것은 단국대학교이고 그 판위에 몽·일·러·중을 엮어가며 한국 몽골학의 밑그림을 그려가게 뒷받침을 해준 건 서울역 앞 대우재단 연구실과 도서관 및 당시 강남의 국제한국연구원이었다. 그 중에도 국제한국연구원은 몽골관계 사료들을 오래 모아온 자료실이자 개방된 연구실로 몽골연구자들이 자유롭게 드나들며 관계 자료들을 이용하며 담론을 벌일 수 있어서 듬직한 우리의 후원처가 돼주었다. 북방사회주의권-유목권과의 너무나도 오랜 단절로 한국에서 관계 자료들을 구하기가 거의 하늘에 별 따기라 할 만큼 어렵던 시절, 특히 유목현지에 거의 발을 들여놓을 수 없었던 터에 풍부한 관계 고지도(古地圖)들을 비롯한 각종 유목학연구정보들은 우리에게 큰 힘이 되어 주었다. 대우재단 도서관과 이 연구원을 기지로 삼아 국내외 관계 연구자들이 오가며 자료들을 스스럼없이 나누어 갖고 희귀한 정보들을 주고받으며 연구의 열정을 불태우던 그 시절이 이제 새삼 상기되곤 한다.


[그림] 앞줄 우하 둘째 번이 최서면 국제한국연구원장님, 그리고 다음다음 맨 끝이 필자다. 우하 붙임 그림은 다리강가 스텝 고올리 돌각담 무덤 유적지 답사장 1992년 8월 중순 SBS-TV 몽골 다리강가스텝의 고올리 돌각담 유적현장 첫 인터뷰 사진 [상주가 상복을 벗고 부친이 생전에 쓴 모자를 건으로 썼다. 아직 상중이었다]
[그림]은 과 chuchaehyok.com에도 실려 있다.


당시에 한국 몽골학회의 비전을 대담하게 맨 먼저 더불어 그려본 분은  동북아시아 근현대 외교사 사료와 유목관계 정보들을 상당히 많이 수집·연구해온 사계의 거장 최서면 국제한국연구원장님이라 하겠다. 모여오는 관계 연구 지망생들과 담론을 펼치며 세대 차와 위상 차를 따지지 않고 함께 고민하고 가능한 문제들을 더불어 풀어내가며 우리를 격려해 그 한 중심 흐름을 이루게 다독여주었다. 진지하게 열정을 불태우던 모든 이들에게 다 그런 배려를 베풀었다. 가는 길들에 걸림돌이 있으면 호상(虎像) 의 포효(咆哮)로 거기가 베이징이든 지린이든 울란바토르든 거침없이 족적이 이르는 곳마다 태산 같은 장벽을 허물어트릴 듯한 기세로 큰 길을 돌파해 우리의 길을 열어 내주는 그런 격려가 있어, 오늘의 필자도 필자로 나름의 어쭙잖은 담론이나마 이렇게 펴보게 됐음을 이제 새삼 깨우친다. 무엇보다도 1990년 8월 타이완 유학시절 박원길 박사의 은사 몽골인 몽골학의 원로 하루누드 운 하칸추루 교수를 초청해 표지 『몽골학』 위구르친 비칙 휘호를 초대 학회장인 필자가 친필로 받게 하는 등 한국몽골학회 창립의 초석을 놓는 데 크게 기여케 해준 일들을 잊을 수가 없다.

 

필자가 몽골유목현지답사 연구 투신을 두고 일생을 잊을 수 없는 갈림길에 섰던 때가 있었다. 한몽수교후 몽골문화사절단의 역사적인 방한이 있었고 이듬해 초여름에 그 답방이 예정되었던 때였다. 구순을 바라보는 거동이 불편한 부친과 어린자녀들 모자녀만 두고 차마 몽골행 발을 뗄 수가 없어 머뭇거릴 적 얘기다. 마침 출장 강의가 있어 지방으로 떠난 터에 출장지에서 부친의 타계 기별을 받고 급히 귀가했다. “떠나라!”는 유명(遺命)을 남기셨다고 들었다. 당시 황량한 송파(松坡)들판 작은 병원 영안실엔 꽤 큰 최서면 원장님 우송 조화(弔花)가 새로 선출된 문선재 강원대 총장의 조화와 함께 서있었다. 생전 처음 가는 오랑캐 지대 사회주의권 진입에 겁도 났고 조부의 시묘살이터 시묘막골이 바로 필자의 생가 터인 터에,  밤새 영안실을 지키며 마음을 추슬러 가까스로 몽골현지 진입 감행 결단을 내렸다. 밖에서 보기에는 대수롭지 않게 여겨질 수도 있겠지만 당시의 소심한 필자에게는 그 후 30년 몽골유목현지답사 일생 유무를 좌우하는 결정적인 한 고비였다. 국제한국연구원 그 시절 이러저러한 크고 작은 그 그림들이 아직 눈에 삼삼하다.

 

 

chuchaehyok.com 월요역사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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