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계 조선 이전의 평양은 요동!-“붕어빵에는 붕어가 없다”

 

 

1960년대 후반 난 석사학위논문 제목 감을 몇 개 뽑아들고 지금의 대학로 옛 서울문리대 캠퍼스 고병익 교수님 연구실로 전공지도교수님을 바짝 긴장해서 찾아뵈러 갔다. 오래 헤매다가 몽골사 연구로 마음을 먹고 당시 이 분야 학위논문을 정식으로 쓰신 국내 유일한 교수님께 논문지도를 받으러 간 터였다. 해방 후 연세대 사학과 교수로 교편을 잡기 시작한 인연이 있었던 터였지만 너무 근엄해 뵈서 더듬더듬 인사를 드리고 구체적인 지도를 받게 됐다.


[그림] 바탕그림은 할힌골을 확대해 깔았다. 좌상 중의 좌상은 BC4~5C경 호눈선원(呼嫩鮮原:HoNun sopka &steppe)에서 기원起源)한 동북아시아 스키타이 기마 양유목혁명의 주도 주체인 짐승 숫수달 예(濊)와 산달 맥(貊)이고 한(汗:나무꾼의 ‘꾼’-Hun<사람>)은  이들의 역사적 흐름을 운용하면서 유목제국의 기원을 주도한 주체인 북방유목몽골로이드[사람]상징 Boka(狼:늑대) 추정.바로 그 우측은 몽·한의 공동조상 고올리칸(東明聖王)석인상이 좌정한 부이르 호반 몽골스텝 Qalqyn Gol(紇<忽>升骨;忽本=卒本=渾?)-‘본평양’ 숑크(紅) 타반(五) 톨로고이(頭)-‘紅五頭’ 항공사진이다[울란바토르 소재 일본인력개발센터가 2009년 7월에 할힌골 전투 70주년 국제학술회의시에 제공함. 너무나도 고귀한 동북아 시원유목제국 핵심사료 유적 항공사진 제공에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중앙 비스듬히 깔린 그림은 유명한, 현재의 비유목지대 한반도 한국과 중·일이 명백히 차별화 되는 『생명체 유전자 지도』[B G Holt EU ar. Science 2013: 74-78]다, 순록 양유목지대 ‘할힌골 본평양’-‘요동 북평양’-비유목지대 유목 디아스포라의 ‘한반도 남평양’설을 뒷받침하는 중핵이 되는 유전체학적 증빙자료가 될 수 있겠다.우하의 대형지도는 남의현 「14세기 이전 압록수·압록강은 만주 遼河였다」 『강대신문』 [2018년 11월 12일 학술5]로 논자의 이성계 조선 이전-특히 영락제(成祖)·태종 이전 추정-‘요동 북평양설’을 뒷받침하는 기축 논문에 실린 역사지도다.
[그림]은 <blog.duam. net/chuchaehyok>과 chuchaehyok.com에도 실려 있다.
 
그런데 그런 풍모와는 달리 고병익 교수님은 지도과정에서는 아주 세심하고 자상하셨다. 이때 방점을  찍어주신 제목이 요심(遼瀋)지역의 홍복원(洪福源)문제였다. 하필 매국노의 상징 홍복원 연구라 그 후 주위의 빈정거림도 참 많이 받았지만, 썩은 달걀에서 푸른곰팡이를 추출·실험해 페니실린을 만들어 내면 그뿐이라는 듯이 아주 담담하게 연구주제를 대하시던 지도교수님의 문제접근 자세는 내 학문인생에 그대로 배어든 듯하다. 심지어는 뒷날 너무나도 하찮은 선(鮮: Sopka)에서 자라는 지피(地皮) 선(蘚: Niokq)-이끼(苔: Niolm)가 아님-을 연구주제로 고른데 일익을 담당했는지도 모른다,

1990년 북방개방이 돼 상전벽해(桑田碧海)와도 같이 연구판도가 뒤바뀌어 서울역앞 대우재단 연구실에서 필자를 위시한 창립멤버들이 ‘학국몽골학회’를 만들자 이 무렵 방송통신위원회위원장이셨던 선생님은 차를 보내 우리에게 만찬을 베풀어 격려해주셨다. 이를 계기로 ‘요심’에서 몽골사의 실마리를 풀기 시작한 논자이고 또 개방후 그간 선후배연구동료들의 놀라운 이 분야 연구성과에 크게 힘입어가며 그 실마리의 한 매듭을 지을지도 모른다는 예감마저 든다. 실로 몽골황족 충선왕과 중신 이제현, 심왕당, 기황후의 거점, 이성계의 전략적 핵심진지, ‘북평양 요동’과 ‘본평양 할힌골’, 조선의 ‘선’(鮮: Sopka)과 ‘대백산’ (大白山)-‘아룡산’(阿龍山)문제 등 여러 가지 주요 관계과제들이 뇌리를 스치고 지나간다.

칼럼 글에서 전문적인 문제 천착을 언급할 수도 없고 이 부문 문제를 다루면서 꽤 오래 관계문제점들을 되새겨오기는 했지만 정작 그런 문제들을 천착해낼 구체적인 연구력을 쌓아온 적은 거의 없는 논자여서, 다만 시원고구려의 유목제국(Pastoral nomadic empire)적 본질이라는 관점에서 변죽만 울리는 문제만 간단히 던져보려 한다. 위 [그림] 지도에서 때마침 남의현 교수가 지적했듯이 살수가 지금의 북한 평양이라면 평양성 서쪽에 살수가 있다는 기록은 오기(誤記)이니 평양성 서쪽엔 황해가 있을 뿐이어서이고, 아랍의 첨단 항해술까지 수용한 당태종이 산동에서 수군을 동원해 직접 공격하면 될 것을 굳이 험난하기로 유명한 요하 서쪽 거대 늪지 요택을 돌아 공격하려 했을 까닭이 없다는 이유를 들어 ‘평양성전투’의 주 무대는 한반도 평양이 아니고 요령성 일대 평양성일 수밖에 없으며 14세기 이전엔 당연히 그렇게 알고 있었다는 나름의 글을 발표해서, 다시 이들의 중요성을 새삼 깨우치게 됐다.

실은 고구려의 남진정책으로 427(장수왕 15)년에 평양천도를 하기 전에도 평양에 대한 기록은 344년(고국원왕4), 353년(고국원왕 13), 393년(광개토왕2), 409년 (광개토왕 18)조에도 이미 등장한다. 당연히 비(非)유목지대 한반도 평양이 아닌 만주벌판의 평양에 관한 기사다.   뿐만 아니라 고구려의 한반도 진공이후엔  북한산성도 평양으로 불렸을 가능성을 제기하는 ‘남평양’설조차 제기되는 판이다.  지금의 북한 평양도 그런 흐름 속에서 14세기 이후에 고착된 일 사례 중의 하나일지도 모른다는 견해가 남 교수의 글에서 제기되고 있는 것이라고 이해된다. 그렇다면 당연히 요동[遼寧] 평양설은 ‘북평양’설로 자리메김해볼만 하고 고올리칸[東明聖王] 석상이 좌정하고 있는 대흥안령 북부 동북아 유목제국 기원지 부이르호반 ‘할힌골’(Qalqyn Gol: 紇<忽>升骨;忽本=卒本:渾?)스텝 평양설은  ‘본평양’설로 명명해볼 수는 없을까?

‘서울’(金野: Шар Тал: 謝爾塔拉=황금벌판)처럼 고구려의 수도를 통칭하는 보통명사 지명이 ‘평양’(Qalqyn Gol: 紇<忽>升骨=弓野~弓平? Goolikhan弓王 좌정 평원)이라면 유목사안(遊牧史眼: Nomadic historical eye)을 제대로 뜨고 보는 한 당연히 가능하리라 본다. ‘시원고구려의 유목제국적 정체성’을 전제하고 유목민은 그들의 족보(靑冊)와 종산(宗山) 지명을 땅끝까지 내내 지니고 다닌다는 유목관행을 숙지하기만 한다면 비(非)유목지대 한반도의 평양들은  Chaatang Choson 유목적 디아스포라(Pastoral nomadic diaspora)들의 그런 관행 상의 평양일 수 있어서다.
 
홍산권 지명등에는 조양(朝陽: 해를 따라가는)~향양(向陽; 해를 향해 가는 ) 따위의 동적(動的)인 지명 류가 아주 많다. 유목지대여서다. 그럼 평양(平壤)은 무얼까? 그 본이름이 흘슬골·홀본·졸본 또는 Nomonkhan=Goolikhan (弓王)등으로 활과 직관 되는 것이라면 본래는 차탕의 철기수용으로 비롯되는 동북아 스키타이혁명의 표상 몽골(貊高麗: 貊弓?) 기마양유목민이 치닫는 공활한 스텝평야-활의 벌판 궁예(弓裔) 활의 대칸 Goolikhan이 좌정한 Qalqyn Gol[弓谷~弓平 또는 弓江]은 아닐까? 그 좌정처 숑크(紅) 타반(五) 톨로고이(頭)=‘홍오두’(紅五頭)와 ‘오녀산성’(五女山城: 遼寧省 本溪市 桓仁縣 소재)은 서로 전혀 인연이 없는 역사적 지명이기만할까? 오녀산성은 고구려의 첫 도읍지인 홀본성(忽本城) 또는 졸본성(卒本城)으로 할힌골의 ‘홍오두’가 유목제국 고구려의 본도읍지 홀본성(Qalqyn Gol)일 수 있는 데도 말이다. 이젠 새삼 남평양-북평양-본평양 Qalqyn Gol의 Goolikhan-동명성왕 석상을 다시보자! 본평양과 북평양의 일련의 지명들은 너무나도 혹사(酷似)한데가 있다, 혹여 오랜 유목관행이 배어든 친연관계가 분명한 유목적 유흔(遺痕)들은 아닐까?

1990년대 중반 홍산 문화권 서북변 다리강가스텝 고올리 돌각담무덤 발굴장(손보기 단장)에서 고고학자 도 바예르 교수[청소년시절 몽골국가대표 복싱선수]가 웃통을 벗고 발굴작업을 하다가 일사병(日射病)으로 진통하는 걸 목격한 적이 있었다. 여기서 문득 홍산권의 동적인 지명 조양(朝陽)이나 향양(向陽) 등을 되새기며 이는 사양(射陽)~사일(射日)일 수가 있겠구나 하는 생각을 해보기도 했다. 따가운 햇살(日矢?)에 노출돼 ‘일사병’을 일으키게 하는 공활한 몽골대스텝 ‘Qalqyn Gol 본평양’설은 이런 구상을 되새기면서 생겨난 셈이다. 역사적 무중력 상태에서의 자의적인 지명 해석은 물론 한사코 삼가야겠지만, 이는 동몽골 대스텝 유목현장에서 논자가 꽤 오래 몸소 숨고르면서 태어난 발상이다. 시원 고구려 수도 본평양(本平壤)은 비(非)유목지대 조선반도가 아니라 이런 뜨거운 햇살이 떼화살처럼 무진장 무자비하게 발사(發射; Харвax)되는 공활한 동몽골 대스텝 대평원일대임이 틀림없겠구나 하는 확신마저 생겨났다.  시세에 따라서 어떤 지대에서는 붕어빵에는 붕어가 없을 수도 있는 식의 경우가 발생할 수도 있지 않을까. 

환웅이 무리 3000을 거느리고 신시(神市)를 연 곳이 과연 백두산영봉일 수 있나? 여기서 북극해권 레나 강까지 최고봉은 백두산뿐인데 북극해 끝 모를 장엄한 눈 폭풍이 내리치고 태평양 엄청난 해양폭풍이 이를 서로 맞받아 올려치는 그 가파른 백두산 꼭대기에 과연 그런 평지가 있기는 할까? 잠깐만이라도 대흥안령 북부 ‘대백산’(大白山) 지하에 빙하가 흐르는 조선(朝鮮)의 선산(鮮山: Sopka) 위 거대 분지에 눈을 돌려보자. 대선비산의 뿌리가 시베리아 최대의 타이가인 ‘Sayan(鮮)산’임을 지적하는 정겸(丁謙, 淸)이 있음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진실로 2000년 5월 하얼빈 자택 서재에서 칭기스칸 몽골의 기지인 Steppe보다 훨씬 더 공활한 Taiga~Tundra라는 Chaatang  Choson의 태반을 처음으로 논자에게 손가락질해주던 보르지긴 쇼보 교수(흑룡강성 사회과학원 역사연구소, 칭기스칸 33세손 奇황후계)를 도저히 잊을 수가 없다. 역사복원 일대개벽이 이루어지고 있는 정보화·유전체학누리인 지금, 여기가 아닌가? 북평양·‘본평양-Qalqyn Gol’을 다시보아야 참 조선겨레 ‘활겨레’(弓族) 한민족사 시야가 제대로 열릴 터인데도! 아무리 역사는 역사일 뿐이라고는 하지만 그때 그 역사가 없으면 지금의 나도 있을 수 없음에도 주목해야 하지 않을까? 이는 담장 밑의 작은 풀 한 포기에도 적용되는 역사의 본령이어 서다.


chuchaehyok.com 월요역사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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