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기영의 세상이야기]348.범은 죽어서 가죽을,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

 

중국 당(唐)나라 말기의 조정은 외척과 환관들의 각축장이 되고 조신(朝臣)들은 붕당을 결성하여, 양자가 야합하거나 투쟁하는 형상을 낳았다. 이러한 지배세력의 정치적 부패와 부정행위에 더 이상 백성을 통제할 수 있는 힘을 잃게 되었고, 중앙 관료들의 무분별과 사치ㆍ탐욕의 부담은 전부 백성들에게 돌아가게 되어 양민들의 고통은 날로 심화되었다. 설상가상(雪上加霜)으로 해를 잇는 가뭄과 홍수 등의 자연재해로 인한 기근에 굶주린 농민들로부터 대규모의 반란이 일어난다.

 

이것이 바로 중국 통일제국으로는 한(漢)나라 이후 제2의 전성기를 누리던 290년 역사의 당조(唐朝)를 멸망케 한 이른바 ‘황소(黃巢)의 난(亂).’이다.

 

당시의 귀한 생필품이었던 소금의 판매상들이 매점매석으로 폭리를 취하자 소금값은 하늘 높은 줄 모르며 치솟았고 급기야 조정에서는 소금의 거래에 세금을 물리기에 이르렀다. 이쯤 되자 소금밀매가 성행하게 되었고 밀매를 위한 조직이 형성되기 시작했다. 이때 원구지방(지금의 산동성)의 소금밀매업자의 두목인 황소(黃巢)가 조정의 부패와 무능에 성난 농민들을 선동하여 난을 일으켰던 것이다. 뜻을 같이하는 절대다수 농민들의 가담으로 황소의 군대는 금방 눈덩이처럼 불어나 하남ㆍ산동성 일대를 쉽게 점령하였고 결국 도읍인 장안을 함락, 황제 희종을 사천성으로 쫒아버렸다.

 

황소는 도성 장안에 스스로 정권을 세우고 국호를 대제(大齊), 연호를 금통(金統)이라 부르며 항복한 관리도 기용하여 통치를 굳히려고 하였다. 그러나 당국의 병마사 이극용의 토벌군에게 격파되어 3년 후에는 장안으로부터 동방으로 퇴각, 이듬해 산동성의 태산 부근에서 자결하였다. 이 난으로 당은 23년간 존속하기는 하지만 명맥만을 유지했을 뿐 결국 붕괴되고 말았다.

 

통일신라말기 당대 최고의 석학이며 시문집《계원필경(桂苑筆耕)》의 저자로 우리에게 너무나도 유명한 해운(海雲)최치원이 당시 당나라로 유학, 벼슬을 할 때 토벌총사령관 고변(高騈)의 휘하에서 종군하며 황소를 성토하기 위하여 쓴 글이 바로 <토황소격문(討黃巢檄文)>이다. 황소가 이 격문을 읽다가 너무 놀라서 침상 아래로 굴러 떨어졌다는 일화가 전할 만큼 뛰어난 문장이었다.

 

또한 당시 중국에서는 “난을 일으킨 황소를 격퇴한 것은 이극종의 칼이 아니라 최치원의 격문이었다.”는 이야기가 떠돌았을 정도로 최치원의 문장력은 당나라 전체를 뒤흔들었다고 한다.

 

『 무릇 바른 것을 지키고 떳떳함을 행하는 것을 도라 하고, 위험한 때를 당해서 변통하는 것을 권이라 한다. 지혜로운 사람은 때에 순응해 성공하지만 어리석은 자는 이치를 거슬러 패하는 법이다. 온 천하 사람들이 너를 드러내놓고 죽이려 할 뿐 아니라 지하의 귀신들까지 너를 죽이려 이미 의논했을 것이다. 나는 한 장의 글을 남겨서 너의 거꾸로 매달린 위급함을 풀어주려는 것이니, 너는 미련한 짓을 하지 말고 일찍 기회를 보아 좋은 방책을 세워 잘못을 고치도록 하라. 』 최치원의 〈토황소격문〉中.

 

중국의 역사에서 당이 멸망한 907년부터 송(宋)나라가 건립된 960년까지, 황하를 중심으로 화북을 통치했던 5개의 왕조(오대)와 화중ㆍ화남과 화북의 일부를 지배했던 여러 지방정권(십국)이 흥망을 거듭한 정치적 격변기를 일러 오대십국시대(五代十國時代)라고 한다.

 

이 오대왕조 중의 하나인 후량(後梁)에 왕언장이라는 맹장이 있었는데, 일개 병졸로 시작해 후량의 태조 주전충의 막대한 신임을 받는 군장이 된 그는 백 근이 훨씬 넘는 쇠창을 들고 싸운다하여 ‘왕철창’이라고도 불리었다.

 

《오대사(五代史)》〈왕언장전〉의 기록에 의하면 진(晉)나라가 국호를 후당(後唐)으로 바꾸고 후량(後梁)을 쳐들어갔을 때, 왕언장이 장수로 출전했으나 크게 패해 파직을 당했다. 그 후 후당이 재차 후량을 침입했을 때, 그는 또다시 장수로 기용이 되었으나 이번에는 포로가 되고 말았다. 싸움에서 이긴 후당의 왕이 왕언장의 용맹무쌍함을 높이 사 후당으로 귀순할 것을 종용했으나 왕언장은 단호히 거절하며,

 

"아침에 양(梁)나라를 섬기던 몸이 어찌 저녁에 진나라를 섬길 수 있겠소. 내가 조국 양(梁)나라의 은혜를 입은 몸으로 나라가 멸하였음에 죽음이 아니면 무엇으로 그 은혜를 갚겠소. 이제 살아서 무슨 면목으로 세상 사람들을 대하겠소이까?” 라며 장렬한 죽음을 택했다.

 

왕언장은 생전에 글을 배우지 못해 거의 문자를 알지 못했으나 언제나 즐겨 인용하는 이언(俚諺)이 하나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는 뜻의 ‘호사유피 인사유명(虎死留皮 人死留名)’이었다.

 

왕언장은 좌우명(座右銘)으로 삼았던 ‘호사유피 인사유명’처럼 구차하게 목숨을 구걸하지 않고 명예로운 죽음을 택해 그 이름을 후세에 길이 남겼다. 중국 당송팔대가의 한 사람인 취옹(醉翁) 구양수의 《오대사기(五代史記)》의 〈사절전(死節傳)〉에는 세 사람의 충절을 기록하고 있는데, 그중에서도 특히 왕언장의 충절을 가장 높게 평가하였다.

 

일국의 장수로서 절체절명(絶體絶命)ㆍ생사기로(生死岐路)의 상황에서 자신의 명예를 더럽히지 않고 오직 조국에 대한 굳은 절개를 지키기 위해 수절사의(守節死義)한 장수 왕언장의 명예롭고 의로운 선택은, 개인의 부귀와 영달을 위해서라면 저를 낳아준 나라마저도 팔아 처먹으려는 간신매국노들이 난무하는 작금의 시대에 우리가 본받아야만 해야 할 내용인 듯하다.

 

인생의 참 목적은 좋은 일을 하여 그 이름을 후세에 남기는 데 있다는 뜻의 “호사유피 인사유명”의 참다운 의미를 다시 한 번 마음속 깊이 새기며 오늘의 칼럼을 끝맺는다.

 

〈2019.01.03 한림(漢林)최기영〉ericchoi1126@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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