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pka(鮮)가 Steppe(原)화 해온 호눈선원(呼嫩鮮原) Danglasun을 밟다!

 

 

칼럼 제목부터 북방개방 후 30년이 지났어도 아직 낯선 대흥안령 북부 훌룬부이르·눈강 타이가~툰드라·스텝(呼嫩鮮原: HoNun Sopka & Steppe) 지대라는 사실상의 세계 유목제국 (Pastoral nomadic empire) 기원지의  ‘Danglasun’(물과 풀이 엉겨 붙어 얼은 동토의 흙덩이-Sopka가 Steppe화 해오는 흔적이자 순록치기의 철기 수용과 기마양치기 지향 Scythia혁명과정의 역사적 상징-)을 딛고 섰다. 늑대 소리를 자장가로 들으며 잠이 들곤 했던 어린 시절을 보낸 충청도 산골 시묘막(侍墓幕; 조부의 시묘살이터)골 출신인 논자에겐 나름으론 천지개벽 같은 삶의 전변이었다. -그 후 공활한 몽골스텝 유목현지 답사 중에도 그런 정든 늑대소리 고향음악을 들으며 잠을 이루곤 했다- 역사배경도 생태도 아주 판이한 땅을 밟은 것이다. 애초에 무슨 큰 뜻이 있어 시작한 일은 아주 아니었다. 좁은 산골, 작은 한반도에서 좀 탁 트인 대지를 밟고 맘껏 숨 쉬고픈 너무 막연한 어릴 적의 꿈만 시원 유목사현지 유적 답사에서 희미하게 그려봤을 뿐이었다.


[그림] 1999년 8월초 마침내 호눈선원의 당라순을 밟고 선 논자. 좌 상은 베 수미야바아타르 교수가 몽한수교시에 처음 가지고 한국에 입국한 몽한사의 메가톤급 핵심역사정보라는 몽한의 공동조상 고올리칸(東明聖王) 석인상이 좌정한 부이르 호반 몽골스텝 Qalqyn Gol(紇<忽>升骨;忽本=卒本?) 숑크(紅) 타반(五) 톨로고이(頭)-紅五頭 항공사진[울란바토르 소재 일본인력개발센터가2009년 7월에 할힌골 전투 70주년 국제학술회의시에 제공함] 사진 꾸미기.  좌하는 『훌룬부이르일보』 2001년 1월 19일(상)~1월 21일(하) 1면에 게재된 논자의 글[현지 조선족 成斌 부국장 제보]. 우하 2001년 5월 하얼빈 자택에서 朝鮮의 태반 순록유목 朝族과 순록방목 鮮族의 본향이 북극해쪽 사하라고 논자에게 손가락질해 준 보르지긴 쇼보 교수[흑룡강성 사회과학원 역사연구소; 칭기스칸 33세손, 奇황후系] .

 

그렇게 현실은 전혀 모르고 선택하게 된 분야에, 당시의 논자 수준에서는 전혀 예상치 못한 세계정세 격변으로 이 엉뚱한 생태계에 내던져진 셈이다. 세계유목제국 몽골사 연구만도 힘겨운 주제에 조선 상고사도 눈여겨보라는 주위의 요구를 피해 홍산 문화권 서북단-돌문화권- 다리강가 고올리(高句麗~渤海) 돌각담무덤 발굴장에서 그냥 몽골유목제국 기원지로 도망 나오다 덜컥 걸려든, 내겐 실은 Chaatang Choson문제는 꿈에도 그려본 적도 없고 감히 넘볼 수도 도저히 없는 너무나도 과분한 힘겨운 덫이었다. 이게 아주 솔직한 논자의 자기고백이다. 몽골사 연구도 쩔쩔 매는 주제에 ‘조선 기원사’라니 정말로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그러나 조선(朝鮮)을 Choson이 아닌 Zhoson 이라고 굳게 믿고 말하고 있는 소위 조선국인 국립대 교수인-수교당시 중국에선 국립대면 다 당이 인정하는 공식대학으로 여긴 듯하다- 날 조롱하듯 내려다보는 원주민들의 압도적인 시선을 피할 길이 없었다. 추정컨댄 이른바 십수억 한인(漢人)의 시선이 죄다 그랬으니까. 그래서 마지못해 쫓겨가며 시작한 '조족(朝族)과 선족(鮮族)의 조선(朝鮮)' 태반사-Chaatang(순록치기) Choson史 공부였다.

 

Choson이 아닌 Zhoson이 오독(誤讀)임을 직감케 된 것도 개인적으로 보면 역사적인 우연이었을 뿐이다. 실은 국내외 몽골학 수학자를 막론하고 몽골현지에서 수교 초반에 만난 남한인 중에는 울란바토르에서 몽골말로 소통하며 시내버스를 제대로 탈 수 있는 경우는 전무했다. 무엄?하게도 이것만이 초대한국몽골학회장으로 몽골 국에 처음 입국한 논자가 증언할 수 있는 일이었다. 수백 년 전 몽골어는 당연히 기초단어조차도 아예 불통이었고 몽골유목현지에서 꽤 헤매다보니 겨우 입이 열렸었다. 당시에 고올리 돌각담 무덤 발굴장은 홍산 문화권 서북단이었지만 몽골어를 쓰는 몽골 국이었고 몽골세계제국 기원지 호눈선원(呼嫩鮮原) 핵심은 엄연히 중국어를 쓰는 내몽골이었다. 논자가 양국 어를 서툰 대로 모두 쓰며 감히 몽골유목현지를 답사할 엄두를 낸 건, 1960년 초 대학 신입생시절에 제2외국어로 불어를 선택했다가 수강변경시에 같은 학과 윤여형이란 고향친구를 따라 대수롭지 않게 중국어로 수강과목을 바꿨던 우연찮은 인연 때문이었다. 그 후 대만에서 정식으로 중국어를 다시 배울 적에 개인지도강사가 차라리 중국어공부를 한국에서 미리 안 하고 왔으면 좋았을 거라며 내 산동사투리 발음을 애써 교정해주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이처럼 우연의 연속에서 이루어져온 논자의 역사공부 때문인지 전공지도를 해준 은사의 영향에서인지, 난 썩은 달걀에서 푸른곰팡이를 추출·연구해 페니실린을 만들어내는 식의 사학 외에 어떤 특정 전제를 달고 하는 어느 유목사연구 몰두에는 별로 익숙지 않은 편이다. 다만 朝鮮을 왜 Choson이라고 읽고 ‘桓雄’의 아들이 왜 ‘桓君’이 아니고 檀君이어야 했는지 등 매우 미심적은 문제는 끝까지 “Why?”를 토달며 캐묻고 늘어지는 좀 못된 성미가 내게 있는 건 같다. 그게 별로 달갑지 않은 Chaatang Choson론이 하필 시골훈장인 논자에게서 제기된 까닭인지도 모른다.

 

유목사 현지공부에 든지 30년에 접어드는 요즘 스키타이(鮮族; 순록치기)의 기마양유목 혁명의 한 기원지이자 최종 결실지인  대흥안령 북부 훌룬부이르 몽골스텝∼눈강 평원이라는 당시의 내 호눈선원(呼嫩鮮原: HoNun Sopka & Steppe) 답사 결행이, 지금 내겐 새삼 감회가 새롭다. 이제 논자는 시원 순록치기인 스키타이가 철기를 수용하면서 흑해북안 스텝-우크라이나 평원에 등장하는 기마 양유목 일대 혁명을 이루고 그 기류가 마침내는 이 호눈선원에 들어 동북아 곧 몽골스텝-만주벌판을 기반으로 스키타이혁명을 완성해 팍스 몽골리카를 이룬 것이라고 정리하고 있다. 마치 팍스 부리태니카에서 본격적으로 점화한 산업혁명이 아메리카대륙에 들어 나름대로 팍스 아메리카나를 구축해내고 있는 것과 같은 사례라고나 할까! 그래서 스키타이혁명 발전을 체계적으로 상징하는 듯한 이 호눈선원의 Sopka(鮮)의 Steppe화가 진행돼오고 있는 이땅 Danglasun(土塊的,『몽골비사』 245)을 밟고 선 태평양 중의 한 비(非)유목지대 한반도 일개 산골 시묘막골  태생자인 논자의 실로 우연한 이 첫 행보가 나름 더욱 의미 심장하게 느껴지는지도 모른다.

 

실은 국내 애독자시장을 주로 염두에 둔다면 이런 낯선 생태계 생면부지(生面不知)의 역사얘기는 논외로 삼는 게 옳다. 그러나 조선의 본질 주류 뿌리는  Zhoson眼으론 안 보이고  Choson眼으로라야 보이는 측면이 분명히 있는 것이 현실이고, 그래서 국내외의 유목이나 농경배경 출신 독자의 이 분야 전공·비전공의 애독자를 두루 포용해야 하는 개척분야 탐사(探査) 역사연구 지원자로서의 이런 고민이 지금 관계 역사담론에 녹아들어 있어야 하는 것도 엄연한 사실이다. 과거도 다시 보고 현실도 제대로 파악하며 미래의 연구흐름도 나름으로 예상하며, 일연의 『삼국유사』조차도 수백 년 후에나 다시 눈여겨보게 됐던 사례도 되돌아 봐가며 자신을 포함한 그 무엇에도 구애됨이 없이 열린 눈으로 더없이 여유롭게 쓰는, 당장은 시장성이 퍽 희박한 역사담론도 사안(史眼)으로 보면 때론 필요하리라 여겨 몇자 적어 남기고 싶었다. 거대한 빙산을 생태계로 하고 살아오던 툰드라 언저리의 북극해 원주민이 해빙기에 들어 초라한 한 조각 작은 빙산에서 생명을 부지하기에 급급해 자기의 역사적 정체 자체에 눈감고 조각 빙산들이나마 디딤돌로 삼아 좀 더 큰 빙산에 옮아 타거나 대륙에 안착하는 꿈과 도전을 아예 포기하는 일은, 분명히 유목몽골리안의 본령이 아니라고 본다. 역사란 시간 속의 변화를 천착해 그 본질을 꿰뚫어보는 혜안을 떠가는 학문임을 상기할 때 더욱 그러하다 하겠다.

 

논자는 몽한 수교 후에야 이 당라숭을 처음 밟았지만 성백인–김주원 교수 사제팀(언어학)은 한국 연구자로는 희귀하게도 그 이전부터 이미 수십년간 이곳이 팍스 몽골리카의 기원지임을 꿰뚫어 보고 집요하게 언어학적 연구를 계속해온 터였다. 한국의 세계유목사 연구계에서도 각별히 주목해야 할 특이한 연구프로젝트라 하겠다. 논자는 물론 몽한 수교와 동시에 비로소 이곳의 이 기상천외의 역사정보를 접하게 됐다. 당시의 내겐 그런 기별을 전하는 베 수미야 바아타르 교수가 네오 파시스트 쯤으로 치부됐었다.-지금의 한국내 대부분의 독자들이 지금의 내 칼럼을 읽는 소회도 아직 대동소이할까?- 북한에서 1950년대 후반에 조선어학을 전공한 유학생 출신 큰 선비로 몽한 수교 시에 거의 유일한 한국어에 유창한 몽골인 몽골어 통역자로 김포공항에 도착한 베 수미야바아타르 교수[홍산문화권 서북단 고올리 돌각담무덤 발굴지, 돌하르방의 본향 다리강가 스텝이 태생지] 는 1990년 5월 단국대 서울 한남동 캠퍼스 언덕백이 객원교수실에서 논자에게 “나는 몽한상고사에 관한 메가톤급 핵무기격 역사정보를 들고 들어왔다!”고 확언하여, 당시 유일한 국내외 한국인 신세대 몽골사학 박사임에도 불구하고 실은 유목사 현장엔 발도 들여놓아본 적이 없는 당시의 현장 유목사맹(遊牧史盲)인 논자를 몹시 헛갈리게 했다. 심지어는 낯선 오랑캐 사회주의권에서 틈입(闖入)한 광기어린 네오 파시스트 정도로만 보이기까지 했었다[주채혁 「몽골은 고구려 外孫민족」 『월간조선』 1998.5].

 

그의 놀라운 시원유목사 관계복음은, 부이르호반 고올리칸 석상이 동명성왕 훈촐로로 몽한의 공동조상이라는 기별이 그 내용의 핵심이었다. 초대 한국몽골학회장이자 IAMS[국제몽골연구자협회] 한국측 집행의원으로, 당연히 무모하지만 거의 미친 듯이 유목현장 답사발굴과 학술회의 등 몽한 공동연구에 몰입해온 그 후 30년을 숨고르고 난 지금의 난, 당시에 베. 수미야바아타르 교수를 ‘돌은 사람’으로 치부했던 내가 실은 정작 돌은사람이라고 이제야 어렴풋이 깨닫게 된 듯하다. 그 조짐이 감히 ‘조선’은 아침의 나라 Zhoson이 결코 아니고 순록치기의 나라 Choson이라는 Chaatang Choson론을 출시한 데서 나름 엿보인다 하겠다. 전공에 따라 신예 연구자들 가운데는 그를 철지난 옛날 언어학자로 폄하할지도 모르지만 논자가 보기에는 그는 한국에 20세기 최대·최고의 시원유목사 정보의 하나를 전한 게 틀림이 없고, 따라서 한남동 단국대 객원교수실(1990. 5월)은 내 몽골사학연구사 상의 기념비적 유적이라고 나름 확신한다. 그래서 더더욱 너무나도 우연히 호눈선원(呼嫩鮮原) Danglasun을 생전 처음 감히 딛고 선 당시 논자의 모습을 내 기억에서 영원히 지울 수 없을 것만  같다.


chuchaehyok.com 월요역사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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